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여기가 정수네 집이예요.”
“응, 그래 ? 고맙다. 이제 알았으니 넌 돌아가거라.”
“선생님 안녕히 다녀가세요.”
“그래, 잘 가 !”
영우의 인사를 받으며 선생님은 비탈길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찾아가는 정수는 이제 국민학교 5학년생입니다. 집안이 넉넉지 못하여 어머니가 생선을 받아 이고 다니면서 팔아서 집안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찾아가는 집도 언덕위에 덩그랗게 서 있는 자그마한 것으로, 읍내에서 주욱 벗어나서 5일 장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가에 서 있는
정미소 뒤쪽의 언덕위에 있는데, 언덕이 어찌나 높은지 아래에 정미소가 지붕만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전근을 오시기를 묘하게도 12월에 오셨기 때문에 말썽꾸러기 우리 반을 맡게 되셨습니다. 우리 반의 아이들은 67명이었는데, 어찌나 말썽을 피웠던지 도무지 이웃 학교까지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시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작년 12월 우리가 아직 4 학년 2 반 이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쓰시고서 간단히 소개를 하신 다음에 우리에게 한 사람씩 자기를 소개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67명이나 되는 우리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들의 숫자가 많기도 하였지만, 그 보다는 우리들이 어찌나 말을 잘 하지 못 하던지, 다시 하라고 시킨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윤 경식입니다. 축구를 잘하고 공부는 중간도 못 됩니다.”
하고, 자신을 소개한 경식이 다음부터는 거의 열명이 지나도록 자기를 소개하는 말이 우리들의 귀에도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랬으니, 우리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킨 선생님이야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짐작이 갔습니다.
“자 이렇게 간신히 자신을 소개하다니 참 한심하군. 그런데 너희들 손 좀 보자. 아니 이게 어디 손이냐 ?”
선생님은 아주 낯빛까지 변하시면서 얼굴을 찡그리셨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찌나 장난꾸러기에다가 전번 선생님께서 체육을 맡으셔서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우리들은 우리끼리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있던 참이라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들 이었습니다.차가운 겨울이건만 날마다 운동장에서 구슬치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니, 우리들은 한두 사람을 빼놓고선 모두가 손등이 갈라져서 피가 흐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아주 무섭게 다루셨습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그만 우리 교실에서 소리를 지르시면 이웃교실에서 아이들이 기웃거릴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손 깨끗이 하기, 떠들지 않기, 숙제 잘하기는 날마다 조사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 교실은 일 주일 만에 다른 교실보다 더 깨끗하고, 조용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교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같은 망나니들을 맡을 선생님이 없고, 그 아이들을 다룰 사람은 선생님뿐이라고, 교장선생님이 다시 5학년 담임선생님으로 또 우리를 맡게 하셨기에 우리는 그대로 5 학년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이들도 하나도 바뀌지 않고 선생님도 다시 맡아서 우리는 아주 다른 반보다 빨리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이 찾아가시는 정수는 유명한 말썽꾼으로 아직도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아이 중에서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수가 하고 다니는 짓을 다 이야기 한다면 아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수와 가장 친하고, 가끔 같이 가서 정수가 하는 짓을 보았으니까 내말은 절대로 거짓말은 아닙니다.
정수는 4학년 때부터 동네에서 너댓 살이나 위의 형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그 형들과 같이 나쁜 짓들을 하였습니다. 형들이 하는 대로 담배를 피우고, 구두 닦는 형들과 화투를 쳐서 돈내기 노름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돈을 훔쳤습니다. 불쌍한 어머니가 생선을 팔아서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온종일 헤매고 다니다가 지쳐서, 저녁 일찍 잠이 들면 돈주머니에서 돈을 빼어내는데 한두 번이 아니고, 처음에는 자기가 사먹을 만큼의 돈만 가지고 나오더니, 나중에는 그 돈주머니를 통째로 들고 이웃 도시로 나가서 며칠이고 돌아다니며 돈을 다 써 버리고 거지꼴이 되어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4 학년 때에도 두 번씩이나 이런 짓을 해서 학교에서는 이미 소문이 나 있는 아이 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틀린 아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이 입니다. 5 학년에 올라와서 얼마 되지 않은 4월 초순에 정수는 6일째 결석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정수의 일을 자세히 알아보시더니 드디어 오늘은 정수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서 직접 찾아오신 것입니다.
“정수 집에 있니 ?”
“넷 ?”
“응, 마침 집에 있었구나. 난 또 어디 나가 버렸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지......”
하고, 선생님이 들어서자 정수는 눈이 똥그래가지고 선생님께 인사도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말썽만 피우는 자신을 이렇게 직접 찾아 오셨으니 면목이 없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얼굴을 보셨으니 숨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가이 맞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안녕 하십니까 ?”
“으응, 그래, 혼자 있니 ?”
“네.”
“다들 어디 가셨어 ?”
“어머니는 아직 안 오셨고, 아버지는 어디 놀러 가셨나 봅니다.”
“그래 ? 차라리 잘 되었구나. 그럼 나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나 좀 할 수
있겠지 ?”
