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들의 한글 사랑, “고운말 쓰니 성적 올랐어요”

2017.01.01 00:00:00

학생언어문화개선사업 플래시몹 부문 대상 수상, 부산재송여자중학교


수상

부산의 한 여자중학교 학생들이 만든 한글 사랑 플래시몹이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부산의 명소를 배경으로 2백여 명의 학생들이 율동과 함께 재미있는 노랫말로 잘못된 언어습관과 한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가운데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한글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부산 재송여자중학교. 이 학교는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주최로 열리는 학생언어문화개선사업 ‘바른말 고운말 쓰기’ 플래시몹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톡톡 튀는 노랫말로 잘못된 언어습관 풍자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재송여중 플래시몹은 학생들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짜임새 있고 알찬 내용으로 구성됐다. 가수 거북이의 ‘비행기’ 노래를 개사해 바른말 사용을 알리는 플래시몹은 여중생들의 재기 발랄한 감각까지 더해져 공익성과 흥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퍼 대신 나들 가게, 유저 대신 누리꾼/ 포스트잇은 붙임쪽지, 몇 일이 아니고 며칠/(중략)  줄임말과 욕설  나도 모르게 습관화,  한 번 더 생각해서 말하자/ 백성을 생각했던 세종님 마음, 상형 가획 이체 자음을 만들죠, 모음은 천지인 합쳐요 (이하 생략)” 톡톡 튀는 노랫말이 경쾌한 리듬을 타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번 플래시몹은 학생들의 한글사랑과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기획됐다. 3학년 학생 207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바른 말 고운 말’과 관련된 음악 편곡 및 개사 작업, 안무 창작, 의상 제작, 영상 아이디어 회의 등 총 4개월간의 준비를 통해 완성했다.

3학년 전원 참여 “즐거운 추억 만들었어요”
학생들은 플래시몹을 제작하는 기간 동안 ‘바른말 고운말 쓰기’를 직접 실천하면서 평소 사용하는 언어에 욕이나 비속어가 많이 포함되는 것을 깨닫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플래시몹 촬영을 계기로 ‘바른말 고운말 쓰기’를 실천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플래시몹 제작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2백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교 진학을 앞둔 시기여서 학습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을까 우려가 컸다. 실제로 일부 학부모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번 해보자’는 의기가 합쳐지면서 3학년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기획부터 최종 편집까지 전 과정을 학생들 힘으로 제작했다. 장소 섭외도 난제 중 하나였다. 길거리 촬영이 도로교통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무산됐는가 하면 장소 대여료가 없어 포기한 적도 있었다. 광안리 해수욕장 촬영 때에는 태풍 영향으로 전기가 차단되는 바람에 앰프 사용을 못해 곤욕을 치렀다. 그래도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부산의 명물 광안대교의 야경을 배경으로 촬영을 준비했을 때 일이다. 화려한 전등이 다리를 비추면서 장관이 펼쳐졌지만 날이 어두워져 백사장에 서있던 학생들 얼굴이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됐다. 예상치 못한 일에 모두가 당황한 순간 이 학교 박정화 교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관광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야광 팔찌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한 것. 아름다운 광안대교와 학생들의 손목에서 깜찍하게 반짝이는 야광 팔찌, 재송여중 플래시몹 최고의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보람도 컸다. 플래시몹 제작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교사와 교사 간, 또 교사와 학생들 간 끈끈한 유대감과 성취감이다. 학급별로 플래시몹 연습을 하면서 담임교사와 학생들 간 소통이 활발해지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졌다. 교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기특했고 학생들은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는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대회 수상 여부를 떠나 학생들에게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플래시몹 경연 부산시 대회와 전국 대회를 거치면서 학생들은 관문을 하나하나 넘을 때마다 열광했고 주변의 격려와 응원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무엇보다 달리진 것은 언어습관. 플래시몹 촬영을 마칠 때쯤 학생들의 입에서 욕설이 사라졌고 바른 언어 습관이 몸에 배었다. 국어 성적은 눈에 띄게 올랐다. “국어 성적 학년 평균이 무려 5점이나 상승했다”는 3학년 윤 모양은 “우리들의 열정이 성적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 했다.
재송여중 플래시몹이 전국대회 대상을 거머쥔 데에는 이 학교 이미경, 구관순, 박민수 교사 등 3명의 열정이 뒷받침됐다. 이들은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문화유산인지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한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워 바른 언어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도전 배경을 밝혔다.
특히 “학생들이 한글을 단순히 세종대왕의 업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아 국어교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는 이미경 교사는 “이번 대회가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한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어휘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어 개념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고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감정 전달이 더 편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에요. 교사로서 부끄러울 뿐이죠.” 그는 “우리 사회가 영어교육만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글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가 평가 절하돼 학생들이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정부의 한글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독서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한글교육이나 언어 사용 교육은 소홀히 취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거친 언어습관은 심각한 수준이에요. 선생님 앞에서 거침없이 욕설도 하고요. 우리 사회가 강한 자극만을 요구하다 보니 학생들도 자신의 감정을 욕을 통해 발산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욕을 청소년기 특권처럼 여기는 경향도 있어 교육적 지도가 시급합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의 거친 언어 습관을 순화시키기 위해 새해에는 ‘바른말 누리단’ 활동 부문에 도전할 생각이다. 학생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운 변화와 진화에 동행하는 것이 교사로서 가장 큰 바람이라고 정유년 포부를 밝혔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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