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폭퐁우 속의 아이들

2017.05.29 09:33:50

폭풍우가 몰아 치는 날 하교를 하는 아이들이 무사히 집에 갈수 있도록 마을 앞까지 데리고 가서 넘실거리는 냇물을 건너도록 도와주어야 했던 지난날

S초등학교는 읍내에 있는 학교이긴 하지만 읍내의 주변 변두리지역의 아이들만 다니는 이상한 학교이었다. 읍내에는 N, S 두 초등학교가 나란히 있다. 두 학교의 사이는 가장 가까운 울타리에서 재어보면 불과 12m 밖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두 학교가 나란히 있는 것이다. 지도상에서 보면 두 학교 사이에 오솔길 같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울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학교가 나란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받아서 1910년 나라를 빼앗긴 뒤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서 새로운 교육제도인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N초등학교는 일본 사람의 아이들과 친일파의 관리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이었고, S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나서 새로운 학교를 지을 힘은 없고, 이미 있는 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읍내(읍내 시가지) 아이들은 N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읍내 변두리 비교적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S초등학교로 다니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읍내 시가지에 살던 친일파의 자손이나 벼슬아치들의 자손들은 일본인이 다니던 학교인 N초등학교에 가고 싶어 하였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일본 놈들이 다니던 학교라고 N초등학교를 싫어하여서 S초등학교로 보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좀 더 잘 살고 있던 시가지에 살던 사람들은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관리들의 가족이나 장사를 하여 돈을 번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일본 놈들이 다니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이기도 하여서 자식들을 이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기도 하였고, 시설이나 모든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녔던 학교이자,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살았던 자기들의 자손들을 일본 놈들이 다니던 학교에 보내기 싫다는 마음으로 시설이 좋지 못하고 학교도 더 작았지만, 오히려 S초등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N초등학교 아이들은 시가지에 사는 아이들만 다니게 되므로 해서 통학거리가 불과 몇 백 m 밖에 안 되었지만, S초등학교의 아이들은 6,7km 나 되는 먼 거리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비가 많이 내린다든지 하면 다리도 없는 큰 시내를 건너서 학교에 올 수가 없어서 빤히 강 건너를 바라만 보고 있다가 학교에 오지도 못하고 마는 일이 일 년이면 몇 번씩이나 되었다. 학교에서도 이런 날은 그 아이들에게 결석으로 달지 못할 정도로 배려를 해주어야만 하였다.

이렇게 통학길이 어려운 이이들 중에서 특히 대련리라는 마을의 아이들은 비만 오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오지 못하는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학교로 오는 길목에는 약 10m 안팎의 큰 시내가 있는데 장마가 지거나 홍수가 지면 시뻘건 흙탕물이 둑을 넘칠 듯이 넘실거리면서 흘러내리는데, 이 물을 건널 수가 없는 것이다. 어른들도 꼼짝 할 수 없이 물이 질어들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마을이었다.

여름 방학을 달포쯤 앞둔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6월 마지막 주의 목요일.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점점 세차게 퍼붓더니 점심때쯤에는 아주 그대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학교 운동장까지 풀장처럼 물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바로 이렇게 먼 거리를 가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학교에서 걱정이 되어서 임시로 선생님들의 회의가 열렸다.

“지금 비가 너무 와서 학생들이 돌아갈 길이 막히게 되었어요. 이 정도의 물이라면 지금 아이들이 집에 간다고 하더라도 물을 건너기 힘들 마을이 어디 어디인지 알아보시고, 그런 마을의 아이들은 모두 마을별로 모이게 해서 선생님들이 따라가서 아이들을 좀 건네주기도 하고, 무사히 물을 건너는 것을 보고 돌아오도록 합시다. 이런 엄청난 폭우 속을 아이들만 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우선 6학년 각 마을 별 애향대장 아이들을 불러서 그런 걱정이 있는 아이들이 사는 동네를 먼저 확인해 보았다. 애향대장 아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니 대련리, 쾌상리, 옥천리 세 동네가 어려울 것이고, 나머지 마을은 가서 길이 막히면 좀 돌아서 가면 되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곧장 교실로 돌아간 선생님들은 우선 세 마을의 아이들을 따로 모으고 젊고 힘이 있는 젊은 선생님들이 세 사람씩 함께 가서 아이들을 무사하게 물을 건너 주고 돌아오기로 하였다. 오후 둘째 시간인대도 책가방을 싸들고 나온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서 떠들었다.

