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효도하라고요 ?

2018.01.22 09:00:07

부모가 모두 농아인인 진이는 자신의 집안 사정이 답답하고 형의 자살로 받은 충격으로 더 이상 부모님께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을 여유조차 없었다.

남양만이 가물거리는 자오개의 산기슭에 영진이네는 있었습니다.

자오개산은 높이가 불과 600m도 되지 않지만 이 고장에선 가장 우뚝 선 산입니다.

5년전 까지만 해도 영진이네 동네의 앞쪽에는 질펀한 갯벌이었습니다. 그 갯벌을 막아서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 있었습니다. 바닷물을 끌어 들여서 햇볕에 물기를 말려 진한 소금물이 됩니다. 그 진한 소금물을 더 많은 햇볕을 받게 하면 소금 알갱이가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영진이는 어려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날마다 아빠를 따라서 염전에 가서 일하시는 모습을 구경하며 자랐습니다. 물레방아 같은 물 자세를 하루 종일 돌리시는 아버지는 다람쥐처럼 물레방아의 물바가지 부분에서 끊임없이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걸어도 늘 그 자리에서 발걸음만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올라가는 걸음을 걷는데도 아빠는 한 걸음도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셨습니다. 옆에 세운 장대를 붙잡고 걸음만 걸어가는 아빠의 모습은 어쩜 그렇게도 처량한지 몰랐습니다. 마치 쟁기를 끄는 소처럼 말 한마디 없이 온 몸 중에서 오직 발과 다리만 변함없는 발걸음을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마치 물레방아가 돌려서 방아를 찧는 디딜방아처럼 다리를 들어 한계단위의 발판을 디디면 발판이 아래로 내려가고, 그러면 또 발걸음을 옮겨 위를 딛는 기계 같은 몸짓을 햇볕이 따가워 지는 첫 여름철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까지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은 힘이 들면 노래도 부르고 떠들기도 하건만, 영진이 아빠는 하루 종일 입을 여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염전에서 소금덩어리가 다된 소금을 물 속에서 끌어다가 쌓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영진이 아빠는 이런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을 하지만,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가는 일과 용변을 보러 가는 시간을 빼고는 도무지 일손을 놓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이렇게 오직 황소처럼 입을 열지 않고 일만 하시는 아빠를 보면서 영진이는 아빠가 너무 정직하게 일만 하셔서, 다른 사람들 보다 힘이 더 드실 거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그런 기색을 보인 적도 없었습니다. 아빠는 영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 일을 해오셨기에 지치지 않고 계속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아빠에게는 말 한 마디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영진이 아빠는 말을 할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영진이도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이렇게 염전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을에서는 영진이네를

“벙어리네.”

라고 부릅니다.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마저도 말을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진이네 형제는 모두 아주 영리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영악하다고들 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아빠 곁에서 아빠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일이 끝나면 달려와서 아빠의 손을 붙잡고 매달리듯 걸어가는 영진이를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다 부러워하는 것은

“아 저렇게 어린것이 하는 짓이 얼마나 야무지고 영리해 ? 이제 아빠에게 효도 할 거야. 틀림없이 효자 노릇을 할 거라구......”

하고, 칭찬들을 하십니다. 그런 말을 하시는 까닭은 아빠의 손에 매달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내내 아빠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어른들이 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어른들이 한 일을 자기의 생각을 담아서

“아빠, 아까 성영이 아빠는 다른 사람이 긁어다 모아 놓은 소금을 몰래 가져가려다가 싸움이 벌어 졌잖아 ! 남의 것을 가져다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짓이지 ?”

하고, 달랑거리면서 하는 얘기를 들으며,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어울리면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은 일만 있으면 언제나

“벙어리 새끼가.......”

하고, 욕을 합니다. 그래서 영진이는 아이들과 어울려서 노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잘 놀다가 대개는 이렇게 서로 기분이 상하는 욕을 듣고서 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욕을 듣고 헤어지는 날은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엘 가기가 싫어졌습니다. 산모퉁이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밭가에 가서 어머니가 밭일을 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아이들하고 같이 가서 놀아라.’ 고 어머니가 손짓을 하시면 영진이는 더욱 기분이 나빠져서 고개만 살래살래 흔들곤 하였습니다.

형 성진이는 이제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집에서 함께 놀아줄 수가 없습니다. 형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영진이의 일이 바빠집니다. 다름이 아니라 형 성진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혼자만 노는 동생 영진이에게 다시 다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진이는 영진이의 선생님이기도 하고 형이기도 하였습니다. 또 영진이는 형 성진이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형이 학교에서 제대로 배웠는지를 확인하는 검사관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리 잘 배웠어도 영진이에게 가르칠 수 없으면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영진이가

“형, 이것도 몰라 ? 학교에서 배웠으면서.........?”

하고 따지기 때문에 당장 잘못 배운 것이 탄로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진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서도 형 성진이가 배운 만큼 이미 다 배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글씨를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날마다 그렇게 배우다 보니 이제 제법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 성진이도 동생을 가르치면서, 날마다 그 날 배운 것을 다시 공부하게 되어서 학급에서는 첫째를 놓치지 않을 만큼 언제나 다른 아이들을 앞서 갔습니다.그때만 하여도 아이들이 학원에를 가고 과외 공부를 하는 그런 때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하게 된 성진이가 당연히 앞장을 섰습니다.

이렇게 남보다 훨씬 더 공부도 잘하고 영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던 형 성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영진이가 5학년이 되었으니까 이제 영진이도 부모님의 일을 제법 도와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성진이를 우리 학교의 총학생회장으로 뽑아 주십시오.”

