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장미, 정이현의 장미

2017.05.01 00:00:00

김민철의 야생화 이야기


장미는 5월부터 피는 대표적인 꽃이다. 이번 대선을 ‘장미 대선’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 소설 속에 핀 두 송이 장미가 있다. 한 송이는 신경숙이 베스트셀러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쓴 장미이고, 다른 송이는 정이현이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불타는 사랑을 표현할 때 쓴 장미다.
‘엄마를 부탁해’ 표지는 강렬한 빨간색에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듯한 여자가 기도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일본어판 표지는 장미 사진으로 뒤덮여 있다. ‘엄마를 부탁해’가 장미와 무슨 연관이 있어서 이런 표지를 쓴 것일까. 일본 출판사에 문의해본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서 장남이 서울에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 엄마가 담장 옆에 장미를 심어주는 내용에서 착안한 것이 확실하다.

“그가 집을 갖게 되고 처음 맞이한 봄에 서울에 온 엄마는 장미를 사러 가자고 했다. 장미요? 엄마의 입에서 장미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잘못 듣기라도 한 듯 장미 말인가요? 다시 물었다. 붉은 장미 말이다, 왜 파는 데가 없냐? 아뇨 있어요. 그가 엄마를 구파발에 쭉 늘어서 있는 묘목을 파는 화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엄마는 나는 이 꽃이 젤 이뻐야, 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장미 묘목을 사와서 담장 가까이에 구덩이를 파고 허리를 굽혀가며 심었다. (중략) 그 집을 떠나올 때까지 봄마다 장미는 만발했다. 장미를 심을 때의 엄마의 소망대로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장미가 필 적이면 담장 아래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큼큼 장미향기를 맡았다.”

어렵게 집을 장만한 자식의 행복이 장미 향기처럼 퍼지기를 바라는 엄마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자신은 그렇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화려하게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도 담겨 있을지 모른다. 화려한 장미와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처럼 장미에 모성애를 담아내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는 엄마의 사랑, 그리고 자식들과 남편의 때늦은 후회를 담고 있다. 소설은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왔다가 지하철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아 나선 딸과 아들, 남편이 각자 회상해 엄마의 삶을 재구성하는 형식이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도 주고 있다. 어머니라는 소재는 해묵은 소재일 수 있지만, 작가는 누구나 한 번쯤 어머니에 대해 느꼈을 감정, 보았을 장면들을 카메라 들이대듯 포착해 특유의 세밀한 문체로 그려냈다.

나로서는 소설에 나오는 엄마와 연배도 비슷하고, 큰솥 가득 밥 지으며 ‘이게 내 새끼들 입속으로 들어가는구나’ 싶어 든든하게 생각하고, 고향이 같아 사투리까지 같고, 생일상 받기 위해 올라오시는 것까지 비슷한 어머니가 계셔서 더욱 가슴 아리게 이 책을 읽은 것 같다.

밤이면 마늘을 까고 그 마늘로 김치를 담아 자식들에게 부치는 것도,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러 전세버스를 타고 상경할 때 자식들 주려는 짐이 한 보따리인 것도, 어머니 손에 닿으면 무엇이든, 강아지든 병아리든 고구마든 상추든 풍성하게 자라나는 것까지 똑같았다.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의 이미지로 장미를 택한 것은 장미가 흔한 꽃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최고의 꽃인 장미에 비유해 엄마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어머니와 장미 같은 평범한 소재로 많은 사람의 감성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더욱 빛나는 소설이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장미는 여성 감성을 자극하는 꽃이다. 이 소설은 정이현의 첫 장편으로, 2005~2006년 조선일보에 연재됐고, 출간 이후 40만 부 이상 팔렸다. 또 SBS에서 배우 최강희가 오은수 역을 맡아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처음 신문에 연재한 이 소설을 읽을 때 ‘신문에 이렇게 써도 되나?’ 싶었다. 초반부터 직장생활 7년 차인 은수가 섹스에 대해 정해 놓은 원칙 전부는 ‘첫째, 하고 싶은 사람과 둘째, 하고 싶을 때 셋째, 안전하게 하자’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도발적이고 불온하다’, ‘세련된 도시 여성의 연애사를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로 그렸다’는 평을 동시에 들었다.

6개월 전 헤어진 옛 애인이 결혼하는 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은수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일곱 살 연하 태오를 만나 모텔에 간다. 이른바 ‘원나잇 스탠드’를 한 것이다. 태오는 사랑스럽고 섬세했다. 태오는 은수를 두 번째 만나는 날, 장미 한 송이를, 만난 지 20일째인 날에 두 송이를 선물한다.

“서른한 살. 토요일 저녁, 왼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든 채 햄버거를 사기 위해 패스트푸드점 카운터 앞에 줄 서기에는 약간, 아주 약간 민망한 나이다. (중략) 조금 아까 만나자마자 태오는 내게 장미꽃을 쑥 내밀었다. 꽃바구니를 옆에 끼고 거리를 누비는 꽃 행상 할머니들로부터 산 것이 틀림없었다. 고백하건대 남자로부터 꽃을 받은 것은 퍽 오랜만이다. 부연하자면 한 다발도 아니고 한 단도 아니고 딱 한 송이를 받은 것은 대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다.”

태오의 장미 한두 송이는 어린 남자친구라 부담을 느낀 은수의 마음을 어느 정도 풀어준 것이 분명하다. 사랑을 고백할 때 왜 장미꽃을 줄까. 장미는 불타는 사랑의 상징이다. 장미꽃 향기에는 여성 호르몬을 자극하는 성분이 있어서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연인 안토니우스를 위해 궁전 바닥에 두껍게 깔았다는 꽃도, 나폴레옹이 아내 조제핀을 위해 침실에 뿌린 꽃도 장미였다. 사랑을 다룬 소설에 장미 한두 송이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장미는 전 세계인이 좋아하고 가꾸는 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온갖 품종을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1만 종 이상의 품종이 있고, 해마다 200종 이상의 새 품종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저절로 자라는 식물 중에서 해당화, 찔레꽃 등이 장미의 할아버지뻘이다. 하나같이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진하다. 장미는 우리나라 국민도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20여 년째 국민 30% 이상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장미를 꼽았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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