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뀌, 시골 아낙네같이 예쁜 꽃

2017.11.01 09:00:00

가을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중에서 여뀌를 빼놓을 수 없다. 이삭 모양 꽃대에 붉은색 꽃이 좁쌀처럼 촘촘히 달려 있는 것이 여뀌 무리다. 냇가 등 습지는 단연 여뀌들 세상이고, 산기슭이나 도심 공터에서도 여뀌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을은 여뀌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여뀌는 흔하디 흔해서 사람들이 눈길을 잘 주지 않는 꽃이다. 그저 잡초려니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여뀌는 너무 흔하면서도 복잡하기만 하다며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꽃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예쁜 모습을 포착하면 담는 정도의 꽃이다. 다른 꽃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은데 여뀌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여뀌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피고 지는 꽃이다. 더구나 소도 먹지 않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식물이라는 인식도 퍼져 있다. 논밭에도 무성하게 자라는 경우가 많아 농사꾼에게는 귀찮은 잡초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읽다 보면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인 이 작품 2권에만 여뀌에 대한 묘사가 세 번 등장하고 있다.


“강모는 망설이는 강실이의 팔을 잡으며, 제가 먼저 후원 쪽으로 난 샛문으로 몸을 돌렸다. 강실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그 주춤하는 기척에 오히려 강모는 잡은 팔에 힘을 주어 당긴다. 텃밭을 지나 명아주 여뀌가 우거진 곳까지는 한 울타리 안이나 마찬가지였다.”


4권과 6권에도 다시 여뀌가 등장한다.


“강수는 죽은 후에, 그토록 그리었으나 이웃 마을 둔덕 너머 아느실 최문으로 시집 간 진예 대신, 깨끗하게 살다 죽었다는 어느 먼 곳의 처녀 혼백을 맞이하여 굿을 하고 명혼을 치르었다. 그리고 강실이는 그 명혼의 신랑과 신부가 허수아비 몸을 불빛 아래 누일 때 명아주 여뀌가 제 등 밑에서 부러지는 소리를 아프게 들었다.”


강실이와 강모의 애증관계는 이 소설의 기본 뼈대 중 하나다. 강모는 효원과 혼례를 치르지만 정을 붙이지 못하다 연모하던 사촌동생 강실이를 범한다. 그 장소가 명아주와 여뀌가 무성한 텃밭이었다. 그래서 강실이가 이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왜 많은 풀 중에서 하필 여뀌가 자주 등장할까 궁금했었다. 소설의 배경은 전북 남원 사매면 서도리의 노봉마을이다. 남원을 가로지르는 강은 요천(蓼川)이고, ‘요’ 자가 ‘여뀌 요’ 자라는 것을 알면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요천은 여뀌꽃이 만발한 모습이 아름답다고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여뀌꽃이 만발했으면 이런 이름까지 얻었을까. 요천에 여뀌가 만발하니 요천 주변에 있는 소설 배경 마을도 당연히 여뀌가 흔했을 것 이다. 소설에서 여뀌와 늘 함께 등장하는 명아주도 흔하디 흔한 잡초의 하나다.


‘혼불’의 배경인 남원 노봉마을은 작가 아버지의 고향으로, 최명희가 어렸을 적 많이 간 곳이다. 남원시는 노봉마을을 ‘혼불마을’로 지정하고, 이곳에 ‘혼불문학관’을 지었다. 문학관 내부에는 작가 최명희의 집필실 재현장과 인월댁 베짜기 체험 시설이 있고, 혼례식 장면, 강모 강실 소꿉놀이 장면, 효원의 흡월정(吸月精) 장면, 청암부인 장례식 장면, 액 막이 연날리기 장면 등도 재현해 놓았다. 재작년 혼불문학관에 다녀오는 길에 요천에 내려가 보았다. 강변 정비 사업을 대규모로 한 데다 달뿌리풀 등이 번성해 여뀌가 자랄 공간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곳곳에서 전체가 붉게 물든 채 열매를 맺어가는 여뀌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여뀌 … 6월부터 가을까지 붉은 향연

여뀌는 마디풀과에 속하는 일년생 풀이다. 주로 습지나 시냇가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데 키는 40~80㎝ 정도로, 6월부터 가을까지 가지 끝에 이삭 모양의 붉은색 꽃이 달린다. 잘 보면 수수한 시골 아낙네같이 예쁜 꽃이다. 꽃이 피기 전에는 빨간 좁쌀을 붙여 놓은 것 같다가 분홍빛의 작은 꽃들이 차례로 피는 것이 너무 곱다. 다만 꽃이 워낙 작기 때문에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다. 황대권은 ‘야생초 편지’에서 여뀌는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참 예쁜 꽃이라고 했다. 그런데 워낙 무더기로 나니까 그저 귀찮은 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고마리, 부레옥잠 등과 함께 수질을 정화하는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다.


예전에 아이들은 여뀌를 짓찧어 냇물에 풀었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맥을 못추어 천천히 움직일 때 물고기를 빨리 건져 올리곤 했다.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도 짓이긴 여뀌를 개울에 풀어 붕어와 피라미들을 잡는 이야기가 나온다. 잎을 씹으면 매운맛이 나 영어 이름은 ‘Water pepper’다.


여뀌 종류는 개여뀌, 가시여뀌, 기생여뀌 등 30가지가 넘는 데다, 구분 포인트도 모호해 정확한 이름을 알기가 쉽지 않다. 야생화 고수들도 여뀌 분류에는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개여뀌다. 밭가나 숲에서 군락을 이룬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개 ‘개’ 자가 붙으면 본래 것보다 쓸모가 없거나 볼품이 없다는 뜻인데, 개여뀌는 여뀌의 매운 맛이 나지 않는다. 그냥 여뀌는 끝부분에 분홍색을 띠는 연녹색 꽃이 꽃대에 성글게 달리는데 개여뀌는 붉은색 꽃이 촘촘히 달린다.



여뀌 중 가장 화려한 것은 단연 기생여뀌다. 꽃색깔도 진한 붉은색인 데다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나서 기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자잘한 붉은 꽃이 드문드문 달리는 이삭여뀌, 가시 같은 털이 많은 가시여뀌, 꽃이 제법 커서 여뀌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흰꽃여뀌 등도 그나마 특징이 뚜렷해 구분하기 쉬운 여뀌들이다.


여뀌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꽃이 붉고 그 맛도 매워서 귀신을 쫓는다는 뜻의 역귀(逆鬼)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견해, 꽃대에 작은 꽃이 줄줄이 얽혀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견해 등이 있다.

여뀌와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고마리와 쪽이 있다. 고마리는 잎이 마치 서양 방패 모양으로 생겨 쉽게 구분할 수 있고, 여뀌처럼 물을 정화하는 기능도 있다. 쪽은 잎을 쪽빛 물감을 들이는 원료로 사용하는 식물이다. 쪽과 여뀌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꽃은 쪽이 여뀌보다 화려하고, 쪽은 잎이 주름이져 약간 울퉁불퉁한 반면 여뀌는 잎이 매끈하다. 그냥 자연 상태이면 여뀌로, 재배하는 것이라면 쪽으로 구분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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