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아이, 식탁 위에 꺼내 놓은 것은 영어교과서

2017.05.01 21:07:53

녀석의 돌발행동보다, 월요일 영어점수에 더 관심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가족들과 시내 모(某) 식당에서 외식하였다. 점심때가 지난 식당은 가족으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 손님은 거의 없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 식사를 막 하려는 순간, 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우리 식탁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식당 직원일 것으로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얼굴이 왠지 모르게 아주 낯익어 보였다.


그 얼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2학년 ○반의 ○○였다. 녀석을 시내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름지기 녀석도 부모와 함께 식사하러 온 모양이었다. 내심,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학교 선생님인  내게 인사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의 손에 영어 교과서가 쥐어져 있는 것이 이상했다. 


녀석은 교과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다짜고짜 모르는 내용이 있다며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다. 순간, 학교생활을 하면서 평소 말 한마디 하지 않을 정도로 얌전한 녀석의 돌발 행동에 당혹스러웠다. 


가끔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녀석은 늘 혼자였다. 그때마다 녀석의 손에는 영어 단어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다. 그것 때문일까? 아이들이 녀석에게 붙여준 별명이 있었다. '생각하는 로댕'. 본인도 그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 아이들이 별명을 부를 때마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녀석은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르는 내용이 있는 교과서 페이지를 펼쳐 놓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가진 가족의 외식이 녀석의 등장으로 망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다소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말이다. 


내 설명에 그제야 녀석은 '유레카'를 외치며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죄송했는지 옆에서 식사를 못 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그러나 녀석의 향학열만큼은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내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뒤돌아서 가는 녀석에게 월요일 시험에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 


녀석이 돌아가고 난 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 가족은 하지 못한 식사를 계속했다. 식사 내내 우리 가족은 그 아이의 돌발 행동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녀석의 월요일 영어 시험 성적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나저나 월요일 녀석이 맞게 될 영어 성적이 궁금해진다. 

김환희 강원 강릉문성고 교사 db1013@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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