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드넓은 붉은 카펫, 함초밭

2017.12.01 09:00:00

김민철의 야생화 이야기

쑥부쟁이· 여뀌 등 가을꽃이 지고 나면 ‘꽃쟁이들’은 무엇을 보러 다닐까. 퉁퉁마디·나문재·칠면초·해홍나물 등 갯벌에서 사는 염생식물(鹽生植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대부도·소래습지 공원 등으로 염생식물을 보러 다녔다. 인천국제공항에 가기 위해 영종도에 들어서면 서해 갯벌에 자주색 장관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해홍나물 등 염생식물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이다.


갯벌을 뒤덮은 자줏빛 향연, 함초

원래 함초는 퉁퉁마디의 별칭이지만, 염생식물들을 뭉뚱그려 함초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권지예 단편소설 <꽃게 무덤>을 읽으면 이 함초의 자주색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다.


삼년 전 아내와 이혼한 주인공은 함초밭을 촬영하기 위해 강화도 앞 석모도 갯벌을 찾았다. ‘함초와 나문재 같은 식물이 넓게 깔린 장엄한 자줏빛 뻘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거기서 주인공은 우연히 자살하려는 여인을 구한다. 여인은 스스럼없이 주인공의 집으로 와 살았다. 그런데 여인은 새벽에 일어나 간장게장을 꺼내 먹을 정도로 간장게장을 좋아했고, 게장 요리도 잘했다. 주인공은 여인과 1년 가까이 살면서 사랑을 느꼈지만, 여인은 주인공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여인에겐 사랑의 상처가 있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여인의 배낭에서 남자 사진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추궁하면서 우발적으로 손찌검을 했다. 다음 날 새벽 여인은 집을 떠났다. 속살을 발라 먹고 남은 꽃게 무덤 같은 자리만 남겨놓고 사라진 것이다. 주인공은 여인을 잊지 못하다 석모도 바닷가에서 그녀의 소지 품들을 떠내려 보내며 그녀를 잊기로 다짐한다.


‘함초’는 이 소설에서 두 남녀가 처음 만난 배경이자 소설에 강렬하면서도 비극적인 색채를 주는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주인공이 떠난 여인을 그리워하다 꿈을 꾸는 장면 이다.


넓은 갯벌엔 무리 지어 자생한 자줏빛 함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주 넓은 자주색 비로드 치마가 펼쳐진 것 같다. 하늘도 온통 함초잎 빛깔이다. 해는 이미 바다로 떨어졌다. 바다는 은갈치 빛으로 창백하게 반짝인다. 이 글이글 불타는 생피 덩어리 같던 석양이 지고 난 후 수평선 언저리는 점점 검 붉은 자줏빛으로 변하고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꽃게 무덤’을 구상한 순간에 대해 “2003년 3월, 친구 셋과 함께 강화도에 가서 일몰을 구경하고 꽃게탕을 먹었다. 석모도의 함초밭 이야기를 언뜻 듣고 다음 날부터 안 먹고 안 자고 안 씻고 썼다. 원고 마감을 사흘 앞두고 있었다”고 했다. 작가 권지예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서클 이화 문학회에서 활동했는데, 기형도· 성석제· 공지영 등이 활동한 연세문학회와 교류가 많았다. 이들은 일찍 등단해 두각을 나타냈지만, 권지예는 대학 졸업 후 교사 생활을 한 후, 미술평론을 하는 남편과 함께 파리 유학을 가 문학박사 학위를 받느라 30대 후반인 1997년에야 등단했다. 단편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꽃게 무덤>으로 2005년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짙고, 아름답고, 슬프고, 섬뜩한 해초, 함초

함초밭은 한번 보면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꽃게 무덤>말고도 여러 소설에 등 장하고 있다. 동요 <반달>을 부르는 어머니와 불화를 다룬 윤대녕의 단편 <반달>에 도 함초가 등장하고 있다. 주인공은 아버지 사망 후 여러 차례 남자를 바꾸는 어머니와 불화하다 군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와 여행을 떠난다. ‘당진으로 가는 길에 개펄 곳곳을 뒤덮고 있는 붉은 함초지대를 스쳐지나’고, 결혼할 여자가 인천 을왕리 바닷가에서 ‘개펄을 뒤덮고 있는 붉은 풀들이 무엇인지’ 묻자 주인공이 ‘소금을 먹고 자라는 함초’라고 대답하는 장면도 있다. 그러면서 강릉 출신인 결혼할 여자가 ‘동해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이기에 궁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후명의 소설 <협궤열차>는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를 무대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대학 때 사귀다 헤어진 류와 다시 만나 협궤열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염생식물의 하나인 나문재가 나오고 있다. 작가는 ‘너른 개펄에 선연한 붉은빛으로 가득히 돋아 있는 나문재의 군락’에 ‘마치 하늘의 나염 공장에서 그 빛깔만 골라 몇만 평의 천을 일부러 갖다 널어놓은 것 같이 보였다’며 ‘짙고, 아름답고, 슬프고, 섬뜩하다’고 했다.


이처럼 여러 소설에 등장하는 염생식물은 갯벌이나 염전 등 바닷물이 드나들거나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사는 식물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조금씩 다르다. 가장 흔한 것은 해홍나물로, 서해안 일대 육지 가까운 쪽 갯벌에 있는 염생식물은 해홍나물인 경우가 많다. 육지 쪽 갯벌에서 바다 쪽으로 나문재·해홍나물·칠면초 순으로 자란다.



‘바다의 산삼’, 함초

흔히 함초라고 부르는 것은 본래 이름이 퉁퉁마디다. 요즘 ‘바다의 산삼’이다,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에 좋다, 다이어트 식품이다’며 마구 채취해 서해안 갯벌에서도 잘 살펴야 몇 개체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줄기가 통통하면서도 마디가 뚜렷해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나문재는 50~100cm로 자라 다른 염생식물에 비해 키가 크다. 봄에는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다가 가을에는 붉게 물든다. 어렸을 때는 잎이 가늘고 길어 소나무 가지처럼 보이다가 크면 해홍나물과 비슷해 보이지만, 열매가 별사탕 모양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해홍나물과 칠면초도 비슷하게 생겼다. 해홍나물은 육지에 가까운 갯벌에서, 칠면초는 갯벌 깊숙이 들어가 자란다. 그래서 간척지 초기에는 칠면초가 주로 자라다가 해가 갈수록 해홍나물로 바뀐다. 그래서 칠면초는 오래된 간척지에서는 보기 힘들다. 칠면초라는 이름은 칠면조처럼 색이 변한다 해서 지은 것이다. 순천만이 칠면초 군락으로 유명하다. 두 식물의 구분 포인트는 첫째, 칠면초는 20~50cm로 키가 작고 보통 나무처럼 홀쭉하며, 해홍식물은 30~60cm로 가지를 많이 쳐서 시골 정자나무처럼 옆으로 퍼져 있다. 칠면초 잎은 곤봉처럼 뭉뚝하고, 해홍나물 잎은 길쭉하고 끝이 뾰족하다. 칠면초는 잎이 원 통형이지만 해홍나물은 잎 한쪽이 평평해 반원형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 나가보면 어중간한 것들도 적지 않아 아주 헷갈린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멀리서 보아도 칠면초인지 해홍나물인지 알 수 있다는데 필자도 빨리 그 경지에 이르고 싶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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