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 교육지원청 단위 설치 교사 부담 덜어줘야...학교폭력예방법

2018.05.02 09:00:00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는 전국 모든 초·중· 고교에 설치돼 학교폭력사건을 조사하고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는 기구이다. 2011년 12월경 대구에서 동급생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자살한 이후 「학교폭력 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에 근거해 설치됐다. 학부모·교사·법조인·의사·경찰 등 전문가로 구성되는 학폭위의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는 가장 경미한 1호(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부터 가장 중한 9호(퇴학처분)까지인데, 모두 가해학생의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현행제도는 학폭위를 각 학교별로 설치하 도록 하고 있으며, 교원 및 학부모 위원이 주가 되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학교 자체 종결권이 없어 경미한 사안이라도 무조건 학교폭력으로 신고해야 하고, 학폭위에 상정하여 심의·결정한 후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는 가장 경미한 1호 조치라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기본적 인간관계마저 무너뜨리는 학폭위

학폭위의 심의 건수는 2013년 1만 7,749건에서 2015년 1만 9,968건으로 증가 하는 등 담당교사와 학교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 학교폭력사건이 발생하면 학교폭력 담당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본연의 일이 아닌 형사사건에 준하는 학교폭력사건 처리에 몇 개월 또는 그 이상 시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건 처리 과정에서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가·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문제 삼아 민원을 제기한다. 결국 담당교사가 징계까지 당하는 경우까지 있어 과중한 업무와 불합리한 징계 우려로 교사들이 학교폭력업무를 서로 맡지 않으려고 기피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특히 학원·인근 놀이터 등 학교 밖에서 발생한 학교폭력의 경우에는 관련 학생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것을 염려하여 자녀에게 거짓 진술을 종용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런 사안까지 수사권이나 전문성이 없는 교사에게 CCTV 확인 등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내고, 가해자에 대한 처분까지 결정하라는 것은 애당초 무리인 것이다. 이처럼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문제를 학교 내에서 처리하게 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분쟁과 불만을 초래하는 구조인 동시에 교사와 학생 간의 기본적 인간관계마저 무너뜨리는 위험한 상황까지 낳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학폭위 결정에 불만이 많아 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으로 가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은 이에 대비한 자료를 준비하느라 본연의 업무 외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따라서 「학교폭력 예방법」 개정 등 대책이 시급하다.


첫째, 학폭위의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필자도 교육부 학교폭력근절대책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는 데, 생활기록부 기재는 처음부터 찬반 논란이 있었다. 상급학교 진학 시 문제가 될까 봐 학부모들이 그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학폭위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후 학폭위 결정에 불복하는 재심청구나 행정소송이 급격히 늘어남으로써 그 우려는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해당 학교와 교사들은 관련 자료를 준비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따라서 가해행위로 인 해 피해학생에게 신체·정신상의 피해가 있었다고 볼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재산상의 피해가 없거나 즉각적인 복구가 이루어졌을 경우, 또는 가해학생이 즉시 잘못을 인정하여 피해학생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이에 대해 피해학생이 화해에 응하는 경우 등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서는 학교장에게 종결권을 부여하 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학폭위를 개별 학교마다 설치하는 것은 학생과 부모로부터 그 구성과 운영에 대한 불신을 피할 수 없다. 학교폭력은 예측할 수가 없어 학폭위 개최 시기를 사전에 정할 수 없고,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학폭위를 열어야 한 다. 그런데 법조인·의사 등 전문가들이 개인 일정상 갑자기 잡힌 학폭위 개최일정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2015년 기준, 인천 지역 학교들의 학폭위 구성원 가운데 학부모와 교원이 80% 이상이고, 전문가는 각 1% 미만에 불과했다. 결국 비전문가인 학부모와 교원이 주축인 학폭위 결정이 객관성·전문성·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폭위는 지역교육지원청에 두어 법률 전문가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를 채용하거나 위촉하여 학교폭력 전담부서를 운용하는 것이 공정성과 전문성을 모두 확보하는 길이다. 필요하다면 공익법무관이나 공중 보건의를 일정 기간 의무 복무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관할 내 학교폭력사건을 전담하게 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전문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마저 불식시킨다면 학교와 교사들은 학교폭력사건 처리 부담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더불어 학교는 정상화되고 재심이나 행정심판도 자연히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셋째, 재심제도의 일원화가 필요하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폭위 결정 조치에 대한 이의절차로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에게 각 재심청구권을 인정하고 재심 결과에 대하여 행정심판으로도 다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학생 재 심은 시·도지역위원회에서, 가해학생 재심은 교육감 소속 조정위원회가 맡아 절차 및 담당기관을 달리하고 있다. 재심기관이 달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재심 일원화 또한 시급하다.


제자를 심판해야 하는 고되고 서글픈 교사

교사는 미성숙한 학생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줌으로써 학생들끼리 서로 화합하여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가르치고 도와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학폭위에서 담당교사는 거꾸로 제자들과의 분쟁에서 조사관·심판관 역할이라 교사 본연의 역할과는 너무나 괴리가 있고 전문성마저 없다. 그래서 학교폭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고되고 서글프기 까지 하다.


하루빨리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문제되는 부분을 개정하여 선진국처럼 학교와 교사를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처리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학폭위가 일선 교육지원청에 설치돼 경직화된 학교폭력처리 절차가 개선되고, 학교와 교사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최근 발의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

이정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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