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10만원 벌기

2018.08.09 09:40:16

폭염에 세입자 원룸 대청소를 함께 하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10만원을 벌기로 했다. 아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10만원 아끼기로 했다. 세입자의 빈 방을 부자(父子)가 힘을 합쳐 청소하기로 한 것. 부동산에 알아보니 청소비용은 원룸인데도 10만원, 15만원이다. 그러니 주인이 직접 청소하면 10만원을 버는 셈이다. 나의 요청을 아들이 받아들여 청소 함께하기가 성사된 것.

 

아들과 함께 청소를 하면서 세대 차이를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6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 말이 부자이지 마음속에 있는 말을 주고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사고방식이 다르고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폭염 속의 아버지와 아들, 어떻게 청소를 할까?

 

준비물부터 다르다. 나는 비와 쓰레받기, 행주와 걸레, 솔을 챙겼다. 아들은 청소기부터 챙긴다. 원룸에 도착해 앞에 놓인 일거리를 확인하고는 고무장갑 두 개, 황사 마스크 두 개, 곰팡이 제거제, 세정제, 폐기물 스티커 4장,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챙긴다. 편의점에서 사오는데 2만 5천원이 들었다. 세입자를 잘못 만나 발생한 비용이다.

 

오늘의 일거리 어떻게 생겼을까? 퇴직 후 안정적 수입원으로 도시형생활주택 두 개를 분양받았다. 월세를 받아 생활비에 보태려 했던 것. 이것은 1가구 2주택에 해당되지 않는다. 주택 하나 당 1억 원 가량이다. 월세는 원룸 당 40만원 정도. 고정적 수입은 매달 80만원. 부동산임대업 신고를 하였으나 월세 수입이 수월치 않다. 세입자가 월세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밀린 월세와 관리비 연체까지 합하면 보증금 300만원에 육박한다. 연락처를 수시로 바꾸어 관리소장과 집주인을 난처하게 만든다. 급기야는 단전 단수 조치까지 취하니 야반도주하고 만다. 22세 청년인데 약속 위반은 다반사다. 월세를 제 날짜에 입금한 적이 드물다. 이런 세입자는 주인에게 골치덩이. 그러나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3개월간 방치된 원룸은 엉망이다. 지저분한 베개와 이불더미, 고양이 놀이터, 기타, 책, 농구공, 슬리퍼, 우산, 라면 등 모두가 버려야할 쓰레기다. 이 쓰레기 버리는데 모두 비용이 수반된다. 열려진 냉장고 안은 온통 곰팡이 투성이. 벽지는 곳곳이 뜯겨져 있고 고양이 발톱으로 할퀸 자국이 여기저기에 있다. 이것을 치우고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해야 새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 월세 40만원 벌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은 나에게 마스크를 씌워준다. 먼지가 발생하거나 곰팡이를 직접 만지는 일은 자신이 한다. 뜯어진 벽지를 보고는 새롭게 도배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입자의 입장이 되어 본 것. 세면장 배수로가 막혀 있어 물청소가 힘들다. 아들은 약품을 사다가 막힌 머리카락을 녹여야 한다고 한다. 냉장고 곰팡이는 제거제를 뿌린다. 아들이 염려한 것은 오염지대에서 위생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고무장갑, 마스크, 곰팡이 제거제를 구입한 것이다.

 

오후 4시부터 3시간 청소를 하였으나 반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폭염인지 출입구와 창문을 열고 일하는데 땀이 비 오듯 한다. 급기야는 문을 닫고 에어컨을 가동시킨다. 두 사람이 10민원 벌기가 이렇게 힘들다. 이 오염된 곳을 청소하느니 오히려 인부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부동산에 들려 벽지 약간을 얻었다. 아들의 생각과는 달리 땜질하여 비용을 아끼려는 것.

 

이튿날 나 혼자 원룸을 찾았다. 욕실과 거실 마무리 정리를 위해서다. 벽지는 관리소장으로부터 여분을 얻어 임기응변 조치를 취했다. 욕실 배수는 관리소장의 도움을 받으니 막힌 곳이 뻥 뚫린다. 거실 바닥 걸레질을 10여 차례 하니 제대로 된 방바닥 모습이 나타난다. 주택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망가지고 창고처럼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번 일을 통해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 주인이 세입자의 좋은 습관들이기 요령 몇 가지를 배웠다. 아들의 효성도 보았다. 위생관념에 철저하고 힘든 일은 솔선하는 아들을 보았다. 쓰레기 처리함에 있어 준법을 실천하는 아들이다. 비용보다 위생과 준법을 생각하는 아들이 기특하다. 60대 아버지는 가능하면 비용을 줄이려 하는데 비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한 청소, 교훈도 챙기고 오래 기억이 될 것 같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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