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하기 어려운 존재이지만 마지막까지 변해가는 사람이 있다. 그의 삶의 모습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바로 그런 사람이 김 선생님이시다. 필자(이기홍)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김광섭 교장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판 앞에 서니 조심스럽기가 짝이 없다. 그만큼 김 교장은 우리 대학 동기들 사이에 신화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 교장은 끊임없는 도전을 한 사람이다. 1973년에 교직을 초등교사로 출발했으나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역사 전공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도전해 단번에 합격을 했다. 중등교사가 된 후로 전남,광주지역에서 단 한 사람을 뽑는다는 한국교총 파견 연구 교원 선발시험에 응시해 전남,광주지역의 유일한 파견연구원으로 서울에 근무하면서 교육발전에 관한 공헌을 하는 등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또, 그 시간을 아껴가면서 공부를 해 3년의 파견기간 동안 재일 한국교육원 원장이 되기 위해 일본어에 도전했고, 결국 해외 한국교육원장 선발 경쟁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한 후 5년 동안 거주했다. 자녀들도 일본인 학교에서 교육하는 기회를 가졌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국제학교에 보낸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일본인 학교에 보내 일본 초중등교육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고질병이 돼 도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다 2005년 2월, 일본 발령을 받아 전무후무하게 주일한국교육원장을 두 번이나 했다.
그래서 다소 교장 승진이 늦어졌지만 두 번에 걸친 한국교육원장 근무로 삶의 폭과 깊이를 심화시켜 주었음은 물론이다. 필자가 도교육청에서 전라남도 교민합동 해외연수 업무를 추진을 할 때 김 교장은 일본 구마모토교육원장으로 재직 중 자진해서 방문지 교섭 등 종횡무진 맹활약을 해 주었다. 김광섭 원장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해외연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교민합동 해외연수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김 교장은 그 후로도 도전을 쉬지 않았다. 필자의 권유로 전문직에 도전해 전남교육연수원 연구사를 거쳐서 도 특수담당 장학사가 됐고 공명정대한 업무로 전남 특수교육의 질을 향상 시켰다. 장학사 근무중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다시 한국교원대학교 정책대학원 공부를 선택해 학업의 길도 다가갔다. 교감이 돼서도 결코 쉬운 승진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중등학교 경우는 소규모 학교가 많기 때문에 교감 승진이 어렵지만 일단 교감만 되면 교장 승진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김 교장은 그런 길을 놔두고 공모교장의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 김 교장이 택한 2010년 9월부터 광양여자중학교에서 4년을 보낸 그 기간이 그에게 있어서는 교직생활 40여 년 가운데 클라이맥스가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도대체 김 교장이 발산한 그 많은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일까. 끊임없는 도전을 향한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래도 그의 독실한 신앙심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기독교 신앙 동아리 CCC 회원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교직 40여 년 동안 한 번도 신앙심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저변에는 언제나 기독교적 신앙심이 깔려 있었으며, 항상 주님 안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김 교장이 특수담당 장학사로 재직하던 시절 한 번은 업무 관련일로 상급자와 다툰 일을 본적이 있다. 연장자에 대한 우리의 관행이나 상급자에 대한 우리의 풍토로 볼 때 그것은 쉽지 않는 일로 여겨졌으며, 필자 또한 김 교장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김 교장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항거, 그 결과가 뻔히 자신에 대한 불이익으로 귀결될 줄 알면서도 이를 결코 지나치지 못하는 김 교장의 삶의 자세는 그의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 후 김 교장은 아마도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그는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기에 시험에 들지 않고 그의 길을 갈 수가 있었고 오늘의 자신감 넘치는 김 교장이 됐다고 생각된다. 김 교장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필자에게 먼저 연락을 해왔다. 전화나 서신으로 정을 듬뿍 담은 연락을 주었다. 서울 교총 연구실에서도, 일본 교육원에서도 필자에게 먼저 정을 보내왔다.
참으로 나보다는 몇 곱절을 더 의미있게 잘 살아온 사람이다. 이제 김 교장도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퇴임 후에도 굳건한 신앙심으로 그는 더욱 더 왕성한 활동을 할 것이다. 그 활동 반경은 결코 한반도 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또한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의 인생 2막을 기대해 본다. 한마디로 그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피안에 이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