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작은 꿈이 꽃 필 때 3

2017.12.18 17:01:24

우루과이 라운드와 농촌의 위기 그리고 살아 님기 위한 친환경농업으로 발돋음하는 농촌

6. 우루과이 라운드

 

1992년 우리나라의 5천년 역사 이래 이 나라의 국민을 먹여 살리는 1차 산업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떠들면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던 농업에 가장 무서움 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세계무역기구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역장벽으로 다른 나라의 값싼 농산물의 수입을 억제하거나 자기 나라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어 값을 조절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협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 협약은 겉으로 보아서는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것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농업분야에 있어서 다른 나라처럼 큰 농장을 기지고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닌 나라에게는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대부분이 자기가 생산한 농산품을 팔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자급자족을 위한 것일 경우 생산성이 떨어지고 생산비가 많이 들어서 비싸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 오는 것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농업은 값싼 외국 농산물에 밀려서 그 설자리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쌀의 경우 우리나라의 쌀 80kg 한 가마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20만원이라면 넓은 농토에서 기계화된 농업을 하는 미국산은 불과 5,6만원 밖에 들지 않고, 중국에서 수입을 하면 4만원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싼 국산보다는 값싼 외제 쌀을 수입해서 먹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 농업인구는 무엇을 할 것이며,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식량을 전혀 생산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우리나라의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이 따를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이나 브라질 같은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들은 한꺼번에 넓은 농토에 팔기 위한 환금작물 위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값으로 경쟁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이겨내는 방법은 진이 아버지처럼 무엇인가 새로운 작물을 심어서 자기가 먹고살기 위한 농사보다는 팔아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을 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농촌지도소를 드나들면서 비교적 안정적이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도록 지도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군에서 비교적 소득을 많이 올리는 것은 하우스에서는 오이와 방울토마토이고, 산지에서는 양다래가 비교적 괜찮은 작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밭작물로는 마늘과 시금치, 겨울 배추 등이 괜찮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의 경우 몇 동의 하우스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논이나 밭을 얻어서 새로운 작물을 좀 심어 볼까 하는데 가장 전망이 있는 것은 무엇이 될까요?”

글쎄요. 거기라면 땅의 성질이 사질 양토이고 물 빠짐이 아주 좋은 곳이지 않습니까? 거기라면 우리 고장에서는 마늘이 비교적 손도 덜 가고 비교적 소득이 좋은 작물이니까 한번 생각해 보실 만 합니다만, 본인이 결정을 하셔야 지요. 자신이 재배 경험이 있고 어느 정도 자본도 있어야 하니까요.”

이런 지도사의 조언을 듣고 여러 날을 생각한 끝에 마늘을 재배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곳이 바다와 면해 있지는 않지만 땅이 비교적 사질양토<모래참흙>이어서 마늘의 성장에 아주 알맞고 또 마늘을 심지 않았던 땅이므로 병충해의 피해를 입을 염려도 없다는 것이 마늘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었습니다.

마늘은 가을에 벼 베기가 끝난 다음에 논을 얻어서 심었다가 모내기 전에 뽑아 수확을 하기 때문에 보리를 심는 것과 같이 두 번 지은 농사에 해당하므로 큰 비용이 들지 않은 편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작년에는 마늘 값이 아주 비쌌기 때문에 올해에도 마늘을 심으면 값을 잘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농촌지도소의 말에 더욱 용기를 갖고 덤빈 것입니다.

마늘 종자 값으로 약 백여만 원을 들였고, 비료와 농약을 쓰고 논을 빌린 도지를 주려면 논 300평당 적어도 200만 원 이상이나 들었지만, 작년에 마늘 한 접에 약 1만원이나 받아야 겨우 수지의 한계선이 될 것입니다. 진이네가 일년 동안에 가장 크게 기대를 걸었고, 많은 돈을 들여서 가꾼 마늘입니다. 그런데 풋 마늘 때부터 벌써 마늘이 과잉생산이라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진이네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걱정을 하고 있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늘을 수확할 때쯤에는 마늘 한 접에 겨우 8천 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받는 다면 진이네는 겨우 투자한 돈을 건질까 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순전히 빚을 얻은 돈이나 겨우 건질 수 있을 처지였습니다. 온 가족이 전심을 다해 기른 마늘이 이 모양이니 또 다시 맥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차떼기 장사가 덤벼들어서 겨우 밭떼기로 본전을 건진 것만도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값이 계속 떨어지자 돈을 치른 채소 장수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아서 모내기에 쫓겨서 삯군을 사서 간신히 마늘을 캐어 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사라는 것이 참 예측할 수 없습니다. 너무 시장이 좁기 때문에 누가 돈을 벌었다네 하면 금방 너도나도 하고 덤벼서 곧장 값을 끌어내리고 심지어는 아주 똥값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도무지 무얼 심으면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들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시장의 변화를 무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이것을 심으십시오 하고 권장을 할 수 없다는 게 저희들의 한계입니다.”

