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

2017.08.01 00:00:00

김민철의 야생화 이야기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는 교과서에도 나오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나기’에 마타리꽃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년과 소녀가 산 너머로 놀러 간 날, 소년이 소녀에게 꺾어 준 꽃 중에서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이 마타리다.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마타리꽃은 여름에 피는 대표적인 꽃 중 하나다. 늦여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언덕 여기저기에서 황금색 물결로 흔들리는 꽃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마타리 무리다.


꽃은 물론 꽃대도 황금색으로 강렬하기 때문에 시선을 끄는 데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렵다. 마타리는 1미터 넘게 자라 다른 풀 위에서 하늘거린다. 그래서 바람이라도 불면 하늘거리는 모습이 애절하기까지 하다. 마타리를 양산처럼 들고 소년을 향해 살포시 웃는 소녀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애절한 느낌을 더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왜 마타리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가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를 오간 이중간첩 ‘마타하리(Mata Hari)’를 연상시켜 외래어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순우리말이다. 줄기가 길어 말(馬) 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타리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하도 냄새가 지독해 맛에 탈이 나게 하는 식물이라 ‘맛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배가 아프면 배탈인 것처럼, 맛이 탈 나게 해서 맛탈이(마타리)라는 것이다.



경기도 양평에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이 있다. 황순원 선생의 고향은 북한인 평남 대동군이고 2000년 타계하기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문학관은 주로 작가의 고향이나 생가에 위치하는데, 왜 양평에 황순원 문학촌이 있을까. 그 이유는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딱 한 줄 때문이다. 바로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이다. 이 한 줄을 근거로 황순원이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한 경희대와 양평군이 양평에 소나기마을 건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양평에서 가장 소나기다운 마을인 서종면 수능리를 찾아냈다.


소나기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광장의 수숫단들이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하기 위해 작은 움막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수숫단이다. 3층짜리 황순원 문학관도 이 수숫단 모양을 본떠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마타리꽃 사랑방’도 있다. 이 ‘마타리꽃 사랑방’ 입구 벽에는 문학관 주변에서 나는 특이한 냄새의 정체를 알려주는 작은 안내문이 있었다. 마타리꽃이 필 즈음 특이한 냄새가 나니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도서관 학생들과 함께 탐방을 가보니 마타리 군락도 없고 안내문도 사라지고 없었다. “왜 마타리가 없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다들 얼버무렸다. 아마 냄새 때문에 없앤 것 같았다. ‘마타리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이 냄새는 간장 냄새 같기도 하고 똥 냄새 같기도 하고 축사 냄새 같기도 한데, 시골 노인들은 이 냄새 때문에 마타리를 ‘똥 꽃’이라고 불렀다. 한방에서는 간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마타리를 ‘패장(敗醬)’이라고 부른다.


소년의 첫사랑 같은 마타리, 하지만 냄새는…
가을 산행 철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에는 “지리산 곳곳에서 사람들이 볼일을 봐서 그런지 분뇨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내용의 항의 전화가 적지 않게 온다. 그러나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는 “냄새의 주범은 사람의 분뇨가 아니라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 바위틈에 주로 사는 ‘금마타리’라는 식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을철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금마타리는 사람의 분뇨 냄새와 비슷한 야릇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는 “지리산을 오르다 이상한 냄새가 나면 주위에 금마타리가 노랗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라”며 “금마타리의 독특한 냄새를 자연의 향기로 생각하면 더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타리는 사람이나 짐승이 가까이 가거나 뿌리를 캐려 하면 더욱 심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컹크가 위험할 때 냄새를 뿌리듯이 마타리도 냄새를 자기방어 물질로 활용하는 것이다. 마타리는 인분 냄새가 나지만 노루오줌 등은 오줌 냄새가 나 이름에도 ‘오줌’이 붙었다. 마타리가 냄새는 좋지 않지만 예쁜 꽃이듯이, 노루오줌도 이름과 달리 연분홍색 꽃이 아주 근사하다.


마타리는 마타리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서식환경이 까다롭지 않아 전국의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다. 마타리는 줄기 끝에 꽃들이 모여 피는데, 아래쪽일수록 꽃송이가 길고 위쪽일수록 짧아 꽃들이 거의 평면으로 피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이런 꽃차례 형태를‘산방꽃차례’라고 부른다. 그래서 꽃 모양이 우산 중에서도 바람에 뒤집어진 우산 모양이다. 마타리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다. 필자의 두 번째 책 ‘문학이 사랑 한 꽃들’ 표지 그림으로 쓴 꽃이기도 하다.




마타리와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뚜깔’이 있다. 마타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꽃이 흰 색인 점이 다르다. 뚜깔은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마타리 얘기하면서 금마타리, 돌마타리를 빼놓을 수 없다. 금마타리는 마타리보다 크기가 작고 잎도 넓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주로 높은 산 바위틈에서 자란다. 마타리는 1~1.5m 정도까지 자라지만, 금마타리는 30cm밖에 자라지 않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돌마타리도 역시 산에서 자라는데 마타리와 금마타리의 중간 크기(20~60㎝)이고 잎이 길쭉한 편이다.


황순원의 ‘소나기’에는 마타리 외에도 갈꽃(갈대꽃), 메밀꽃, 칡덩굴, 등꽃, 억새풀, 떡갈나무, 호두나무 등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나기’는 여러 가지로 참 예쁜 소설이다. 마치 스토리가 있는 한 편의 시(詩) 같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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