“네.”
선생님은 정수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손에 들고 가셨던 책은 마루 귀퉁이에 놓아두고 방안에 들어선 선생님은 재빨리 방안의 형편을 살펴보고 정수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생각하셨습니다. 가난의 때를 벗어나지 못한 듯한 궁색한 살림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수야,너 요즘 무엇 했니 ? 오늘로 일주일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데.... ? 어디를 다녀 온 것이냐? 아니면 집에 있으면서 안 나온 것이었냐?”
하고, 선생님이 물으셨지만 정수는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김정수 !”
선생님의 엄한 목소리가 정수의 목을 움츠리게 하였습니다. 정수는 무어라고 대답은 하여야겠는데 어떻게 말을 하여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김정수, 이번에는 얼마나 가지고 나가서 5일간을 살다가 돌아 온 거야.
엉.”
선생님은 이미 정수의 버릇을 다 알고 따지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거짓말을 잘 하는 정수라도 이젠 더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잘 못했습니다.”
“잘 못 했다구 ? 무얼 어떻게 잘못 했다는 말이냐 ?”
“..........”
정수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자, 이제 선생님이 다 알고 왔으니 차근차근 이야기 해보자. 우선 어디로 갔다 왔니 ?”
“네, 이웃한 K 시에 갔다 왔습니다.”
“응,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왔지 ?”
“닷새 만에 돌아왔는데 염치가 없어서 여기저기 헤매다가 오늘 점심때에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왜 염치가 없었어 ?”
“어머니 돈을 가져다가 써버려서요.”
“어머니 돈을 쓴 게 염치가 없었다면, 앞으로는 안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게 하면 되지 않아 ?”
“선생님 저도 그럴 생각이야 하지요. 그러나 나도 모르게 가끔씩 그러게
됩니다.”
“정수야, 그럼 넌 지금 네가 한일이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미안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니냐 ?”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버릇이 잘못 들어서 그러지 알고는 있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도와 줄 테니까 한번 열심히 고쳐 볼 수 있겠니 ?”
“저도 이젠 고쳐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자, 좋다. 그럼 앞으로 내가 열심히 도와 줄 테니까 내일부턴 아무 소리 말고 학교에 나와야한다. 알겠니 ?”
“네. 내일은 틀림없이 학교에 나가겠습니다.”
“그래, 우리 정수가 선생님과 약속을 지키면 너는 이제 차츰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선생님은 정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집을 떠나셨습니다. 정수는 집 앞까지 따라 나와서 선생님을 배웅하고 돌아왔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정수는 마루 한 귀퉁이에 놓인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책이지 ?’
정수는 책을 들고 뛰어 내려가서 선생님꼐
“선생님 이 책을 두고 가셨는데요 ?”
하고 책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시던 길을 멈추고 정수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셨다가
“으응, 그 책 재미있어서 내가 읽던 것인데, 네가 읽고 싶으면 먼저 읽고 줄래 ?”
하시면서 정수에게 주고서 가셨습니다. 책을 들고 돌아오면서
‘이게, 무슨 책인데 선생님이 재미있어서 읽다가 두셨을까 ?’
정수는 더욱 궁금증이 생겨서 책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책은 「피노키오」였습니다. 선생님이 읽다가 두셨는지 책의 중간쯤이 접혀져 있었습니다. 정수는 책을 펼쳐서 선생님이 접어둔 곳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피노키오는 무서움에 떨며,
“아저씨 전 죽기 싫어요.......”
하고 몸부림을 치자 주인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더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하였습니다.
“에취 !”
주인의 재채기 소릴 듣고, 풀이 죽어 있던 하리스가 피노키오에게
“피노키오! 주인은 몹시 불쌍하거나 가엾다고 생각되면 재채기 하는 버릇이 있어요.”
주인은 연거푸 재채기를 하며...........
“어어, 이거 아주 재미있잖아.”
정수는 저녁을 먹는 것도 잊고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아니 책을 읽는 다기 보다는 책 속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갈수록 피노키오의 하는 짓이 자기 자신과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안 듣고 제멋대로 날뛰는 피노키오는 어쩌면 정수 제 자신의 이야기인 듯만 싶었습니다.
“자식 정말 바보 같이 거짓말은 왜 해. 그러니까 하마터면 죽을 뻔 했잖
아.“
혼잣말을 하면서 그냥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날 밤은 처음으로 12시 사이렌이 울리도록 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어머니가 들어 오셔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시고선
“제 어미 못할 일만 시키고 이제 와서 웬 일이야 ?”
하시고 다른 말씀을 안 했습니다. 이미 한번 두 번이 아니고 또 말을 해 봤자 쇠귀에 경 읽기 라고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정수는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겠는데 도무지 염치가 없어서 사과말씀을 드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모른 채 하고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두고 가신 책이 정수의 난처한 입장을 피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어쨌든 정수는 이제 이 책의 선생님이 접어둔 곳에서 뒷부분을 거의 다 읽어 버렸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정수는 다른 날과 아무런 다른 점이 없이 책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로 갔습니다. 지금까지 같으면 며칠씩 학교를 빠지고 나서 학교에 가려면 아주 창피하고, 겸연쩍어서 학교에 들어가기가 싫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그냥 다니던 학교에 가는 것처럼 아무런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 ! 정수 왔구나. 아주 잘했다. 난 오늘 또 안나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
을 했지 ?”
