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개 냉개 냉개야 !

2017.03.27 09:42:03

1950년대, 이제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린 분들의 교실 모습


“오늘은 교육청에서 장학사 선생님이 오셔서 여러분이 공부하는 것을 직접 보시기 위해서 우리 교실에 들어와 보기로 한 날입니다. 여러분은 장학사 선생님이 보시는데 말을 잘 듣고 재미나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담임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린이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장학사가 어느 학급에 직접 들어가서 수업을 구경하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담임선생님으로서는 어린이들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째시간이 되어서 학급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이렇게 당부를 하고 교실을 깨끗이 치우고, 잘 정리를 하여 놓고 “둘째시간에 국어시간인데 준비를 잘하고 있어야 해요. 특히 지명을 받으면 대답을 하고 일어서서 바른 자세로 발표를 하고, 책을 읽어야 해요”하고 다시 다짐을 하시고서 교실을 나가시면서 잠깐 쉬는 동안 준비를 잘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모두 걱정이 되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까지 하였습니다.

드디어 둘째시간이 되어서 머리가 약간 벗겨지신 점잖은 모습의 장학사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습니다. 장학사 선생님은 “선생님이 오늘 지명을 하실 때에 아아 오늘이 23일이니까 끝번호가 3번인 사람을 차례로 좀 시켜 주세요. 아이들의 상태를 통계를 내어 보기 위한 것이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 말이죠”하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한 선생님은 아무래도 걱정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3번이라면. 제일 책을 잘 못 읽는 동걸이가 있는데 걱정이잖아.’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펴서 우선 읽어 보고 그 줄거리를 잡는 이 시간의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글이 긴 이번 단원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것이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13번인 동걸이를 피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책을 폈지요. 이번 시간에 공부할 문제가 무엇이지요?”
“네, 글을 읽고 글의 줄거리를 잡는 것입니다.”
“네, 좋아요. 그럼 우선 책을 읽어 보도록 하지요. 43번 읽어 보세요.”

선생님은 한사코 동걸이가 책을 읽지 않도록 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맨 꽁무니의 43번부터 읽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33, 23번을 지나서 13번의 차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책은 두 쪽이 더 남아 있으니 안 읽게 하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13번 동걸이 읽어 볼까 ?”

“예” 하고 일어서는 동걸이의 모습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아직 책을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데, 더구나 장학사선생님이 계시는 앞에서 읽는다는 것이 여간 겁이 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저주저하면서 일어선 동걸이가 책을 펴들자 옆에 앉은 성진이가 작은 소리로 책을 읽어가기 시작 하였습니다. 동걸이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성진 “나는 마주 보고 있는 ”
동걸 “나는 마주 보고 있는”

성진 “창이 모두 열려 있는”
동걸 “창이 모두 열려 있는”

성진 “벌통을 갖다 놓았다.”
동걸 “벌통을 갖다 놓았다.”

겨우 여섯 줄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이제 책을 넘겨서 읽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성진 “열린 창문으로 들어 왔다.”
동걸 “열린 창문으로 들어 왔다.”

성진 “냉개 냉개”
동걸 “냉개 냉개”

성진 “냉개 냉개, 냉개야.”
동걸 “냉개 냉개, 냉개야.”

교실 안은 갑자기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와, 하하하하.”

동걸이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펄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요. '냉개'란 말은 넘겨 를 말하는 그 고장의 사투리이었습니다. 그러니 성진이는 “냉개 냉개, 냉개야” 하고, 책을 빨리 넘기라고 독촉을 하였던 것인데 그만 동걸이는 이걸 책을 읽는 것인 줄 알고 따라 읽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성진이는 ‘냉개냉개 냉개야(넘겨넘겨 얼른 넘겨란 말이야)’하고 애타게 독촉을 하는데 동걸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책을 넘길 생각은 않은 채 자기도 따라서 ‘냉개냉개 냉개야’라고 했으니, 옆에서 읽어준 성진이는 얼마나 당황하고 애가 탔겠어요 ?

오늘도 아이들은 동걸이를 보고서 “냉개 냉개 냉개야” 하고 놀립니다. 물론 동걸에게 등짝을 한 대 얻어 맞아가면서도 우스갯소리로 놀리는 것은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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