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명찰’과 ‘칭찬카드’ …글로벌 인재 神話를 쓴다

2016.11.01 00:00:00

詩가 흐르는 서울신화중학교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회색빛 거리를 휘돌아 교문에 들어서자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 한 구절이 교사동 벽면에 크게 걸려있다.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들이 힐끗 보더니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따라 읽는다. 산뜻한 파스텔톤 벽면에 고운 단풍처럼 매달린 한 편의 시. 서민들이 모여 사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신화중학교의 교정엔 수수한 가을의 정취가 흐른다.


“짤막한 시 한 구절이지만 학생들에겐 먼 훗날, 중학교 다닐 때의 가슴 따뜻했던 추억으로 남아있겠지요.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존중받는 사람으로 대우받았던 그 시절의 자긍심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시를 통한 인성교육으로 침체됐던 학교에 새바람을 일으킨 이영숙 교장은 “학생들이 글로벌 시대를 리드하는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큰 꿈과 자아존중감을 길러주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신화중 학생들의 등굣길은 조금 색다르다. 학생들 가슴에 이름표와 함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또 다른 명찰이 달려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는 의사’, ‘자상하고 한결같은 피아노 교수’ 등 장래희망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쓰여있다. 이른바 ‘꿈명찰’이다. 학생 각자가 자신의 희망직업과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기록한 카드를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패션 디자이너가 꿈인 학생은 ‘열정 가득한 디자이너’라는 꿈명찰을 지니고 다닌다.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다.


“공부가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꿈명찰 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확실한 목표가 생기니까 알아서 책을 보는 학생들이 늘어나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자발적이고 강력한 공부 자극제가 됐다는 게 이 교장의 설명이다.


교사들도 학생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학생들 꿈명찰을 보며 한마디씩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준다. “민서(가명)야, 음악 시간에 보니까 음감이 아주 좋더구나. 피아니스트가 꿈이던데 나중에 아주 유명해지겠어”라는 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학생 3명씩은 꼭 칭찬을 해주자는 교사들 간 묵시적 다짐이 있었다는 귀띔이다.  


누구나 경험했지만 학창시절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꿈명찰과 함께 신화중학교의 또 다른 기(氣) 살리기 작품은 ‘칭찬카드’이다. 심부름이나 청소, 친구 도와주기 등 사소한 것이지만 학생들이 ‘예쁜 짓’을 하면 교사들이 칭찬받을 내용을 엽서 크기만 한 종이에 적어준다. 이것이 칭찬카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칭찬받는 게 아니라 누구든 남을 도와주고 희생하면 소중한 존재로 칭찬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다.


칭찬카드를 받은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교장실로 간다. 이 학교 교장실은 학생들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 교장의 표현을 빌리면 ‘문턱 없는 교장실’이다. 학생들이 칭찬카드를 가져오면 이 교장은 초콜릿·음료수·사탕 등을 나눠주며 “참 기특한 일을 했구나”하면서 다시 한 번 칭찬해주고 학생들의 고민도 들어준다. 실제로 이 교장의 서랍에는 그동안 학생들이 가져온 칭찬가드가 수북했다. 물론 한편에는 이들을 ‘접대(?)’할 각종 과자와 빵도 가득 쌓여 있다.


“언젠가 한 반 전체가 칭찬카드를 가져왔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아봤더니 수업 태도가 너무 좋아 선생님이 반 학생 모두에게 써 줬더라고요. 일일이 다 쓰다듬고, 안아주고, 칭찬해 줬지요. 그날 교장실의 과자와 음료수는 모두 동이 났지만 전 행복했습니다.”


글로벌 교육, 세계를 향해 꿈을 펼쳐라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과 함께 학교 측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글로벌 인재 양성이다. 사실 지난해 3월 이 교장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신화중학교는 조금 침체된 학교였다. 목동지역과 인접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피 학교처럼 인식돼 마음의 상처도 입었다.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을 타개할 기폭제가 필요했다.


이 교장의 선택은 글로벌 교육, 세계로 눈을 돌리는 교육이었다. 비록 몸은 학교 울타리 안에 있지만 학생들의 꿈과 기상은 세계를 향해 마음껏 호연지기를 펼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는 ‘세계 속의 주역이 될 큰 꿈을 지닌 신화인’을 학교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곧바로 자신의 경험을 살려 1~2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글로벌 인재 양성 동아리’를 만들었다. 동아리 학생들은 이태원과 인사동에서 외국인 인터뷰를 하며 자신감을 길렀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해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장 글로벌 아카데미 행사에서 아시아 10개국 교장들에게 유창한 영어로 신화중학교를 소개해 참석자들로부터 ‘넘버 원’이라는 격찬을 들었다. 이 교장은 여세를 몰아 폴란드 대사관 측과 접촉해 학생들 간 편지교환 등 교육교류에 착수 했다. 얼마 전에는 인도 강가 국제학교(Ganga International School) 교사들이 방문해 영어 수업을 참관하고,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신화중학교 글로벌 교육은 이제 세계시민의식을 고취시키는 국제이해교육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올해 초 유네스코 학교로 지정하고 글로벌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학교가 학부모의 신뢰를 얻는 데는 교사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는 교사들의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이 교장은 자신을 믿고 따라준 교사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 냉랭한 분위기에 겁도 났었지만, 순수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분들을 믿고 하면 반드시 이뤄낼 수 있겠구나’하는 확신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교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교무실 환경개선. 교사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학년부실도 교과와 행정파트 간 소통과 화합에 초점을 두고 산뜻하게 바꿔놓았다. 두 번째는 교사들이 원하는 물품들을 최대한 빠르게 제공해 줬다. 종이상자부터 커피포트까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지원했다. 공간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서 학교 분위기도 달라졌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잖아요. 교사가 행복하면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이 교장은 “관리자가 명령하고 지시하기 보다는 교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고 기다려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교사들을 존경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워진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신화중학교는 서두르지 않는다. 학생들 스스로 깨닫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게 기다린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처음 시작하는 용기를 높이 산다. 이 학교 지향 교감은 2학기 들어 학생들과 함께 ‘독서한끼운동’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등교해 30분 정도 책을 읽는 모임이다. 현재 참여 학생은 단 2명.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 참여하는 진정한 책읽기 운동을 하고 싶어서다. “알싸한 아침 공기와 약간의 소란스러움, 그런 분위기에서 잠시나마 책이 빠져드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지 교감은 “엊그제 한 학생이 친구에게 ‘함께 책을 읽자’며 전화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뿌듯했다”고 말했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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