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과 콩나무 속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2017.07.01 00:00:00

김정금의 옛날 옛날이야기

옛 동화 속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은근히 많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주인공을 빗대 이 표현을 사용하기 전에 이미 옛이야기 속에 수없이 재연, 재현되고 있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갔을 뿐.


오늘은 그 동화들을 살펴보기 전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내용이 무엇인지 조금 상세히 알아보겠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면 그저 막연히 아들은 엄마를, 딸은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콤플렉스 흐름에 따라 딸이 엄마를, 아들이 아빠를 더 좋아하는 심리성적 변화의 시기가 있는데 이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 중 엄마와 아빠 가운데 누구에게 더 강하게 동일시하는가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이후 프로이트의 제자인 분석심리학자 융은 이를 여아의 경우에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부르기도 했는데 최근의 현대정신분석에서는 용어를 구분치 않고 여아와 남아의 구분을 둘 뿐 그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통칭하고 있다.


이번에는 먼저 라캉의 제자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아르헨티나 출신 나지오의 이론과 정리에 근거해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발달 과정을 한 번 들여다보자.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한번 상상해 보자. 이제 막 네 살이 된 남자아이는 어느 날 자기 몸에 매달린 작은 ‘덩어리’를 보게 된다. ‘어? 이게 뭐지’ 가만 생각하니 이것은 자기 몸에서 나오는 물, 오줌이 나오는 길이다. 어디 한번 만져볼까?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만져보니 그것참, 느낌이 나쁘지 않다. 이때 엄마를 쳐다본다. ‘아, 엄마도 이게 있겠지’ 짐작하고 이번에는 멀리서 신문을 보고 있는 아버지를 쳐다본다. 산처럼 우뚝 선 모습의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감이 생긴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것’을 상상한다.


이때부터 아이는 자기의 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몸에도 달린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렴풋이 느낀다. 자신이 가진 힘 있는 무언가, 즉 팰러스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것’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새삼 뿌듯함과 기쁨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기쁨을 느끼자 이번에는 공포감이 찾아온다. ‘만약, 이것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만약 이것이 잘려진다면?’ 이때부터 아이는 막연한 거세의 공포감을 안고 살게 된다. 다칠까 봐, 잘릴까 봐.


그 와중에 아이는 막연한 ‘어머니를 향한 사랑’, ‘어머니를 향한 경도(傾倒)’를 경험한다. ‘나도 아버지가 가진 이것을 가졌는데, 내가 어머니를 가질 수는 없을까?’ ‘내가 어머니의 남자가 될 수는 없을까?’ 부모들을 소유하고 싶고 또 소유 당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더 나아가 아버지를 이기고 싶은 마음도 가진다. 이 시기의 아이는 이 막연한 희망과 근친적 판타즘(Fantasm, 꿈 또 는 환상) 경험하면서 동시에 경쟁자인 아버지로부터 당할 ‘벌’인 거세를 상상한다.


그 와중에 아이는 여동생의 몸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막연했던 공포, 단지 어른들이 농담으로 던졌던 그 공포의 말 “어허, 그러다 떨어진다”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 어쩜 내가 잘못하면, 내가 어머니를 내 것으로 소유하겠다고 꿈꾸면 저런 벌을 당할 수가 있겠다’는 식으로 막연했던 느낌이 매우 구체적인 공포로 아이를 감싼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말을 조금 인용해 보자. 프로이트는 아이들이 겪는, 성기 거세를 준비하게 하는 두 가지 경험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하나는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배설에 필요한 일상의 욕구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 후 여자의 성기를 보게 되는 새로운 경험으로 거세의 가능성을 깨닫게 되고 마지못해 자신이 본 것의 심각성을 완화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의 성기를 봄으로써 ‘자기의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이는 점차 자기와 똑같은 어떤 아이는 ‘이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것도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프로이트는 아이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를 능동과 수동의 두 측면에서 모두 만족을 주게 된다고 한다. 능동적인 측면은, 자신을 남성으로 아버지의 위치에 놓고 아버지처럼 어머니와 관계를 가지려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아버지는 엄연한 방해꾼이고 장애물이다. 반면에 수동적인 측면에서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 경우 어머니는 ‘필요 없게’ 된다. 물론 아이는 무엇이 에로틱한 성행위를 만족시켜줄지 잘 모르지만 자신의 ‘이것’, 즉 페니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된다. 바로 그 페니스를 통해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판타즘도 거대한 그물처럼 자신을 감싸는 거세 공포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더구나 여동생 등을 통해 그것이 없는 아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때 아이는 자기 속에서 하나의 타협점을 만든다.