안전하다고 인정된 마을이라도 선생님이 한 분씩 따라가서 안전하게 마을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 오기로 하고 모두 따라 나서기로 하였다. 가까운 곳, 안전한 곳은 여자 선생님들도 따라 나섰다.

대련리에 사는 박상주는 이제 5학년이었지만, 이 마을에 사는 6학년이 없어서 마을의 애향대장이 되어서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학교에 올 때만하여도 마을 앞의 시냇물이 너무 많아서 건널 수가 없어서 어른들이 와서 어린아이들을 일일이 건너 주어서야 학교에 올 수 있었어요.”
하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담임선생님이
“그랬어? 그럼 너희 마을은 지금 가면 못 건너게 되겠구나. 어른들이 나와서 건네줄 수 있겠니?”
“아마도 마을 앞에 가서 소리치면 나오시기는 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안심이지만 일단 내가 함께 가기로 하자.”
하교 담임선생님이 직접 따라 가겠다고 나섰다.

이 마을은 S초등학교에서도 가장 학교에서 멀고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아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합해 보아야 겨우 12명이었다. 6학년은 한 명도 없어서 아이들이 더 힘들어 하였다.

“선생님 우리 동네에 한 번도 와보시지 않았지요?”
“그래, 내가 너무 바빠서 너희 마을에는 가보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아니어요. 다른 선생님들도 너무 멀다고 안 오시는데요 뭐.”
“그래서 안 오셔서 섭섭했었구나.”
“예, 우리 동네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도 한번 우리 집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기다리고 그래요.”
“ 와! 그렇게 기다리는데 못 가보아서 정말 미안한데. 내가 언제 꼭 한 번 찾아보아야 하겠구나.”

이제 3학년 아이의 손을 잡고 가면서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 이었다. 이 아이가 자기 담임도 아닌 오빠의 담임을 이렇게 따르고 친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이 너무 멀고 산길을 걸어서 가야 하니까, 어린 동생을 혼자 보내지 못하고, 5학년 오빠가 기다리라고 하여서 늘 교실 밖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다니곤 하였기 때문에 오빠 담임선생님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정말 한 번 오실 거죠? 오빠가 있으니까 우리 집에 꼭 오셔야 해요.”
아이는 퍼붓는 빗속에서도 선생님과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이 한 없이 즐거운 듯 신바람이 나서 겅중거리기까지 하면서 소리친다.
“그래 꼭 갈께. 오늘은 비가 와서 못 가고 다른 날 가야지?‘
“네, 좋아요.”

이렇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빗속을 걸어서 40여분이나 걸었으니 아마도 3km 정도는 걸어온 것 같다. 고개를 넘으니 드디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산비탈에 올망졸망한 초가집에 여남은 채나 모여 살고 있었다. 건너편 산비탈에 있는 동네를 가려면 들판을 가로질러서 가야하고 저 들판의 복판을 흐르는 시내를 건너야 하였다. 그런데 그 시내에는 다리가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징검다리를 건너서 다녔지만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징검다리가 다 물 속에 잠겨 버리기 때문에 건널 수가 없단다.

학교에서의 거리는 약 3km정도로 가장 먼 마을인 쾌상리에 비하면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이지만, 학구 안에서 가장 산골짜기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고, 사람 수도 적은 그런 마을이었다. 다른 마을과 외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행정기관에서도 따로 구분을 하고는 있지만, 인구도 적고 교통도 불편하여서 여간 힘들게 사는 마을이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가난한 마을이었다.

