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2명 교·사대 과학교수들이 제자들의 명품수업을 위해, 또 자신의 강의 개선을 위해 손을 잡았다.
한재영(50·사진) 충북대 화학교육과 교수 등은 최근 자신의 대표강의 자료를 공유해 엮은 ‘과학 교사들을 위한 과학교육 강의 플랜’을 출간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제자인 과학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전국 교수들이 의기투합한 것. 책에는 과학과 교육과정, 과학사와 과학철학, 과학 탐구, 과학 교수 학습이론, 과학 교수 학습모형, 과학 학습 평가 등 7개 주제별 강의 자료들이 정리돼있다. 32명의 교수 모두가 한 개 이상의 강의 자료를 제공했고 각각의 자료는 개관, 수업 진행, 수정과 확장, 참고문헌으로 꾸몄다.
교수들의 대표강의가 담긴 만큼 내용과 형식의 풍부함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에서 과학철학 알아보기(강경희 제주대 교수)’, ‘게임을 통해 과학적 관찰에 대하여 학습하기(권혁순 청주교대 교수)’, ‘하브루타를 활용한 구성주의 소개(조광희 조선대 교수)’, ‘과학 놀이 만들기(강훈식 서울교대 교수)’ 등 제목만 봐도 눈길이 간다.
교수들은 물론 예비·현직 교사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일 뿐 아니라, 대부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어 대중들에게도 유익한 과학도서로 충분하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교수들은 주로 학회에서 연구 정보를 주고받을 뿐 강의 자료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이번 도전이 매우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책을 기획한 한재영 교수는 "과학교사는 수업자료를 찾을 때 책, 인터넷, 교사모임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교수들은 그렇지 않다"며 "개인적인 친분으로 나누는 경우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강의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제자들에게는 교사들 간 수업방법 공유를 강조하면서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아이러니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번 책 출간은 한 교수가 2년 전 한국과학교육학회 제67차 총회 및 동계학술대회에서 ‘그 강의 어떻게 하세요? 교사 교육자끼리 강의 정보 나누기’를 주제로 발표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한 교수는 외국의 과학 교사 교육자들이 서로 강의 소재를 공유해 2014년 책을 출간한 것에 착안해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대학원 선·후배, 학회에서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28명이 참여한데 이어 생면부지의 교수 3명까지 동참의 뜻을 알려왔다.
중등 과학교사 출신인 그는 초임 때부터 교육자의 교류·협력에 힘써왔다. 1990년대 말 서울 중동고 교사 재직 시절에는 교사 학습동아리가 전무하던 당시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 창립멤버로 주목 받았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2년부터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교수들 간의 교류·협력에도 눈을 뜨게 됐다.
한 교수는 "점심식사를 겸해 독서토론을 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됐는데 전공이 서로 다른 교수, 대학원생들이 책을 읽은 후 생각을 나누는 그 시간들이 매우 뜻 깊게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귀국 후 경험했던 일을 실천에 옮겼다. 2005년 충북대에 오자마자 과학교육학 교수 모임 ‘청남회’를 결성했고, 사범대 내 전공 불문 독서토론 모임인 ‘소요유’를 만드는 등 교류·협력에 꾸준히 노력해왔다. 지난해에는 8명의 교·사대 교수와 함께 과학수업 중 활용 가능한 유머를 엮어 ‘유쾌한 과학수업’을 내기도 했다.
그는 현재 충북대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컨설팅도 하고 있다. 이번에 책을 낸 이유 역시 이 업무와 무관치 않다. 전공이 다른 교수들의 강의를 컨설팅 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그는 외형의 교수법 뿐 아니라 내용까지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한 교수는 "의대 강의의 경우 외형적 요소에 대한 조언은 할 수 있겠지만 내용까지 손대는 건 불가능하다"며 "관련 교육자들끼리 소통하고 협력해야 더 좋은 강의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부터 더 많은 교수들의 아이디어를 얻어 책 내용을 계속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