하면서 미안해하는 지도사의 말을 들으면서 진이 아버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7. 쉬운 것부터

 

 

이제는 농촌에서 무얼 심어야 하고 무엇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많은 투자를 해서 빚을 지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심어 가꾸기 쉽고 관리도 수월하며, 별로 힘들지 않은 작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의 논을 빌어서 시금치를 잔뜩 심었습니다. 시금치는 비닐하우스를 하지 않고 그냥 야생으로 심어도 괜찮은 작물이며, 하우스에서 가꾼 것보다는 훨씬 맛이 더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금치를 심었고, 밭의 한 구석에는 늦게 뿌린 배추를 역시 자연 상태에서 가꾸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900평에 시금치를 약 600평이나 심었고, 배추를 200평정도 심고 나서 유채를 약 100평쯤 심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을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자신 있게 무엇하나를 심을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겨울 동안 자라는 시금치와 배추며, 유채는 별로 병충해도 없으며, 손질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물이 고이지 않게 물빠짐을 좋게 해주고, 시금치는 산성 토양에 약하므로 석회 등 알카리성 성분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것과 배추가 잎 끝이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짚을 뿌려 찬바람을 막아주는 것 정도면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 동안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오이 농사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눈이나 비가 오면 물이 고이지 않은지 만 살폈습니다. 겨우 내내 따낸 오이는 진이네 가족의 생활비를 대고 약간의 저금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2월도 마지막 고비를 넘기려는 무렵에 밭에 찾아온 채소 장수는 뜻밖에도 시금치와 배추를 몽땅 다 살터이니 흥정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미리 치르기는 하지만 반 만 치르고 나머지는 전화를 하면 작업을 해서 상차<차에 싣기>까지만 해주면 물건을 받은 날 구좌로 송금을 하기로 합시다.”

하면서 제시한 채소 값은 뜻밖에도 평당 15,000원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900평에 1350만원입니다. 투자한 금액은 도지로 지불할 270만원과 씨앗 비료 등 농자재 값으로 약 220만원, 그리고 작업에 든 인건비가 심을 때와 작업 할 때 합쳐서 약 100만원을 합한다고 해도 590만원을 투자하여 투자비를 빼고서도 760만원을 벌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면 여태까지 빌려 쓴 돈을 모두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돈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고, 남의 신세를 지며 살았는데 이제는 내 힘으로 살 수 있게 되겠구나 싶으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진이네는 이제 가장 힘이 들지 않으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리하게 많은 돈을 들여서 마늘처럼 재미를 못 보는 것보다는 실패를 하더라도 이웃끼리 나누어 먹고 정 안되면 논에 퇴비로라도 할 수 있는 잎채소를 심어서 가꾸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름엔 상추나 쑥갓, 깻잎 등을 심고 가을이면 시금치와 배추는 노지에 심고 상추 쑥갓을 하우스 안에 심어서 여러 가지 채소 중에서 조금 나은 것에서 잘 못된 것을 보충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하우스 안에도 잎채소의 사이사이에 열매채소인 고추를 드문드문 심어서 사이갈이의 효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제 상당히 지식이 모여서 무슨 작물이 어느 시절에 어디에서 많이 소비되고 어느 작물은 언제쯤에 값이 나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이 아버지는 각 종의 채소 별로 우선 가장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시기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맞추어서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역으로 계산을 하여 파종을 하고, 재배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언제나 그렇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계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해 동안 잎채소를 가꾸면서 남다른 전략이라고 정한 것이

[남이 안 할 때를 노려라 : 逆發想]

는 방식이었습니다. 지난해에 값이 떨어져서 형편없었다는 작물이 무엇이며 언제쯤에 가장 많이 출하가 되었던가를 살펴서 바로 그 시기에 출하를 하도록 재배를 해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과 거꾸로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무얼 심어서 돈을 벌었다네 하면 자기는 심지 않고 오히려 무얼 심어서 망했다네 하면 그걸 찾아 심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냄비경제의 특성을 지녔다. 달아오르면 금방 더워져서 넘치고 식기 시작하면 금세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게 우리 경제의 특성이다.]

영농교육 시간에 경제를 강의하신 강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식기 시작하는 것을 불을 지피면 다시 더워지는 것입니다. 남이 좋다고 할 때는 너도나도 하기 때문에 항상 넘칠 위험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8. 돈 안 드는 농사를

 

진이네에서 몇 년 동안에 잎채소를 가꾸면서 한 가지 꼭 지키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해로운 비료나 농약을 될 수 있는 한 쓰지 말자]

