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통해 공항이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유럽 몇 나라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처럼 외국여행을 즐기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작년만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외국으로 떠난 사람이 200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자주 등장하는 여행수지 적자에 대한 경고도 그런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외국여행(해외여행이란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섬나라에서 쓰는 말이다.)은 잘만 활용하면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근대사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장면 하나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여행은 1896년,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여하러 떠난 여정이다. 이와쿠라 도모미 일행이 1871년 세계여행을 한 일본과 비교한다면 25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것만으로 두 나라의 근대역사를 평가할 수 없지만 과소평가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또 외국에 나가면 한국이 새롭게 보인다. 자연스럽게 비교와 가치 평가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한국사가 강조되는 나라는 더욱 필요하다. 그러므로 조금 준비해 외국으로 떠난다면 개인으로나 사회에서 볼 때 여행을 소비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어디로 가면 좋을까
- 르네상스의 발상지, 이탈리아
17세기 후반부터 영국 귀족과 넉넉한 부르주아 자제들은 가정교사를 동반하고 긴 여행을 떠났다. 이른바 ‘그랜드투어’다. 이 여행의 목적지는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북부의 밀라노와 베네치아, 피사와 피렌체, 로마를 거쳐 나폴리까지 가는 것을 주요 일정으로 삼았다. 당시 르네상스를 통해 문화 선진국이라고 할 만한 이탈리아를 공부하러 간 것이다. 영국과 북유럽의 그랜드투어 열풍은 여행이 대중화되는 19세기까지 지속됐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중세의 부정과 고대 로마를 통한 미래지향의 가치가 전 유럽으로 확대되는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이탈리아 여행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살피려는 여행객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준다. 한 나라라고 하기에는(원래 여러 나라였던 적도 있다.) 많은 다양성을 가진 공간. 바로 이탈리아다.
- 가깝지만 잘 모르는 나라, 일본
한국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나라는 아마도 일본일 것 같다. 좋은 의미거나 나쁜 의미거나.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본이 익숙하고 또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서 ‘일본은 말이지~’로 시작하는 말도 쉽게 듣는다. 사실 현재의 일본은 과거 일본 역사의 결과다. 그런데 정작 일본의 역사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본은 우리와 달리 왕조 교체가 없었다. 그러므로 삼국시대니 조선시대니 하는 왕조에 따른 구분법을 일본에서 볼 수 없다. 그냥 계속 ‘일본’이었다. 그 일본이 한때 한반도로부터 많은 문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본은 한반도와 떨어져 독자적인 역사를 펼쳐나갔으며 그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정치체제, 종교, 문화, 심지어 숟가락과 젓가락 놓는 방법까지. 일본 역사와 문화를 느끼려면 교토, 나라,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간사이 지역, 한국 고대 문화와 일본 근대를 보고 싶다면 큐슈의 나가사키와 후쿠오카 일대가 좋다.
- 불교와 힌두교가 만났던 곳, 캄보디아
대체로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불교와 힌두교를 놓고 본다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불교에 조금 더 너그럽다. 그런데 인도에서 한때 융성했던 불교는 다시 소수가 되고 힌두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두 종교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그런 의문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캄보디아 씨엠립 일대 유적이다. 이 일대의 유적은 대체로 불교와 힌두교, 또 캄보디아와 이웃한 베트남, 태국이 혼재돼 있는 공간이다. 보통 앙코르 유적으로 알려진 이 공간은 앙코르와트가 널리 알려져 있다. 거창한 유적도 볼만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기에 적당한 곳이다. 낯선 열대의 풍광은 덤이다.
*외국여행 시 유념할 점
- 목표를 정하자외국여행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패키지여행도 있고 또 배낭여행,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중간 정도 되는 여행도 있다. 한때 쇼핑과 불필요한 일정 등으로 패키지여행의 단점이 강조되기도 했으나 효율성만 놓고 보면 이만한 프로그램도 없다. 오히려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약점은 참여자가 수동적이 된다는 점이다. 여행은 편하되 나에게 남는 부분은 적을 가능성이 많다. 사실, 어떤 방식의 여행이든 준비하는 만큼 나에게 남는다. 혹시 배낭여행이라고 하더라도 얹혀가는 사람이라면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을 떠나기 전 개인이든 일행이든 여행의 목표를 정하고 준비하면 좋다. 물론 놀러가는 것이니 지나치게 진지(?)해질 필요는 없지만 큰 비용이 드는 것이 외국여행이다. ‘본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여행 중 다툼 방지패키지여행이 아니라면 외국여행은 여간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준비를 누군가 한 명이 하고 다른 사람들은 따라가는 방식이라면 이 여행은 십중팔구 현장에서 다툼이 생긴다. 가끔 외국여행에서 듣는 아빠의 한 마디. ‘이게 얼마짜리 여행인줄 아니?’ 아빠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분명 예측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같이 준비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여행에서 역할이라도 분명히 나눠야 한다. 그래야 즐겁게 서로 도와가며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 과거보다 현재를 먼저한국에서 답사를 한다는 것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시간의 키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은 다르다. 공간마저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행을 준비할 때 그 나라의 과거라고 할 수 있는 역사, 문화에 너무 집중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면 그 나라의 현재라고 할 만한 즐길 거리나 음식이 여행을 훨씬 풍요롭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먼저 그 나라의 현재다. 그리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문화재나 미술작품이 있다면 자료를 구하는 것이 좋다. 이런 준비까지 염두에 둔다면 적어도 몇 달 전에 계획을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