‘그래, 차라리 포기하자. 내가 어머니의 남자가 되는 것도, 아버지에게 온전히 소유 당하고 싶은 이 모든 욕망도 포기하자.’ 이때부터 아이는 모든 욕망과 판타즘과 불안을 잊고 부모에게 향했던 성적 요소들을 걷어내는 부모로부터의 ‘탈성화’에 돌입한다. 온전히 자신의 팰러스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선 부모들이 가졌던 그 모든 도덕심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라캉의 말대로 본격적인 상징화의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는 아버지가 한 사람의 남성이고, 어머니가 한 사람의 여성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점차로 한 명의 남성의 길에 들어서면서 잠시 자신이 가졌던 모든 판타즘을 잊고 ‘성기기’의 잠복기에 돌입한다. 사춘기를 맞이할 때 다시 한 번 그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유혹을 받게 되더라도 곧 강력한 슈퍼에고의 도움으로 건강한 남성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 한 명의 남성이 된 잭

간단치 않은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잭과 콩나무에 그대로 들어 있다.

잭이 밀키화이트라는 젖소를 팔러 가서 얻어 온 씨앗. 그 씨앗은 아침에 일어나니 거대한 콩나무로 변해 있고 방은 어둡다. 그리고 콩나무를 오르는 잭. 콩나무의 끝 거인의 집에 다다른 잭은 달콤하고 신기한 것들을 맘껏 취하는 와중에 거인의 등장을 맞닥뜨린다.


앞서 아들의 발달 시기에 맞춰 밀키화이트를 끊어내고 이제 그만 바깥으로 나가라는 엄마의 요구가 일종의 구순적 욕망을 끊어내는 단계였다면 길가에서 만난 씨앗을 줬던 남자와 이 거인은 잭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상황에서 만나는 아버지의 다른 두 모습이다. 성장의 과정에 씨앗을 주며 참여했던 아버지는 다시 거대한 거인으로 나타나는데 이때의 거인은 자기의 것을 ‘훔치러 온’ 잭을 용서하지 않고 따라붙는 과정에까지 이른다.

이때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은 잭이 거인의 집에서 숨는 오븐과 무쇠솥이다. 특히 어머니의 현현(顯現)이라 할 수 있는 거인의 아내가 잭을 이 오븐과 솥에 숨겨주는 행위는 통상 연구자들에 의해 구순성으로 돌아가는 퇴행으로 설명되고 있다. 분명 밀키화이트를 끊어내면서 구순기를 탈피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종종 위기의 순간, 특히, 자기 성장의 확신이 흐릿해질 때 다시 무언가를 빠는 행위, 어머니의 젖을 다시 파고드는 행위, 구순기로 퇴행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눈여겨볼 또 하나의 부분은 마지막 통나무를 내려오는 잭과 쫓아오는 거인의 모습, 그리고 이것에 대처하는 제삼자인 어머니의 상황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책들에서는 정확히 표현되고 있지 않지만 그림 형제의 원 판본을 보면 나무를 내려오다 위험에 빠진 잭이 어머니에게 도끼를 가져오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어머니가 거인의 ‘거대한 다리’를 보고 얼어붙어 버린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상황에서 어머니는 도끼를 떨어뜨리고 하는 수 없이 잭이 그 도끼를 다시 집어 나무를 베고 거인이 추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심리성적 발달 단계, 특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겨낼 힘은 그 누구도 아닌 잭, 즉 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의 여자가 될 수 없듯이 어머니는 거인을 대신 죽일 수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아이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죽음은 자기 속의 모든 근친상간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잘라내는 것, 거인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형상마저 스스로 잘라내는 것만이 아이가 온전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겨내는 길이란 얘기다.


스스로 자기 속의 위험을 베어내는 것, 처벌하러 내려오는 거인이 된 아버지마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과정, 그 속에서 드디어 온전한 남자, 잭이 태어나는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남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동화를 살펴보자.


김정금 르포작가·한국현대정신분석학회((구)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 정회원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