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력을 지닌 교육
<창고 앞 자갈 밭에서 꽃을 피운 백일홍의 장한 모습>
바다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 가운데 유독 상어만 부레가 없다. 부레가 없으면 물고기는 가라앉기 때문에 잠시라도 멈추면 죽는다. 그래서 상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하고, 그 결과 몇 년 뒤에는 바다 동물 중 가장 힘이 센 강자가 된다. -장 쓰안 《 나를 이기는 힘 평상심 》 중에서
학교 뒤 창고 앞 자갈밭에 홀로 핀 백일홍의 모습이 무더운 날씨로 시작하는 하루를 설레게 합니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닐 텐데 저 자리에서 저렇듯 옹골차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은 모습이라니! 눈만 뜨면 위대한 스승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것들의 특징은 어려움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사물과 사람입니다. 잘 자라라고 누군가 물을 준 것도 아니니 저 홀로 조절하며 뿌리를 내리고 싹을 키우고 꽃을 피웠으니.
오늘은 백일홍의 당찬 기개가 책 한 권의 힘보다 강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매우 좋은 환경에서도 불평불만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육은 바로 그 환경에 굴하지 않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음을 백일홍은 말없이 강변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탓, 가정환경 탓, 아이들 탓을 하지 말라고 내게 이르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지역사회가,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자갈밭이더라도 저 백일홍처럼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명감으로 가르치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굶어죽은 갈매기 이야기
미국 플로리다주 북동부에 위치한 세인트 어거스틴은 1년 내내 온난한 계절로 새우가 많이 잡히기로 이름난 황금어장이다. 항구에는 새우잡이 배들로 늘 붐볐고 수많은 갈매기들도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갈매기들이 굶어 죽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거의 모든 갈매기들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갈매기들이 굶어 죽는 까닭을 알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동안 갈매기들은 수많은 새우잡이 배들이 만선으로 들어와 배에서 그물을 끌어올릴 때마다 그물에서 떨어지는 새우 들을 힘 안들이고 주워 먹으며 살아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새우잡이 배들이 기후변화로 인하여 모두 남쪽으로 자리를 옮겨가 버리자 스스로 먹이 잡는 것을 잊어버려 점차 굶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자립하는 힘이 없어진 것이다.
아침 출근을 하면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새들의 노랫소리와 새로 피어난 꽃들을 보는 재미를 찾습니다. 오늘은 토끼들이 탈출하여 토끼장 주변을 맴도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어찌어찌 탈출은 하였건만 살아온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잡아서 넣어주고 싶었지만 능력 부족이라 그저 한숨만 쉬었지요. 길들여진 토끼로 자랐으니 야생의 습성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집토끼로 사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 인간을 닮았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성공은 교사의 손에
자갈밭에서 꽃을 피운 백일홍은 부레가 없이도 바다에서 강자로 살아남은 상어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환경을 역이용하는 그 지혜로움,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그 운명을 끌고 가는 모습에서 상어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배웁니다. 그리고 정원이 아닌 곳에 피었다고 뽑아내지 않고 기다려준 교직원들의 사랑도 들여다봅니다. 그러면서도 집토끼가 되어버린 토끼를 보며 틀과 규칙과 온갖 규정으로 꽉 찬 공교육의 패러다임 속에서 우리 아이들도 저 토끼처럼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교사의 교육과정을 중시합니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학생과 지역 실정, 학교의 환경에 맞게 재구성하고 재편성하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교육과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르는 제자를 상어처럼, 백일홍처럼 기를 것인지, 자생력을 잃은 토끼처럼 살게 할 것인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교직의 무거움과 숭고한 책무감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내일은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함께 토끼몰이를 해야 할 듯합니다. 토끼가 집을 나가서 걱정이라는 내 말에, 우리 1학년 꼬마 선생님 조민경 양의 명언으로 이 글을 닫습니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 토끼는 배가 고프면 다시 토끼집으로 들어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