“선행학습 금지는 아이들 살리는 ‘과속방지턱’이죠”

2015.12.01 09:00:00

김영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에게 듣는다



“2년 연속 수능에서 출제오류가 발생,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이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습니다. 수능관리에 최선을 다해 반드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습니다.”



김영수(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2016학년도 수능시험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과,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한 학부모들을 두 번 다시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수능 난이도에 대해서는 당분간 쉬운 수능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문제를 꼬고 비틀고 하기 보다는 교육과정에 충실한 출제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밝혔다.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논평을 거부 했다. 다만 2017학년도부터 실시되는 수능 한국사는 입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대학들이 등급 간 점수 차를 최대한 좁혀 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원장은 인터뷰하는 동안 특유의 비유법으로 우리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영어 절대평가를 도입해도 사교육비가 경감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지적에는 “청소기 한번 돌렸다고 먼지가 없어지겠느냐”는 말로 받아쳤다. 수능제도

“오류 없는 수능으로 실추된 명예 반드시 회복”
‘한국사 국정화, 수능 난이도’ 논란 어처구니없어


원장으로서 첫 수능인데 잠은 좀 잤는가.
6월과 9월 두 차례 모의평가로 예습을 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수능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마지막까지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년 연속 수능에서 출제 오류가 발생했다.
솔직히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수능이 치러지기 전 출제본부를 찾아가 첫째는 학생을 위해, 두 번째는 학생을 가르치느라 고생한 교사들과 학부모를 위해,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일하자고 했다. 지난 1년, 평가원은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 전문가들의 명예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자신 있나.
이번에 또 실패하면 스트라이크 아웃이다. 두려움은 없다.

출제위원 섭외가 어렵지는 않았는지.
출제 오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섭외를 거절한 분은 없었다.

출제오류가 발생할 때 마다 원장이 물러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면 그것은 원장 몫이다. 기관장이 책임을 져 줘야 직원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다. (직원들에게) 든든한 바람막이 하나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다만 잦은 기관장 교체로 평가원 운영의 일관성(consistency)이 단절된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스스로 물러나야지. 사람을 들고 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배웠다.

쉬운 수능 기조는 계속 유지되는가?
‘쉬운 수능’이라고 말들 하는데 그런 용어 사용은 바로 잡았으면 한다. ‘쉬운’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그 기준도 모호하다. 그 보다는 난이도의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 한때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하는 말이 있었는데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런 일이었겠는가. 변별력을 이유로 어렵게 출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문제를 꼬고 비틀고 해서 ‘너 이건 몰랐지’하는 식으로 장난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 수준에 수능을 맞춘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원칙이다. 앞으로도 이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

대학에서는 쉬운 수능에 불만이 많은데.
솔직히 변별력 문제는 서울에 있는 몇몇 상위권 대학들 이야기다. 지금과 같은 수능 난이도라면 (변별력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대학 신입생의 70% 이상이 수시전형으로 선발된다. 수시전형에서는 수능 변별력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20~25%를 차지하는 정시전형인데 대학들이 백분위도 활용하고, 등급도 활용하는 등 다양한 조합(combination)을 통해 선발하고 있다. 큰 문제될 게 없다.

만점자가 속출하다 보니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떨어진다. 상위권 학생들의 불만이 큰데.
현행 평가체제에서는 1등급 4%, 2등급 7%… 등으로 정해져 있다. 수능이 쉽다고 해서 상위권 비율이 늘어나고 어렵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 있겠지만 ‘불수능’이든 ‘물수능’ 이든 실수는 나오기 마련이다. 수능이 쉬워서 학생들이 더 부담을 느낀다는 말에는 물음표를 붙이고 싶다.

2017학년도부터 영어 절대평가가 실시된다. 문제는 없나.
영어 절대평가를 앞두고 학자들 사이에서 5등급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았다. 어떤 분은 3등급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심지어 당락(pass or fail)으로 가자는 분도 있었는데 결국 9등급으로 갔다. 수능은 학습능력도 평가하고 선발 기능도 해야 한다. 그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

9등급이면 절대평가로 보기 어려운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절대평가 정신에 충실해 등급 단계를 최소화하고 수시 모집에서 신입생을 100% 뽑아버리면 큰 맹점이 발생한다. 예컨대 A라는 학생이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이 나빴다고 치자. 뒤늦게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하려고 하는데 대학이 신입생 전원을 수시전형으로 뽑아 버리면 이 학생은 낮은 내신 성적을 회복할 길이 막혀버린다. 인생에는 패자부활전도 있어야 하는 법, 수능에서 선발기능을 없애 버리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영어 이외 다른 과목까지 절대평가를 확대할 가능성은.
(웃으며) 내가 정할 사안은 아니지만 9등급 정도라면 괜찮을 것으로 본다. 다만 대입전형은 지금보다 좀 더 복잡해지겠지.