하고,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정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 어제 이 책 제가 조금 덜 읽었는데, 다 읽고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
하고 선생님께 책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래 ? 책이 재미있었니? 나도 재미있어서 읽다가 두었거든, 그럼 정수가 먼저 읽고 주려무나. 내가 나중에 읽지 뭐......”
하시면서 정수에게 다 읽고 달라고 하였습니다. 온 교실을 쏘다니고 뛰고 장난을 일으키는 선동자 노릇을 하던 정수가 쉴 시간이 되어도 책만 읽고 앉아 있자 아이들은 이상해서
“야, 야! 정수 좀 봐라 웬일이니 ? 무슨 책인데 저렇게 정신을 놓고 책
만 읽고 있지 ?”
하고 소곤거리는 것도 못 들은 채 정신을 한 곳에 모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마 딴 때 같으면 덜한 숙제를 해서 검사를 맡아야 할 일이 있더라도, 그까짓 거 집어치우고 한바탕 뛰고 볼 정수였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정수는 밖에를 나가지 않고 책을 읽는데 정신을 팔았습니다. 곁에서 아이들이 뛰면 오히려
“야, 뛰려면 나가서 놀아 !”
하고 소리를 지르며 책만 읽는 정수를 보고 아이들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야, 정수야,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이냐 ?”
반장이자, 정수와는 무척 친하기도 한 병남이가 책을 들추며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책 좀 읽으니 이상하냐? 나 좀 가만히 놔 둬.”
하고 대꾸하면서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병남이는 약간 심술이 나서
“야, 집어 치워 네가 책에 미쳐 있으니까 이상하다. 정수 답지 않고....”
“뭐라고 ? 난 책 읽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 ?”
“아이, 미안 미안 ! 그러나 저러나 무슨 책이야 ?”
“너희들은 이미 다 읽었을 책이야. 가만히 놔 둬.”
이렇게 말하는 정수를 더 이상 이야기를 걸 수가 없어서 병남이도 시들해져 그냥 자리로 가서 앉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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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는 난생 처음으로 책을 한권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만화책은 읽은 것이 있지만 동화책을 끝까지, 그것도 단 하룻만에 다 읽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만화는 우선 읽기 쉽고, 재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읽고난 다음에 머릿속에 남은 거라고는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읽고 나니 베네트 할아버지의 고운 마음씨에 감사드리고 싶고, 장난꾸러기 피노키오가 마치 자기의 모습인 것 같아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하였습니다.
정수는 일부러 아이들이 다 가버리도록 다 읽은 책을 다시 뒤적여서 이곳저곳을 읽으며 기다리다가, 선생님꼐 책을 가져다 드리며
“선생님 책 잘 읽었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하고 말을 하자 선생님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시며
“그래 ? 재미있었니? 나도 덜 읽었는데 어서 다 읽어 보아야지.”
하시면서 책을 받아들었습니다.
“선생님 또 이런 재미난 이야기책이 없습니까? 한 권 더 빌려 주세요.”
“그래 ? 그럼 빌려 주고 말고, 어떤 책을 줄까 ?”
선생님은 이미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정수가 그런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부러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저것 살피다가 한권을 뽑아서 주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했는데, 선생님이 특별히 정수에게만은 빌려 주어야겠구나. 읽고 나면 또 빌려 줄 수 있으니 날마다 라도 빌려다 보아라.”
이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학교 도서관을 맡으셨기 때문에 우리 교실에는 학교 책일망정 책이 몇 십 권 놓여 있지, 그 때(1970년대 초)는 사실 국민학교 교실에 학급도서란 것이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선생님 덕분에 학교 책을 교실에 두고 마음대로 읽을 있는 것만도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급에서만 읽을 수 있지, 집으로는 가지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수에게 만은 마음대로 빌려 주겠다고 하신 것은 선생님이 정수에게 책을 읽게 하여서 학교에 재미를 붙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정수는 이제 열심히 책을 읽는데 재미를 붙여서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서 뛰어 노는 것도 잊은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변한 정수를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정수는 아이들이 무어라고 하던 이상하게 생각을 하던 관계없다는 듯이 열심히 책만 읽어대었습니다. 정수는 본래 어떤 일을 시작하면 이렇게 정신을 온통 쏟아 붓는 성격이었습니다. 노는 것도, 싸움질하는 것도 한번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질이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놀기에서 멀어지면 금방 착실하게 공부하는 어린이가 되겠구나 생각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친구들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친구도 있고, 놀러가자고 조르는 친구, 왜 안 오느냐고 윽박지르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학교를 하루쯤 빠지기도 하면서 그래도 큰 탈이 없이 5 학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