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하던 책을 처분하니 허전하기만 한데…

2018.01.08 09:25:56

자식을 버려본 적이 있는가? 아직 없다. 그런데 내 분신과 같은 책을 버린 경험을 얼마 전에 했다.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저서를 버린 것이다. 저자로서는 커다란 결단이다. ? 팔고 남은 책을 집에 보관했는데 이제 더 이상 독자들이 찾지를 않는다. 그러다보니 책꽂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나는 자칭 교육칼럼니스트다. 2006년 교감으로 재직 시절 첫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1()은 날고 싶다이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여 책을 출간하였는데 인지료가 5%이다. 책 가격이 12천원인데 한 권 팔리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600원이다. 100권 팔리면 6만원이다. 이 때 깨달았다. ‘저자가 출판하여 돈 버는 것이 아니구나!’ 나 같은 교육리포터는 교육에 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출간했다는 자체에 만족하는 것이다.

 

서호중학교 교장이 되고 나서 제2교육사랑은 변치 않는다’(2007). 3새내기 교장이 악당이라고?’(2009). 4이영관의 교육사랑’(2011)을 펴냈고 율전중학교에서는 제5행복한 학교 만들기’(2012)를 출간하였다. 2집부터는 초판을 1천부 씩 찍었다. 다행히 주위에 좋은 분들이 계시어 출간을 축하해 주시고 자비로 구입하여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이것이 마음의 빚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저자로서 보유한 교육칼럽집이 남았다. 2집부터 5집까지 몇 백 권이 남았다. 이 책 어떻게 처리할까? 마침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아들과 힘을 합쳐 자가용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아들은 대학 때 배우던 전공서적을 버린다고 한다. 트렁크가 가득 찬다. 폐지로 아파트에 내 놓느니 수고스럽지만 고물상으로 향하였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책, 찾지 않는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종이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고물상에 도착했다. 책을 실은 자가용 무게를 재었다. 트렁크에 있는 책을 고물상에 창고에 던졌다. 내 정신이 아니다. 착잡하기만 하다. 마치 나의 분신이 버려지는 느낌이다. 책을 다 내린 후 자가용 무게를 다시 잰다. 그 차이가 바로 책의 무게. 폐지 1kg 150원이란다. 15천원을 받았으니 100kg이다. 서점에서 정상가격으로 팔리면 권당 1만원으로 200권을 계산하면 2백만 원인데 폐지로 계산하니 이 정도다. 지식의 가격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책꽂이의 책을 정리하는 김에 몇 년간 한 번도 펴 보지 않은 책을 처분하기로 했다. 주로 교육 전공서적인데 아내와 함께 선별작업을 하였다. 자가용 트렁크에 실으니 반 정도가 찬다. 지난 번 고물로 판 것이 너무나 허전하여 이번에는 가까이 있는 중고서점으로 향하였다. 폐지로 버려지는 것보다 재활용되기를 바랐던 것. 서점 주인이 책을 살펴보더니 전부 합쳐 2만원 쳐주겠다고 한다. 3만원으로 해 달라니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잘라 말한다.

 

자신이 쓴 책을, 그 동안 함께 살았던 책을 폐지로 중고서적으로 파니 그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다. 내 영혼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책이다. 그것을 끌어안고 계속 갈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이사할 때 버린 석사학위 논문이 생각난다. 여유본 수 십 권을 보관하니 먼지만 쌓인다. 세월이 오래 되어 다시 펼쳐 볼 이유가 없다. 이사할 때 짐이 된다. 추억 속의 논문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추억마저 버린 것이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면서 추억을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것은 새로운 인생 출발에 걸림돌이 된다. 과거의 나, 왕년의 나는 현재에 있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얽어매면 아니 된다고 보았다. 과거를 버리는 일, 정을 떼어내는 일이 이렇게 허전한 줄 미처 몰랐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어 살 수는 없다. 새롭게 출발하려면 과거는 잊어야 한다. 나의 저서, 애지중지하던 책을 버린 것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오늘 아침 방송을 들으니 짐 정리하는 방법이 나온다. 소유한 물건은 필요와 불필요를 따지지 말고 쓸 것인지 안 쓸 것인지를 따지라는 것이다. 나중에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라는 생각은 짐정리에 방해가 된다는 것.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은 책, 입어 보지 않은 옷도 정리 대상이다. 아내가 결혼할 때 세트로 해온 쓰지 않은 도자기 그릇,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증하려고 인터넷에 올려놓으니 답글이 달린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면 연말정산 영수증 처리가 된다고 알려준다.

 

저자의 책이나 애지중지하게 보던 전문서적을 허전하지 않게 처리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고 서점에서는 출판연도를 살펴 책의 가치를 따진다. 도서관에서도 오래 된 책은 기증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박물관에 가야할 책은 아니다. 고물상이나 중고서점에 팔아 돈 몇 만원 쥐었다고 허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자식과 같은 책을 버린데 대한 정신적 위로가 필요하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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