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공감’하지만… 방법 ‘고민’ 필요

2018.03.15 19:09:02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한서고를 가다

[한국교육신문 김명교 기자] 지난 14일 오후 1시 10분 서울 한서고. 5교시 수업을 앞두고 3층 복도가 술렁였다. 교과서와 공책, 필기도구를 든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수업종이 울리자 함께 걷던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다른 교실로 들어갔다. 한국지리, 세계지리, 세계사 등 사회탐구 수업이 각각 진행됐다. 이곳에서는 문·이과 사이에 경계가 없다. 문과 학생이 화학을 배우고 이과 학생이 경제를 배우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을 운영한 덕분이다. 

한서고가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 개방형 선택 교육과정은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고교학점제’의 초기 모델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교과를 선택하고 강의실을 옮겨 다니면서 수업을 듣는 과목선택제를 바탕으로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는 제도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수업을 듣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교육부는 지난 1월 ‘2018년 고교 교육력 제고 사업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운영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방형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자신의 진로와 목표에 맞춰 기초 영역과 전문 영역, 체육·예술 영역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업에 대한 집중도도 높다. 프로그래밍, 교육학, 논리학 등 일반 고교에서 보기 어려운 과목을 개설해 운영한다는 점도 특색 있다.

2년째 개방형 교육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3학년 함미정 양은 “원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하다 보니 책임감 있게 수업을 듣게 된다”면서 “선생님과 소통하면서 수업에 집중한다”고 전했다. 

같은 학년 고영석 군은 기계공학 전공으로 진로를 잡았지만, 경제 과목을 신청했다. 고 군은 “관심 있는 문과 과목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적성과 진로에 따라 맞춤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평가 문제와 교사 수급 문제, 도농 격차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김종희 교감은 “대입 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신을 절대평가로 평가하게 되면, 학업성취도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3학년 손미주 양도 “듣고 싶은 과목이 있어도 내신 등급을 받는 데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신청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면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신청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다양한 과목 개설로 인한 업무량 증가와 교사 수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김 교감은 “기존에 가르치던 과목에 새로운 과목까지 맡게 될 경우 수업 준비, 평가 등 업무가 늘어난다”면서 “교사 수가 적은 농산어촌 학교는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로 인한 지역 간 격차가 생기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교육 환경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 ‘온라인(쌍방향) 공동교육과정’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동시 접속해 실시간 수업하는 걸 말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특징.

한서고는 지난 2월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했다. 김상래 교사는 “지역 구애 없이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개발 초기라 서버가 불안하고 학생끼리는 소통이 불가능한 점, 교실을 조성하는 데 드는 비용이 높은 점은 아쉽다”고 했다. 

선택 과목이 다양해지면서 공강이 생기거나 빈 교실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김종희 교감은 “수업이 없는 학생들의 안전 문제와 빈 교실 관리 문제 등도 고민해야 한다”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공강 없이 시간표를 짜는 것에서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남상일 교장은 “아이들마다 개성이 다르고 목표와 진로가 다른데 일률적으로 가르치는 게 마음에 걸렸다”면서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도 다양한 기회를 주고 싶어서 개방형 교육과정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교학점제가 정착하려면 대입제도를 개선하고 교원 수를 늘리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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