아이들은 제법 많은 지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단연 일등을 하는 성진이가 다른 부잣집 아이와 경쟁을 하게 되었지만, 성진이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진이는 착한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상대자인 김명섭이는 약간 덜렁거리고 다니는 편이어서 학생들 사이에서 별로 평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비겁하게도 명섭이는 성진이의 약점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성진이 부모님은 벙어리다. 아버지, 어머니가 다 벙어리여서 집에 가면 ‘으음으으으’가 가족들의 대화란다. 자식 겨우 벙어리의 자식이 학교 회장이 되겠다고 덤벼 !”

하는 다른 아이들의 놀림에 성진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소주를 사들고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서 한 병을 나팔 불듯 한꺼번에 다 마셨습니다. 성진이는 그만 눈앞이 가물가물 해졌습니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지고 맥이 없어서 걸음을 옮길 수도 없었습니다. 희미해져 가는 눈빛으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놀리는 소리가 무리져 들려 왔습니다.

“벙어리의 자식 ! 벙..어..리의 자...시..익.!.........”

성진이는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아니 땅에 코를 쳐박 듯이 엎드렸습니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외침은 더욱 크게 들려 왔습니다. 성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소리쳤습니다.

“아니야 ! 아니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벙어리가 아니야 !”

하고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가슴속은 더욱 허전해지기만 하였습니다. 성진이는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소주의 술기운을 이길 수가 없어서 가슴으로 땅바닥을 기면서 풀들을 움켜쥐고 뜯기도 하고, 땅바닥을 두들겨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 두려워서 학생회장의 후보가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담임선생님은 성진이에게

“그런다고 포기하는 것은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야. 그럴수록 더욱 부딪혀서 용감히 헤쳐 나가는 것이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겠니?”

하고, 오히려 한번 부딪혀 보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성진이가 이겨낼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성진이는 그만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성진이는 추운 기운이 들어서 잠이 깨어보니 벌써 사방은 어두워 졌고, 자신이 왜 여기에 이렇게 뒹굴고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뻐개질듯이 아파 오고 가슴은 울렁거렸습니다.

성진이는 곁에 있는 나무를 붙들고 일어서서 가방을 챙겨들고서 학교를 나왔습니다. 막상 학교를 나서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나서보니 이렇게 늦게서야 집에 가는 것이 우스워 보였습니다. 더구나 자기가 맡아보아도 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났습니다.

성진이가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저기 학교 앞의 중국집에서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보아도 자기 학교의 아이들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성진이는 그 순간에 얼른 골목길에 몸을 숨겼습니다. 아이들은 무어라고 지껄이면서 골목길 앞까지 왔습니다.

“성진이 녀석 아마도 이젠 기가 꺾여서 내일쯤이면 회장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할 거야. 벙어리자식이란 소문이 퍼졌는데 제까짓 게 어떻게 나에게 덤벼! 어쩜 학교를 그만 둘는지도 몰라......... ?”

하며 의기양양해서 걸어가는 것은 명섭이였고, 칠팔 명쯤의 아이들이 모두들 덩달아서

“그래, 그렇지 제까짓 게.....”

“안 그러면 제까짓 게 어쩔 거야 !”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지나갔습니다. 성진이는 눈에서 분에 못이긴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 아이들은 깡패처럼 몰려다니는 아이들이고 자신은 공부만 하노라고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아이이니 붙어 볼 수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저쪽은 아이들이 열 명 가까이 되기까지 하는데 함부로 덤벼 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서 골목길을 빠져 나온 성진이는 집을 향하여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집까지는 여기에서 6 Km 쯤이나 되는 길입니다. 성진이가 집에 거의 왔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네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진이는 몰래 산길을 돌아서 먼저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동생 영진이는 잠들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진이는 헛간으로 가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필요도 없이 농약 병을 찾아 들었습니다. 집안에서 농사일을 할 때에 농약을 보고 설명서를 읽고 약을 타는 일은 항상 성진이가 맡아하였기 때문에, 무슨 약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진이는 약병을 들고 다시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밤새껏 기다리던 벙어리 부모님이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성진이의 가방을 발견하였습니다. 반가워서 방문을 벌컥 열었지만 성진이는 보이지 않고 영진이만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무언지 모를 불안이 가슴을 짓눌러서 어쩔 줄을 모르고 마을 안을 찾아다녔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마을 사람들이 이 일을 알고서 모두 나서서 온 동네를 뒤졌지만 성진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산에 갔던 이웃집의 아저씨가 성진이의 주검을 발견하였습니다. 벙어리 부모님의 알아들을 수 없는 넋두리에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되고 한없는 울음 속에 성진이는 뒷산에 묻혔습니다. 그 때부터 영진이에 대해서도 온 동네의 어른들이 보살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진이는 어린 마음에 형 성진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형이 죽음은 자기 자신에게 부모님을 몽땅 맡겨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이기도 하였습니다. 온 동네의 사람들은 이런 영진이에게

“너희형은 잘못 생각을 한 것이야. 아무리 친구들이 놀리더라도 참고 이겼어야 했어 ! 그렇지 ! 영진이는 이제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하는 거야, 알겠니?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영진일 이끌어 주었습니다. 영진이는 동네 어른들의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씩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형이 벙어리 부모를 가진 것을 부끄럽게 생각을 하여서 자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은 불쌍한 부모를 오히려 더 불쌍하게 만들었어. 나는 그런 바보 같은 일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바라는 정말 훌륭한 아들이 되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네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였던 말들`을 생각하여 보는 것이었습니다.

“영진이는 정말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이 될 거야. 저렇게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야.”

하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어른들이 만나기만 하면

“영진아 ! 넌 형처럼 부모님의 속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는 말씀을 할 때마다 어린 마음으로

“뭐 ? 효도하라구 ? 네가 그럼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하고 자신이 한 일을 되돌아보곤 하였습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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