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 엄마의 말뚝

2018.09.17 09:07:25

오빠의 죽음으로 표상되는 민족사의 비극

친정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고구마줄기김치를 담가 두었으니 퇴근길에 들러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이 생겨 가지 못하게 되자, 어머니께서는 행여 딸이 좋아하는 김치 맛이 변할까 봐 계속 재촉을 하십니다. 어제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늦은 시간 친정으로 가 어머니도 뵙고 김치를 가져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아싹하고 매콤한 고구마줄기김치로 밥을 한 그릇 수북하게 먹었습니다.

 

행복한 밥상을 앞에 두고 친정어머니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이 김치를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천명을 지난 딸이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물가에 있는 아이 같은가 봅니다.^^ 계절을 타서 꺼칠한 제 얼굴이 못마땅하신 듯 얼굴을 문질러 닦아 보라며 거즈 손수건 한 장도 쥐어 주십니다. 이렇게 제 마음을 묶어놓을 말뚝이 가까이 계시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호호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엄마의 말뚝』을 읽었습니다. 억척어멈 같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말뚝 이었던 오빠의 죽음으로 표상되는 민족사의 비극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전부 3편의 연작으로 되어 있지만 세 편 모두 독립된 구조와 내용을 가지고 있어 따로 읽어도 같이 읽어도 좋은 훌륭한 소설입니다. 특히, 박완서 특유의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력에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몸서리를 치면서도 그 꼭대기에 새로 장만한 집이 대견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기둥 서까래까지 손수 양잿물로 닦아내고 구석구석 독한 약을 뿌리고 도배장판도 새로 했다. 집을 처음 산 걸 좋아하기보다는 저런 귀살스러운 집에서 어찌 살까 난감스럽기만 하던 오빠와 나도 매일매일 달라지는 재미에 학교만 갔다 오면 그 집에 붙어서 엄마를 거들게 됐다. 이사 가는 날은 커다란 무쇠솥을 새로 사서 엄마가 손수 부뚜막을 만들고 걸었다. / 엄마의 말뚝1

 

 

삼우날 다시 찾은 산소에서 나는 어머니의 성함이 한 개의 말뚝이 되어 꽂혀 있는 걸 보았다. 정식 비석은 달포쯤 있어야 된다고 했다. 말뚝에 적힌 한자로 된 어머니의 성함에 나는 빨려들듯이 이끌렸다. 어머니의 성함 중, 이름을 따로 뜻으로 읽어보긴 처음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닌 부드럽고 나직하게 속삭이며 아직도 내 의식 밑바닥에 응어리진 자책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딸아, 괜찮다 괜찮아. 그까짓 몸 아무 데 누우면 어떠냐. 너희들이 마련해준 데가 곧 내 잠자리인 것을. / 엄마의 말뚝 3

 

가을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서 있습니다. 서늘한 바람결에 벌레소리가 무성하고 뒷마당 벽오동 나무 열매는 갈색으로 버석거립니다. 들판에는 벼이삭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대추나무 열매는 토실토실 여물었습니다. 참 좋은 계절입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엄마의 말뚝』, 박완서 지음, 세계사, 2012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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