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 -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2018.04.24 15:07:27

필경사 바틀비

 


산줄기를 타고 흐르던 초록의 물결은 그대로 희뿌연 아까시꽃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송화가루가 노랗게 창문 틈에 내려앉는 계절입니다. 봄의 초입을 장식하던 꽃들이 진 자리에 잎들이 무성해지고, 서늘한 보랏빛 꽃들이 사위를 메웁니다. 두둥실 꽃등 같이 피는 오동꽃과 포도송이처럼 수북수북 쏟아지는 등꽃, 젊은이의 미소 같은 라일락 그리고 울트라 바이올렛빛의 모란이 여왕처럼 피었습니다.


학교는 시험기간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석현의 피곤한 표정 뒤로 건호는 세상 귀찮은 얼굴로 도서관에서 책을 꺼냅니다. 내일 시험이니, 독서보다는 공부를 하라는 저의 성실한(?) 충고에 뚱한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 안 하고 싶어요.”


그래, 네가 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구나. 책이나 보렴.” 이렇게 말하며 도서관을 내려왔습니다.

 

초록이 사태를 이룬 강마을도서관에 앉아 저는 독특한 내용의 책을 읽었습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뉴욕 월가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낸 필경사를 찾는 광고를 보고 바틀비가 찾아옵니다. 화자인 변호사는 열정적인 변론보다는 부자들의 계약서, 저당 증서, 부동산 권리 증서를 다루는 편안한 일을 좋아하는 인물로 그는 직원인 터키, 니퍼즈, 진저 넛과 함께 바틀비와 일하는 도중 바틀비는 변호사가 부탁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가 꽃을 피운 뉴욕의 월가의 일개 필경사로 일하던 바틀비는 세계인에게 회자인구(膾炙人口)하는 명언을 남깁니다.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바틀비는 모든 일을 거부하고 심지어 먹는 것마저 거부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들은 얼마나 자발적인 거부를 할 수 있을까요? 주변의 눈치 때문에 사회적 지위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 거부하지 못합니다. 바틀비는 자발적으로 노동의 거부, 삶에 대해서도 거부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캐릭터의 탄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강마을은 봄빛은 난만합니다. 시험공부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거부의 자유가 있음을 생각합니다.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학생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은 어리석은 선생 옆으로 봄은 다시 흐릅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봄날되십시오.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지음, 한기욱 옮김, 창비, 2010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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