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2018.06.04 09:21:39

 

유월의 숲은 젊은 녹음으로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때죽나무 하얀 꽃이 진 자리에 동글동글한 열매가 새끼손톱만 하게 총총 매달려 있습니다. 희뿌연 밤꽃은 먼지털이처럼 보이는 꽃차례로 짙고 역한 내음으로 자신을 알립니다. 건강한 욕망처럼 유혹과 번식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여름 숲으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모습이 숲 속 나무와 풀과 새와 벌레들일 것입니다. 황병기의 가야금 곡 을 듣고 있으면 봄숲의 싱그러운 뻐꾸기 소리와 여름 숲의 푸른 녹음이 느껴집니다. 가야금곡 숲도 좋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국악 곡은 거문고 연주곡인 소엽산방입니다. 낙엽을 쓸고 사는 산방의 분위기가 깊고 그윽한 거문고 울림으로 살아납니다. 이런 멋진 창작 국악곡을 작곡하신 황병기 선생님은 지난 131일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 저는 혼자서 그 분의 대표곡 침향무를 들으며 추모하였습니다. 침향을 피우듯 밤늦도록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로 제 마음을 적셨습니다.

 

황병기 선생님은 전통 국악에서 창작 국악까지 새로운 지평을 여신 분이지만 이력도 특이하신 분이십니다.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며 중학교 3학년 때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물같이 고요하지만 그 속에 뜨거운 불길을 간직한 멋진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국악교육의 기틀을 세우신 교육자로 활동하셨습니다. , 전통을 중시하는 학자이자 새로운 물결을 갈망하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소통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글은 깊고 품위 있으면서도 새로운 시각이 드러납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읽었던 그 분의 책을 다시 구입하였습니다.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를 다시 천천히 차를 마시듯 읽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는 젊은 시절 내 영혼이 깊은 감동을 준 선생님 글은 여전히 좋았습니다.

 

...음악은 객관성이 철저한 주관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공자가 인생의 최고 단계라고 설파한 마음이 하고자 하는 잣대로 하여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경지와 상통한다고 하겠다. p.73

 

21세기는 세계화 시대라고 한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전통음악에서도 서양적인 것을 수용하고 우리적인 것을 희석함으로써 서양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음악 상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세계의 음악 문화는 결국 균일화되어 미국에서 듣는 음악이나 중국, 인도, 티벳, 아프리카 등 세계 어느 곳에서 듣는 음악이나 모두 흡사하게 된다. 그 결과 막대한 상업자본으로 뒷받침되는 미국의 대중음악이 전 세계를 휩쓸게 되고, 각국의 민족음악은 그 정체성을 잃어 궁극적으로는 세계 음악 문화가 황폐해질 위기에 처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일수록 세계 어느 곳의 음악과도 다른 각 민족 고유의 독창적인 음악을 창조하려는 운동이 필요하다. PP.218~217

 

무학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밤꽃내음이 짙습니다. 첫여름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잠 못 드는 뜨거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해 줄 음악으로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곡 춘설과 무반주 거문고 곡 소엽산방을 추천합니다.^^ 건강한 여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황병기 지음, 풀빛, 2012(개정판)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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