“와! 너희들이 사는 마을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렇게 처음 와보니 참 아름다운 동네인데, 저 시내에 다리가 없어서 너희들이 고생이 많구나.”

“네, 어떨 때는 비가 많이 와서 학교에 가지 못할 때도 있어요. 오늘은 학교에 왔다가 집에 못 들어갈까 봐 걱정이지만 아침에 이렇게 물이 많으면 학교에 가지 말라고 마을에서 못 가게 해요. 물 무섭다고.....”

애향대장이자 내 손을 잡은 박형란의 오빠인 박상주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이었다. 아마도 동생과 하는 이야기를 뒤따라오면서 다 들은 모양이었다.


“아! 이제 마을에 거의 왔는데, 너는 이 물을 건너는 길을 알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이제 네가 앞장을 서서 우리를 안내해 주어야 선생님들이 들어가서 너희들을 붙잡아서 물을 건너 줄 것 아니겠니?”

“예, 제가 앞장설 게요. 지금 물이 많아서 선생님들도 위험해요. 동네 아저씨들이 나올 텐데..... 아마도 우리들이 일찍 오니가 아직 올 때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시고 기다리고 계시는가 봐요.”
하면서 의젓하게 길 안내를 맡아 주었다.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 앞으로 가니 시뻘건 황톳물이 둑을 타고 넘을 듯 넘실거리는 시내가 앞을 가로막는다. 늘 다니던 길을 갔으니 바로 이 지점 쯤에 건너다니던 징검다리의 디딤돌들이 있을 텐데 싶어서 가만히 물을 바라보니 황톳물이라고 하여도 징검다리의 흔적이 조금씩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우선 열 두 명의 아이들에게 물을 건너기 위한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남자들은 각자의 바지를 벗어서 바지를 가지고 자신의 책가방을 등에 바짝 잡아매도록 하였다. 여자들은 치마를 입었으니 어쩔 수 없이 자기 가방을 머리에 이고 건너도록 하였다. 

세 분 선생님들이 조심조심 징검다리를 찾아서 자리를 잡았다. 가장 튼튼한 사람이 제일 먼저 건너가면서 마을 쪽을 맡았고, 다음엔 중간을 그리고 맨 나중엔 이쪽에서 건네주는 역할을 맡았다. 징검다리를 두 개씩 맡아서 자리 잡고 어린 1학년 여자아이부터 오라고 하여서 붙잡아서 건네주고 다음 사람이 받아서 다음으로 이렇게 해서 건너편에 올려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3학년까지는 거의 붙들어서 건네주었지만, 4,5학년은 하는 수 없이 선생님이 딛고 있는 돌을 밟으면서 건너오고, 선생님이 손을 붙잡아서 안전하게 건너도록 해주기만 하였다. 선생님의 허리 부근까지 차는 물을 건너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간신히 12명의 어린이들을 다 건너주고 맨 앞장을 섰던 선생님이 건너오는 것을 함께 붙잡아서 건너오고 나니 마을에서 어른들이 서너 명이나 나오셔서


“아니 선생님들이 여기까지 오셨네요. 이렇게 일찍 올줄 모르고 기다리고 앉았다가 그만 오는 줄을 몰랐네요. 선생님들 정말 애들 쓰셨습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일을 하느라고 옷들이 저렇게 다 젖었으니 어쩝니까?”
하고 출렁거리는 시냇물 소리에 잘 들리도록 악을 써서 얘기를 하였다. 이쪽에서 선생님들도 손나팔을 하여 가지고 “무사히 잘 건넜으니 이제 우리들은 돌아가겠습니다. 수고들 하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저쪽에서 꾸벅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쪽에서도 손을 흔들면서
“수고들 하십시오. 돌아가겠습니다.”
“안녕히들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서로의 인사 소리를 들으면서 손을 흔드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선생님들은 이제 40분 정도를 비를 맞으면서 학교까지 돌아갈 일이 심난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저렇게 넘실거리는 물속에서 아이들을 무사히 보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기만 하였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아무리 억세어도 “이까짓 거” 하는 마음으로 한결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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