이것은 진이 아버지의 생각이고 또한 자신의 농산물을 팔아주고 먹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퇴비를 만들고 유기질 비료를 사다 쓰더라도 화학비료는 적게 쓰고 농약을 뿌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다짐을 꾸준히 실천에 옮겼습니다. 처음엔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적게 쓰는 것에 그쳤지만 점점 이런 농사에 경험이 쌓이면서 완전히 쓰지 않는 청정재배로 바꾸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몇 가지 이익이 있었습니다. 우선 비료와 농약 값의 절약입니다. 이것도 상당한 금액이 절약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비료를 많이 쓰는 작물은 비료 기운으로 웃자라서 우선 보기에 좋고 싱싱해 보이지만, 연약하여서 병충해가 많이 붙습니다. 그러나 유기질 비료와 퇴비를 사용한 채소는 싱싱하게 잘 자라지는 않을지라도 튼튼하기 때문에 병충해가 별로 발생하지 않아서 사람의 손이 덜 가고 걱정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자신이 생산한 작물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제 누가 와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논밭이나 하우스에서 채소를 뜯어다가 물에 훌렁훌렁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농사법이 알려지자 농촌지도소에서는

최진선씨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까지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청정채소를 가꾸고 있습니다. 소장님 이제 우리 고장을 청정채소 재배단지로 바꾸어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우선 누가 뭐라 해도 공인이 되고 충분히 합격을 할 수 있는 최진선씨를 [청정유기농산물 생산자]로 지정하여서 높은 값을 받게 도와주면 이웃한 모든 사람들이 따라 갈 것 아니겠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는 청정단지를 가진 가장 앞선 지도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도사의 말은 지도소의 전체 회의에서 큰 찬성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지도사를 직접 파견하여서 청정유기질농업 표시를 할 수 있도록 신청을 해서 허가를 받으면 더 값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면서 등록 방법에 대하여 알려 주었습니다.

진이 아버지는 자신이 스스로 택한 농사법이 정부에서 인정을 해서 더 비싼 값으로 팔로를 개척하여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농촌지도소에 들어가 [청정 유기 농산물] 표지를 획득하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농촌지도소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기 때문에 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었습니다.

, 이제 서류가 완전히 갖추어 졌습니다. 이제 이 신청서가 접수되면 심사관들이 직접 방문하여서 실제 농작물을 검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만약에 농약 성분이나 비료 성분이 검출되면 허가는 취소되므로 철저하게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당부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진이 아버지는 하우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다시 한번 농약이나 화학 비료 등이 혹시라도 남아있지는 않은지 일일이 살펴보았습니다.

일주일 후 심사관이 다녀가고 각 종 채소를 몇 군데씩 채취하여 검사용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마치 입시를 치르고 발표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초조한 며칠이 지나자 농촌지도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축하합니다. 검사 결과 청정이 확인되었답니다. 이제 며칠 동안 인증서를 발급해 주는 과정만이 남았습니다. 이제 최씨네 농작물은 다른 곳에서 온 장사들이 적어도 20 %에서 30 %까지 더 비싸게 사가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고장을 청정단지로 만드는 길잡이가 되어 주십시오.”

하는 전화를 받고 나서 다시 사흘이 지나고서야 지도소장이 직접 인증서를 예쁜 액자에 넣어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전달하는 것을 사진도 찍고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 거름주기, 벌레 잡기 등의 활동을 일일이 찍어서 한 나절을 사진 모델 노릇을 하였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도 나와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농촌지도소장은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이 조그만 인증서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이제 최진선씨의 채소는 이 마을의 다른 분들의 채소 보다 적어도 20% 이상 비싼 값으로 팔리게 될 것이며, 도시에 부자들 귀한 분들에게만 공급되는 고급 채소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지 않아서 백화점에도 전시되고 팔리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고장의 여러분께서도 모두 이런 인정서를 받아서 이 고장 전체가 [청정유기농지역]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만이 여러분이 더 잘살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하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군 농촌지도소와 군청 산업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협조를 해주어서 6개월 후에는 드디어 인증서가 도착한 것입니다.

진이 아버지는 이제는 떳떳하게 이 허가증을 걸어 놓고

[이동 청정 유기농 작목반. 생산자 최 진선]

이라는 표시를 하여 출하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유기농 작물만을 취급하는 식품전문매장에서 주문이 들어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점차 인증서를 받기 위해 진이아버지와 함께 의논하고 함께 방법을 찾아가면서 지도소의 지도대로 차츰 온 동네가 [청정유기농업단지]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신용에 금이 가지 않도록 더욱 정성껏 다듬고 골라서 포장을 하여 보냈더니 이것을 본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서 전문 매장에 판매를 허용하겠으니 납품을 할 수 있겠는지를 문의하는 편지가 왔습니다.

진선 님 귀하

귀하의 청정 유기농산물은 품질을 인정받고 있으므로 본 백화점의 유기농산물 전문 매장에서 판매를 희망하시면 다음 규정에 의하여 납품하여 주시면 귀하의 상표를 부착하여 판매토록 하겠습니다.

하면서 농산물의 납품 방법과 결재 방법 등을 자세히 안내하는 편지가 도착하였습니다. 누가 선전을 하거나 찾아다니지도 않았지만 양심적으로 생산한 청정 채소가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청정 마크를 획득한지 불과 1년 도 안 되어서 이처럼 주문이 밀리고 알려진 것은 그 만큼 정성을 들인 결과이었습니다.

 

2001. 1. 28. 10여년을 밀어둔 원고를 맺다. (144)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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