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법무부의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변호사)가 밝힌 장자연 리스트 재조사 뉴스를 접하고 보니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2013년 4월 18일 개봉한 ‘노리개’(감독 최승호)다. 2009년 3월 7일 “기획사로부터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고 폭행당했다”는 문건을 남기고 자살한 탤런트 장자연(29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노리개’이기 때문이다.
공공연한 비밀이 된 연예인 성상납 현실을 영화가 건드렸다는 점에서 ‘노리개’의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일종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의 어려움을 스스로 떠안은 격이니 그럴만하다. “영화투자사, 연기자 소속사들이 이 작품 참여를 줄줄이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먼저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감독이 신인이라는 점에서 성폭행사건을 다룬 사회고발 영화 ‘이웃사람’(2012)이나 ‘공정사회’(2013)와 같지만 그 내용으로 보자면 ‘노리개’가 한 수 위다. 사회현실에 만연하다시피한 성폭행사건은 ‘적’이랄 게 없지만, 연예인 성상납의 경우 그렇지 않다. ‘상영금지가처분’ 소송 등 여기저기 영화의 용기를 꺾으려 하는 적들이 널브러져 있어서다.
그러나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영화가 무사히 개봉된 것이다. “외부의 압력 때문에 극장에 걸 수나 있겠느냐”는 투자사들의 ‘알아서 긴’ 행태도 멀티플렉스 개봉으로 불식시켰다. 문제는 관객 반응이다.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278개관에서 8만 337명을 모아 4위에 올랐지만, ‘노리개’의 최종 관객 수는 16만 9064명이다.
순제작비가 6억 원으로 알려진 만큼,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고발 ‘노리개’로 사실상 장편영화를 처음 연출한 신인 감독의 패기가 꺾이는 것은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교통비 정도만 받고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미투운동과 함께 적폐청산이 가열차게 진행되는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노리개’는 ‘부러진 화살’처럼 법정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 소위 ‘노예계약’에 따른 고통의 무게로 말미암아 미모의 신인급 여배우 정지희(민지현)가 자살했다. 기획사 대표 차정혁(황태광)이 폭행을 행사하며 강요한 성상납 대상에는 한국신문사 사주 현성봉(기주봉)도 들어 있다. 한 여배우의 죽음을 불러온 성상납 사건이다.
그들은 재판에서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다. 그나마 현성봉은 무혐의 처분이다. 실제로 언론인⋅금융인⋅기업인⋅연예기획사 대표 등 20명이 수사를 받았다. 술자리를 제공한 연예기획사 대표와 매니저 등 2명만 재판에 넘겨졌을 뿐이다.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가 큰 그런 판결은 ‘도가니’에서처럼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다.
PBS 기자 이장호(마동석)와 여검사 김미현(이승연)이 공분 해소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세상엔 ‘나쁜 놈’들 천지지만, 영화에선 이기자와 김검사외에도 정의의 팬들이 많다. 결정적 증언을 한 정지희 선배 고다령(이도아), 로드 매니저(지훈) 등이 그들이다. 정의의 팬들과 함께 ‘노리개’가 거둔 수확은 이기자의 “어떤 식으로든 세상은 변한다”는 신념이 던지는 메시지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YS의 유명한 명언처럼 진실이 가려져선 안된다는 건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 지지로 봐야 한다. 사회고발의 ‘노리개’가 상업성에 함몰하지 않고 주제의식에서만큼은 격조 높은 예술영화의 품격을 유지한 점이 가상하다.
요컨대 “개나 소나 다 떠드는 세상”인데, 왜 진실을 감추려 하느냐는 것이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엔 곰팡이만 필 뿐”이니까 그런 세상은 이제 그만 굿바이하자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사람들 시선에 신경쓸 때예요”나 “물러서지 않겠나”는 김검사의 결연한 의지는 콧등을 시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전반적으로 손색 없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검찰에 비해 법원에 대한 비판 강도가 제법 세지만, 무슨 경범죄도 아니고 배석 판사 없이 재판장 혼자 재판을 진행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장의 검사님 호칭도 꽤 낯설어 보인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 ‘노리개’를 신인감독의 연출 작품으로 만났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부러진 화살’ ․ ‘남영동 1985’ ․ ‘천안함 프로젝트’의 정지영 감독같이 노장의 사회성 영화도 있지만, 이른바 중견감독들이 흥행위주의 상업영화에 몰두할 때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일반대중의 두 영화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