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는 방법, 꽃을 ‘봄’

2017.04.07 13:21:48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다. 봄이 왔으나 봄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건 사람, 또는 그 사회의 탓인 경우가 많으니 이 말은 자연이 변화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리라. 오히려 자연은 이름처럼 제 소임을 다하듯이 변화해야 할 때 바뀐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을 ‘철부지’라 이르며 분발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니 우리가 봄을 느끼는 것은 권리이며 동시에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태도를 갖추는 의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봄을 느끼는 것일까?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답 가운데 하나는 뜻밖에도 우리말 속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우리말 중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계절을 이르는 낱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천천히 말해보면 입안에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게다가 계절에 맞는 뜻도 품고 있다. ‘봄’은 우리에게 ‘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 봄이 온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다. 겨우내 움츠려있던 자연이 기지개를 펴며 천천히, 그러나 뚜렷하게 계절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얼었던 물이 흐르고 들판에 푸른 기운이 보인다. 그렇지만 봄의 어떤 것도 꽃보다 눈길을 끄는 건 없다. 역사 유적을 찾아 떠났지만 그 유적보다 빛나는 것이 봄의 꽃나무다. 그래서 봄에 떠나는 역사 기행은 꿈결처럼 행복하다.

경주 월성, 그리고 임해전 월지
 
역사 유적을 즐겨 찾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 그리고 때로는 정기적으로 찾게 되는 곳이 바로 경주다. <삼국사기> 기준에서 8년 모자라는 천 년의 도읍지니 그 유적의 무궁무진함도 있지만 한편으로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오묘함 때문이다. 경주, 신라의 서라벌은 화려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옛 페르시아 서사시인 <바실라>에서 황금의 나라라고 노래한 것은 그저 추측성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금빛으로 빛나던 저택이 곳곳에 있다던 <삼국유사>의 기록 역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주는 옛 절터의 적막함과 죽은 자의 꿈을 안고 있는 무덤이 가득한 도시다. 그런 까닭에 옛 서라벌의 영광을 떠올리는 건 많은 공부를 바탕으로 상상력이 더해져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월성이나 임해전 월지의 봄은 그 영광을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밤에는 조명 덕분에 월성의 높은 언덕과 월지가 하얗고 분홍빛의 꽃으로 대궐을 이룬다. 인공의 부족함을 자연이 채워주는 격이라고 할까. 
 
실제 월성과 임해전 모두 신라의 궁궐이었다. 토함산 기슭에 살던 석탈해가 자신의 집안이 대장장이 집안이라는 것을 십분 활용해 호공에게 빼앗은 월성은 경주의 중심 궁궐이 된다. 하늘에서 보면 반달모양의 분지와 같은 빼어난 모습을 자랑한다. 임해전 역시 궁궐이었다. 다만, 동쪽에 있는 궁궐은 태자가 썼을 것이며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크게 꾸며 연못을 가꾸고 또 건물을 지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신라의 영광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며 신라 귀족의 삶을 이해할 자료 수 만 점이 나온 보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봄에, 그리고 밤에 이곳에 간다면 이런 설명이 없이도 화려한 서라벌의 밤을 느낄 수 있다. ‘처용’이 밤새 즐기던 서라벌의 밤이다.

한양도성, 백악에 오르다
 
서울은 참 아름답다. 처음에는 몰랐던 서울의 아름다움은 외국 여행을 다녀오고서야 비로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 나이가 들면서 달라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서울의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두 가지 자연, 산과 강에서 나온다. 문득 대도시의 중심에 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면 그건 서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의 산은 어디에서 봐도 좋다. 그렇지만 ‘한양 도성’에 올라가면 더욱 좋다. 그리고 우리를 이곳으로 이끄는 문화재가 있다. 18km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도읍지를 둘러싼 성곽이다. 한 때 서울 사람들이 잊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자랑거리가 된 유적이다. 특히 봄에 북악으로도 부르는 백악으로 올라가길 권한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다고 사람들이 얘기한다. 하지만 산의 모습은 계절마다 달라진다. 그 가운데 봄의 백악을 본 적이 있다면 그건 서울에서 가장 환상적인 모습을 보았다고 해도 좋다. 진중한 바위산의 엄숙함 가운데, 그리고 소나무의 단정함이 가득한 가운데에도 백악 곳곳에 꽃나무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그 빛깔은 희고 또 분홍이며, 붉기도 하다. 산이 저리도 화려하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백악 코스는 대체로 성균관대 후문 근처인 와룡공원에서 시작해 창의문까지 이어진다. 다른 곳과 달리 신분증이 필요한 일정이다. 백악을 멀리서, 그리고 조금 가벼운 답사로 느끼고 싶다면 한양도성 낙산 코스도 좋다. 올라가는 길이 비교적 편하다. 또 다른 곳보다 창덕궁 후원의 모습을 가깝게 볼 수 있으니 왕실의 후원을 엿볼 수 있는 일정이기도 하다. 



고창의 봄, 모양성
 
우리나라를 산성의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산성이 많다. 어지간한 고을은 근처 산에서 산성이나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많던 읍성은 일제강점기 고의적인 파괴와 산업화 과정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읍성은 귀하기만 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창 읍성 ‘모양성’이다. 고창의 옛 이름이 모양이어서 모양성이라고 부른다. 고창 모양성은 그 자체로도 빼어나다. 검은 빛이 도는 성벽이며 평지와 산을 아우르는 성곽의 유려한 곡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더구나 머리에 돌을 이고 이 성을 돌면 다리병도 없어진다고 하니 꼭 한 번 돌아볼 일이다. 
 
모양성은 언제 가도 좋지만 봄은 더욱 특별하다. 다른 곳에 견줘 붉은 빛깔의 꽃이 검정 빛의 성을 둘러싸고 있다. 또 성 안에는 객사며 동헌이며 이방청 같은 옛 관청 건물과 맹종죽 같은 대나무, 꽃나무 또한 가득하다. 그래서 안으로도 봄의 기운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혹시 모양성만으로 부족하다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선운사의 봄을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조금 이른 봄이라면 핏빛의 동백을, 조금 늦은 봄이라면 왕벚나무며 살구나무가 뿜어내는 분홍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여행이야기 박광일 대표, 심미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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