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짧은 선거운동 기간을 뒤로하고 마침내 전국 곳곳의 광역 및 기초단체장을 선출하는 6.13 지방선거가 마무리됐다. 유권자들은 무려 7~8장에 달하는 투표용지 속에서 옥석을 가리기 위해 공보물을 열심히 살펴야 했을 터. 그때 그 ‘매의 눈’으로 6~7월 무대 위에 오를 공연들을 자신의 취향, 후보(?)의 역량을 고려해 꼼꼼히 골라보자.
라이선스 VS 창작
라이선스 뮤지컬은 해외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작품에 대해 판권 계약을 체결하고 대사와 가사만 한국어로 바꾼 수입 뮤지컬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현재 공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로는 <시카고>가 대표적. 작품은 1996년부터 현재까지 22년 동안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스테디셀러 뮤지컬. ‘섹시한 뮤지컬’로도 불리는데, 살갗이 그대로 비치는 의상을 입은 남녀 배우들의 매혹적인 움직임과 농염한 재즈 선율의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그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15인조 빅밴드와 몇 가지 소품만 놓인 무대는 세련된 조명과 흥겨운 재즈선율, 그리고 배우들의 호흡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금까지 <시카고>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해온 박칼린이 벨마 켈리 역으로 무대 위에 서 기대감을 자아낸다. 배우 안재욱은 돈만 밝히는 비열하고 냉혹한 변호사 빌리 플린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한다.
창작 뮤지컬은 말 그대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신작이다. 때문에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완성도나 작품성이 뛰어날지는 그야말로 복불복(福不福)이다. 올 하반기 공연계의 기대감을 한껏 모으는 작품은 단연 <웃는 남자>. 제작 기간 5년, 제작비 175억 원이라는 유례없는 규모의 시간과 비용이 투자된 작품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무대 위로 옮겼다. 이야기는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의 어린이 인신 매매단 콤프라치코스의 끔찍한 범죄에 의해 강제로 ‘웃는 얼굴’을 가지게 된 그윈플렌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조명한다. 푸른 눈의 제작진은 누구보다 한국 관객들의 감성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다. <레베카> <엘리자벳> 등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 ‘지금 이 순간’이라는 명곡을 남긴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바로 주인공. 그웬플린 역에는 박효신, 수호(EXO)와 함께 뮤지컬계 루키로 떠오른 박강현이 캐스팅됐다.
<시카고> 5.22-8.5 | 디큐브아트센터
<웃는 남자> 7.10-8.26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앙상블의 스케일 VS 두 사람의 호흡
번쩍번쩍 빛나는 화려한 세트와 조명, 한 치의 오차 없는 칼군무, 무대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탭댄스 소리… 이런 풍경이야말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설명해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브로드웨이 42번가>만한 작품이 없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뮤지컬 스타가 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페기 소여가 코러스 걸부터 시작해 마침내 빛나는 별이 되는 성장기다. 이야기의 배경이 극장인 덕분에 공연 한 편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고, 시련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찡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의 백미는 군무다. 무려 25명의 앙상블이 일사불란하게 선보이는 탭댄스 퍼포먼스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재즈풍의 경쾌한 스윙 음악, 탭댄스의 중독성 있는 리듬은 극장을 나선 뒤에도 한참 동안 따닥 따닥 하는 탭 소리가 귀에 맴돌게 만든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이 등장한다. 러시아의 천재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가 그 주인공. 한 인물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만큼 많은 등장인물은 필요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3년간 음표 하나도 쓰지 못하던 절망의 시기, 달 박사를 만나면서 기나긴 슬럼프를 빠져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 속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 등 클래식 명곡들이 연주된다. 작곡가 특유의 아름답고 구슬픈 느낌의 절제된 선율은 편곡을 통해 8중주의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했고, 이는 뮤지컬과 클래식의 완벽한 접목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비범한 천재에게도 음표 하나 조차 쓸 수 없었던 절망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 그 어둠의 시간을 겪어낸 뒤에 비로소 인생의 역작을 꽃피워냈다는 사실은 삶의 어두운 구간을 지나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에 따뜻한 격려를 전한다.
<브로드웨이 42번가> 6.21-8.19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라흐마니노프> 6.9-7.8 |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