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의 한 초등학교에 부임한 지 두 달 된 20대 여교사가 학부모를 포함한 지역주민 세 명으로부터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믿어지지 않는 이 사실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경악과 분노의 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술 때문에 발생한 일이니 긁어 부스럼 만들어 관광지 이미지 실추시키지 말고 조용히 해결하자’는 고맥락(high-context) 사회의 폐쇄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뿐만 아니다. 사건 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관심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개혁은 제도와 인식이 만나는 접점에서
섬마을 여교사 집단성폭행 사건은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퍼져있는 안전 불감증, 인권의식 미흡 등 잘못된 관행이 존재하는 한 ‘건강한 교육생태계 구축은 요원하다’는 걸 반증해주고 있다. 개혁은 제도와 인식이 만나는 접점에서 일어난다. 제도가 현상을 앞서거나, 시민의식을 제도가 못 따르는 경우 진정한 혁신과 변화는 일어나지 못한다. 정책의 효과 역시 반감되기 마련이다. 자고로 취지가 나쁜 정책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좋은 취지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사뿐히 내려앉아 안착하지 못하고 덜컹거리며 부작용을 양산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실효성 의심되는 ‘도서·벽지 근무 안전 종합대책’
예방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하게 조심하고 대비를 해도 천재지변, 사각지대, 개개인 또는 집단 일탈 등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언제 어느 때고 터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후처리 과정이다. 적어도 정책 당국은 문제가 발생하면 평상시에 확보해 놓은 양적·질적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건의 정황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책 당국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도서·벽지 교원 인사 및 주거실태 조사를 하느라 허둥댔다. 현직 초등학교 남교사를 거의 모두 섬마을로 보낼 수밖에 없는 대책을 허겁지겁 발표하는 해프닝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난 6월 22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지역 내 공공기관 근무자 통합관사 확충, 스마트워치 보급, 성폭력예방교육 강화, 안전실태 점검 및 교육여건개선을 의무화 하는 내용의 ‘도서·벽지 근무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교원단체들은 예산계획이 빠져있는 종합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스마트워치는 당사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성폭력예방교육 의무를 지역 학교에 부과할 경우 업무부담 가중과 성폭력예방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더욱 근본적인 대책(도서·벽지 교원의 처우개선과 교원인사배치 개선방안, 교권침해가해자 엄중 처벌제도 등)도 주문했다.
칸막이 뛰어넘는 유기적 정책 공조 필요
이번 종합대책 추진은 교육부·법무부·행자부·여가부·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와 우정사업본부 그리고 경찰청이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성폭력을 일소하고 성평등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방·공유·소통·협력을 매개로 부처 간 칸막이를 뛰어넘는 유기적인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온 마을의 소통과 협력을 효과 있게 조장하고 지원하기 위한 정부 부처 간 협력적 문제 해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도서·벽지에 여교사 파견금지’처럼 현실여건을 감안하지 못한, 맥락 없는 대책을 언급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대책 초안의 적합성과 효과성 검토과정에서 적시(適時)에 동참할 수 있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일상 행정 과정에서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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