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은 학교생활기록부에 한 줄 더 얹어주기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생들은 한 술 더 떠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작은 파장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급우가 맨토 맨티가 아니라 서로를 무너뜨려야 내가 산다는 경쟁자로 생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늘 편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치유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아이들을 자연이라는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주제별체험학습 일정을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첫 프로그램으로 옛 중앙선 간현역으로 이동해 레일바이크를 타도록 했다. 예상했던 대로 나뭇잎들은 파란 메스를 들고 하늘하늘 거리며 학생들의 머리를 열어서 자연의 공기로 채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급우들끼리 경쟁자라는 의식을 떨쳐버리고 하나된 모습으로 마음을 열고 몸으로 소통을 하고 있었다. 나무와 풀잎은 장자에 나오는 ‘포정’처럼 학생들을 선 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술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그저 웃고 떠들고 있었다.
학생들이 자연의 모습으로 너무 많이 닮아서 그랬는지 다음 여정인 김시습 기념관에서는 김시습이 세조에게 저항했던 숭고한 뜻을 저버리고 기념관 관계자가 김시습의 일대기를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눈과 귀를 닫고 자연만 찾는 모습을 보여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학생들의 관심이 이제 자연으로 돌아섰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서둘러 경포대 누각으로 안내했다.
경포대 누각은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새 깃으로 뚜껑을 꾸민 수레를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십 리나 뻗쳐 있는, 얼음같이 희고 깨끗한 비단을 다리고 다시 다린 것 같은 호수물이 큰 소나무 울창한 숲 속에 마냥 펼쳐졌으니, 물결이 잔잔하기도 잔잔하여 물속의 모래알을 헤아릴 만하구나. 외로운 배를 띄워 호수를 건너 정자 위에 올라가니”라는 구절을 읊었던 곳이다. 정철도 자연이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교과서라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노래한 것이 아닐까?
정철이 강릉 앞바다를 보고는 “강문교를 넘어선 곁에 큰 바다가 바로 거기로다. 조용하도다. 이 경포의 기상, 너르고 멀도다. 하늘과 맞닿은 저 바다 끝, 여기보다 더 아름다움을 갖춘 곳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라고 읊은 곳에서 학생들은 정철이 읊었던 내용을 몸으로 시연을 하고 있는지 바닷물에 발을 담그다가 모래 위를 뛰어다니다가 그것도 모자라 몸을 바닷물에 던져 바다와 한 몸이 되기도 했다.
바다도 나뭇잎이 수술한 부위가 곪아터지지 않도록 짠맛으로 소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연의 시술을 거부하는 아이들은 가차 없이 버스에서 내리게 해선 파도로 학생들의 마음을 수술대 위에 올린다. 아이들은 누구나 거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바닷물처럼 한 몸이 되어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두 팔을 벌려 하늘과 바다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다음 날,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바람은 나뭇잎이 아이들을 개복 수술했었고 바다는 소독한 부위를 잘 아물 수 있도록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봉합하고 있었다. 자연의 손길은 피 한 방울을 흘리지 않고 고난도의 시술을 하는 듯했다.
아이들이 퇴원하는 버스 안은 수술의 후유증일까 취침실로 변했다. 그동안 늘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춤을 추던 소나무도 더 이상 춤을 추지 않고 그냥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소나무는 한 마디 던진다. 너희들이 한 번 시술 받았다고 해서 완쾌되겠니. 자주 찾아와서 입원해야지. 일침을 놓고는 저만치 물러서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