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박태기나무 졸업식

2018.03.14 09:07:03

1984년 졸업식장에서는 졸업생들이 1년 내내 열심히 가꾸어낸 박태기나무 모종이 한 사람에게 3 그루씩 선물로 주어졌다.

“김배운외 48명 !”

담임선생님의 호명에 따라 우리 졸업생 48명은 소리도 내지 않고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손에서 졸업장을 받아든 우리들은 엄숙하고, 조용한 속에서 졸업식을 마쳤습니다.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들고, 특히 정들은 우리들이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만 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졸업식을 맞으면서 쓸쓸해 하는 것은 우리가 정말 형제처럼 살아왔기 때문인가 봅니다. 우리는 이 조그만 학교에 입학을 하여서부터 졸업을 하기까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교가 작고 학생수가 적어서 각 학년이 한 반씩 밖에 없는 이 학교에서 다른 반에 가려고 해도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일학년에 입학을 해서 졸업을 맞는 오늘까지 학급에서 일어난 일들을 같이 겪고, 같이 아파하고 기뻐해 왔었습니다. 그렇게 형제 같은 우리들을 더욱 한 묶음으로 잘 묶어준 것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고 계시는 6학년 담임선생님이십니다.

6학년이 되자, 우리들은 이제 이 학교의 최고 학년답게 잘 지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더욱 채찍질을 해주셨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의 정답고, 지금까지 알뜰하게도 서로 아끼고 사랑해오던 사이가 더욱 정답고 정겨운 학급이 되도록 하기 위해 절대로 남을 일러바치는 일은 용서를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만약에 남의 잘못을 일러바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저는 바보입니다.”

를 세 번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선 반드시 자기가 비난을 하였던 사람에게 직접 가서 큰 소리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너의 잘못을 일러 바쳤으니 용서해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과의 약속은 우리들이 서로 일러바치고 헐뜯는 일이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남의 일을 일러바치는 버릇을 없애도록 하시는 까닭은 바로 이게 우리들의 우정을 가다듬는데 가장 지름길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선생님께 어떤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따로 시간을 내어서 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민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겠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우리들은 자기집안의 일이라도 선생님과 의논을 하고, 친구간의 문제가 생겨도

“선생님, 의논드릴 말씀이 있는 데요 ?”

하면 공부가 끝난 다음에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혼자서, 친구들끼리 하고 싶은 이야기는 친구들 끼리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슨 일이라도 선생님이 의논의 상대가 되어 주셔서 안심하고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우리 6학년이 학교 안의 나무와 꽃을 가꾸자고 하셨습니다. 조그만 학교라고는 하지만, 학교안의 화단과 둑, 교재원의 나무를 모두 우리의 손으로 가꾸어 내기로 한 것입니다. 우선, 화단은 얼마 되지도 않으니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둑과 교재원을 몽땅 다 맡아서 하기란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우리들과 함께 학교안의 나무 관리를 하고, 박태기나무의 열매를 따서 공터를 일궈서 뿌리고 가꾸었습니다. 그냥 풀이나 나서 자라는 귀찮은 공지에다가 씨앗을 뿌릴 묘판을 만들 때는 선생님이 혼자서 만드셨습니다. 우리들이 도와 드리겠다고 하였더니, 겨우 흙덩이를 깨는 일이나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든 묘판에 박태기 씨앗을 뿌리고, 마른 풀을 가져다 덮었습니다. 이틀마다 물을 주어서 한 달이 훨씬 더 지나고서야 씨앗의 싹이 텄습니다. 싹이 나오기 시작하자 선생님은 조금씩 덮었던 풀을 거두어 내면서 싹들을 가꾸었습니다. 잎이 두세 장이 되었을 때부터 거름을 가져다주고 풀을 매어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까 박태기 묘목을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습니다.

이렇게 싹이 자라기 시작할 5월 중순의 어느 날, 우리 반에서 반장으로 뽑힌 성희가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무 말도 없다가 갑자기 모레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어찌나 섭섭한지 송별회를 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 성희의 송별회를 해주려고 하는데 시간을 주실 수 있겠지요 ?”