사교육경감 효과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거는 기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교육열 앞에서는 어떤 정책도 사교육을 잡는데 한계가 있다. 다만 10년, 20년을 내다 봤을 때 사교육 수요가 완만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영어 절대평가가 (사교육에 대한) 기울기를 낮춰주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본다.

수능과목에 절대평가를 확대하고 자격고사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가 한 사안이다. 개인적으로 입시제도 개선은 산림녹화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민둥산에 나무만 심으면 푸른 산을 볼 수 있겠지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북한의 경우 산에 나무를 심어 놓으면 주민들이 그 다음날 땔감으로 다 뽑아가 버린다고 한다. 나무를 심는 것도 좋지만 땔감을 대신할 대체 에너지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심은 나무를 잘 보존하려면 주민들에게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을 공급하고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나무를 심고 이것이 울창한 숲이 되기까지 어마어마한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하듯이 입시제도도 교육은 물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예비고사+본고사’, ‘학력고사’, ‘수능’ 중에서 가장 낫다고 생각되는 입시제도는?
대답하기 곤란하다. 다만 지난 20년간 대학입시를 주도했던 수능이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제 2015 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되는 만큼 수능도 전반적으로 재정비 할 때가 됐다. 그간 너무 땜질만 하다 보니 흥부네 바지처럼 누더기가 됐다. 원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웃음)

대안이 있나.
정부가 새로운 수능에 대한 지향점을 연구하고 있다. 연말 쯤 밑그림 나올 거고 내년에 2021학년도 수능개편안이 발표될 것이다. 또 고등학교 보통교과 성취평가제 반영 방안도 내년에 발표된다. 수능을 출제하는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제도 개선 작업에 도움이 되도록 적극적 지원할 예정이다.

평가원이 수능개편을 주도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수능출제와 채점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평가원이 수능개선 방향도 정하고 출제도 하고 그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평가원이 기획 단계부터 집행까지 모든 것을 하다보면 자칫 기관 편의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의식하지는 않아도 어떤 게 우리들에게 편할 까, 어떤 게 더 유리할까 하는 그런 이기주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점을 경계하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은.
평가원이 국정화 여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노코멘트다.

국정화가 되면 수능이 쉬워지나.
하하하, 쓸데없는 논란이다. 국정화 여부에 따라 수능 난이도가 정해지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만 일반적 관점이라면 여러 교과서를 놓고 공부하는 것 보다는 하나의 교과서로 보는 것이 학생들에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교과서라도 얼마든지 쉽게 낼 수도, 어렵게 낼 수도 있다.

입시가 워낙 유동적이어서 학부모들은 불안해한다.
실은 지난해 서울지역 10여개 대학 입학처장들이 모여 한국사 수능 성적을 입학 전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대학들 생각은 하나의 통일된 기준을 만들어 학생들의 혼란을 줄여주자는데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권 대학들의 한국사 성적 반영은 거의 대동소이 할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1~3 등급까지는 거의 차등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수능에서 한국사가 쉽고 어렵고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는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출제하고 절대평가 등급만 제공, 수험 부담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그동안 교과서 검정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교과서는 사실상 공공재로서 교육의 근간이다. 타당성 높고 객관적인 검정을 통해 오류 없는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보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현재 수준보다 더 적극적인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놓고 교과 간 충돌이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들었다.
교과별로 우리 것을 더 집어 넣어달라는 요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십 년 간 그 분야를 전공하는 분들의 안목이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주장이란 생각이 든다. 그걸 교과 이기주의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곤란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평생을 거는 법이다.

교원 임용시험이 지나치게 암기 위주여서 교사로서의 자질과 전문성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안타깝게도 이제까지는 시험의 중요성에 비해 출제 업무에 대한 여건이 무척 열악했다. 임용시험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평가원 스스로도 위기를 느껴왔다. 우리가 계속 출제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적도 있었다. 지적한 것처럼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개선 대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올해부터 3년의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임용시험 연구 과제를 시작했다. 평가체제 전반에 내재된 쟁점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는 총제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실제 초·중등교사 임용시험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선행교육예방센터을 운영하고 있는데 성과는.
서강대 입학처장 7년을 하면서 전국 900여 개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선행학습이 어떻게 우리교육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내 돈 들여 내 자식 공부시키는데 국가가 왠 참견이냐’ 하는 분들도 있지만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학부모들을 제어하는 ‘과속 방지턱’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교육과정을 배운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연구팀에게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좋은 방안을 찾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교육계에 개선할 점이 있다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주제가 못된다. 내 코가 석자다.
장윤정 기자 사진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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