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A상길아! 빨리 나와.”
“왜 또 그래?”
“너 빨리 오래! 저기서 B상길이가 널 오랜단 말야!”
“알았어! 이거 마저 끝내고 갈께.”
“지금 바쁘단 말야. 저기서 뭔가 급한 일이 생겼나 봐.”
“뭔데 그래?”
“야! 오죽 급하면 이렇게 당주목을 대고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난 이걸 끝내야 한단 말야. 나도 이게 급하거든....”
“야! 관 둬라! 관둬! 내가 참…”
C상길이는 그만 화가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화를 벌컥 내고서 휙 돌아 서서 운동장을 향하여 뛰어가고 말았습니다.
“야! 너희들 상길이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하자는 거냐?”
“글쎄? 난 모르겠어.”
“아쭈! 저희 셋이서 뭘 하려고 글쎄 저 야단이란 말야.”
“우린 너희들이 모여서 하는 짓이 보기 싫단 말야. 알았어?”
“너도 그런 짓좀 하지 마라. 우리가 어쩌다가 함께 모이게 되었는데, 너희들이 자꾸만 그렇게 우릴 몰아세우니 우리들은 어쩔 수가 없지 않니 ?”
“우리가 뭘 어떻게 했길레?”
“너희들이 한 번 생각을 해봐. 우리에게 어떻게 해 왔는가 말야.”
“우린 너희들이 한 반에 모이게 되자 그저 장난으로 조금 놀린 것밖에 뭐가 더 있어?”
“그래? 그런데 우린 너희들의 장난 때문에 이젠 견디기가 어렵단 말야. 너희들은 몰라. 그냥 하기 좋은 말로 장난이라지만, 우리들은 그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란 말야.”
“그까짓 게 무슨 큰일이란 말야!”
“글쎄 아무리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듣기 싫다는 말이 있지 않아.”
“글쎄 ? 우린 조금도 너희들을 괴롭힐 생각으로 한일이 아니고, 그냥 친구 사이이니까 장난삼아 한 이야기가 아니냐?”
“그래, 좋다니까, 그러나 너희들이 당해 보지 않았으니까 우리들의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꺼야.”
“정말 그렇게까지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면 우리가 미안하다. 그러나 사내자식이 뭐 그까짓 걸 가지고 그렇게 야단이냐?”
“사실 말야. 난 이 학급이 싫어. 왜 하필 우리 셋이서 함께 모여서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말야.”
“참, 너 대단하다. 그까짓 걸 가지고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니?”
“아까 이야기 했지만 우린 자꾸 놀리는 것이 장난이거니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자꾸만 듣게 되는 게 신경질이 난단 말야.”
“아무튼 우리는 너희들 셋이 이름이 같다는 게 귀찮은 거야. 우리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러지 않는데 왜 너희들만 이렇게 이름이 같아가지고, 너희들을 부를 때 마다 항상 신경을 써야 하지 않니?”
“아무리 그렇게 부르기가 어렵더라도 우릴 그렇게 몰아서 놀리면 우리라고 기분이 좋지 않을 것쯤은 알 수 있잖아!”
“그래, 미안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너무하지 않니?”
“나는 너무하고 너희들은 싫다는 소릴 계속해도 괜찮고?”
“우리가 너희들의 이름이 같아서 구분을 하여서 부르려면 어쩔 수 없이 뭔가 구분을 해야 하지 않니 ? 그래서 너희들에게 마을 이름을 붙여 부르자니 너무 길고 귀찮잖아. 할 수 없이 간단히 A, B, C로 부르는 게 아니냐? 그게 그렇게 싫다면 너희들이 부를 수 있게 이름을 바꾸면 될 거 아냐?”
“이름을 우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럼 우리가 부르는 걸 그렇게 기분 나빠 하지는 말아야 할 게 아니냔 말야.”
“글쎄, 우리도 그렇게 기분 나빠 할일도 아닌데 ? 왠지 그렇게 불러대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단 말야.”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우리가 너희들을 구별해서 부를 수 있도록 너희들이 좋은 이름을 만들어서 알려 줘. 그럼 우리가 그렇게 불러 줄께. 알았지 ?”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받은 성과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이 있는데, 너희들이 A니, B니, C라고 불러 주는 것이 좋을 수는 없잖아?”
“물론 그렇지. 우린 그런 걸 생각해보지 않고 있었어. 그러나 이거 뭐 너희들 에게 놀리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너희들도 알잖아. 너희들이 이해를 해야지?”
이렇게 끝없는 말싸움을 하게 된 것은 흔히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 학교에서나 있는 일이었습니다. 양상길이가 셋씩이나 있으니 아이들은 이 세 양상길를 구별해 부르기 위해서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아이들은 이걸 그렇게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A, B, C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은 벌써 3년전인 2학년 때였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아이들을 부를 때마다 세 명이 모두 대답을 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상길!”하고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세 명이 모두 “네!”하고 대답을 하고 일어섰습니다. 선생님은 어리둥절해서 바라보다가 "야! 너희들 이렇게 세 사람이 모두 대답을 하면 난 어떻게 하니?" 하시면서 다시 생활기록부를 가져다가 마을과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여서 “자, 작은골에 사는 양경숙씨의 둘째 아드님 양상길. 너는 셋 중에서 번호가 가장 빠르니까, 네가 가장 형이 되는 것 같구나. 그러니 넌 A상길이라고 부른다. 알겠니?”
“네에.”
“다음엔 바윗골의 상길이. 넌 두 번째이니까 B상길이다.”
“나머지 하나 남은 넌 C상길이야. 알겠니?”
“네!”
“이제 너희들도 모두 그렇게 부르도록 한다.”
“와, A상길이가 제일 좋겠다. A는 첫째가 아니야.”
“야, ABC상길아 ! 그러면 세 사람이 모두 대답을 해야겠다. 하하하하.”
아이들은 모두 낄낄거리면서 좋아들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그렇게들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이걸 아주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부르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들만 성도 없이 A, B, C로 불리는 것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양씨인데 왜 우릴 A, B, C로 부르느냔 말야’ 하는 것이 이 아이들의 불평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러더라도 학급의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A상길, B상길, C상길”이라는 이름이 정답고 좋아서도 아니고, 결코 놀리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세 아이를 구별해서 부르기 위해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