하고, 순옥이가 먼저 얘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은근히 선생님이 그런 시간을 안주면 어쩌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그래, 정든 친구가 떠나는데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좋겠지.”

하고 선선히 허락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송별회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별파티라고 해야 옳을 일이었습니다. 순옥인 피아노를 배웠으니 반주를 맡고, 영순인 사회를 맡아서 진행을 하고, 아이들 중에 몇 몇은 그 자리에서 부를 노래를 골라서 준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공부가 끝나고 약속한 송별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자 지금부터 우리의 반장이자 오랜 친구 성희의 송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영순이가 진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별로 즐거운 기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떠나게 된 성희의 인사말을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에 따라 성희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나는 이번에 우리 집이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어서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정이 들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입학을 하는 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한 여러분들과 헤어지기가 싫어서......”

드디어 성희는 말끝을 잇지 못하고,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모두들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기가 싫습니다. 으흐흐흑흐흐.....”

성희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들도 너도나도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말썽꾸러기 남자 아이 윤재 마져도 눈물이 고여 가지고 차마 닦을 수도 없으니까 한다는 소리가

“야 ! 너희들 왜 우냐 ? 성희가 가버리면 반장도 하고 좋을 텐데....”

하였지만 역시 말끝은 제대로 맺지를 못했습니다. 한참동안 아이들은 서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느라고 말들을 이어 갈수가 없었습니다. 성희는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제자리로 들어가서 책상에 엎드려서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영순이는 눈이 벌겋게 되어 가지고 그래도 어떻게 진행을 시켜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여러분, 성희가 떠나게 되어서 모두 마음이 슬플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울자고 마련한 자리가 아닙니다. 떠나는 성희가 우리를 잊지 않도록 하고, 우리도 성희가 더 잘되어 돌아오도록 마련한 자리이니, 우리 이제 석별 의 노래를 불러 줍시다.”

순옥이가 앞으로 나와서 풍금에 앉아서 반주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야 ! 이별이란 웬 말이냐....”

석별의 노래 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면서 다시 울음이 섞인 흥얼거림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눈물을 닦으면서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호주머니를 털어서 마련한 과자 몇 봉지와 음료수가 전부인 송별회는 먹을 것이 없는 대신에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푸짐한 정이 담뿍 담긴 눈물이 흘러 넘쳤습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아이들은 서로 부등켜안고 우는 아이까지 생겨서 울음바다를 이루고 나서 간신히 송별회를 끝냈습니다.

이렇게 정이 넘치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더욱 정을 듬뿍 주셨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정이 가득한 말씀으로 쓰다듬어 주시는 선생님은 우리들을 아들딸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교실에 아들이 26명 딸이 22명이나 있으니, 내가 가장 부자구나.”

하시고 농담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결코 말씀만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들에게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공부를 할 때는 공부에 미친 듯이 열심히 하게 하고, 놀 때는 우리들과 같이 축구도 하시고 배구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형제처럼 함께 공부를 하고서 졸업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영원히 기억할 것을 남기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졸업식 날에는 선생님이 손수 가꾼 박태기나무를 세 그루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나무는 아직 어리고 보잘것이없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정성껏 가꾸면 이른 봄에 빨갛게 달린 꽃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라일락, 장미 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꽃나무이니 잘 가꾸어 보아라.”

하시면서 심는 법과 잘 가꾸는 법을 다시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졸업장과 상장들과 함께 박태기나무 세 그루씩을 졸업 기념품으로 받아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정성껏 심고 가꾸었습니다.

이제 올해로 졸업을 한지 8년이 지났습니다. 내가 심은 나무는 삼 년 전부터 가지가 안 보일 만큼 수많은 꽃송이를 달고 이른 봄의 화단을 장식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한번 뵙고 싶습니다. 박태기나무의 꽃이 피듯이 우리가 이렇게 자랐는데, 선생님은 얼마나 늙으셨을까 ? 혹시라도 너무 늙으시지는 않으셨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를 박태기나무와 함께 졸업 시켜주신 우리 선생님........’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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