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학생들이 자주 쓰기 시작한 단어를 꼽자면 바로 ‘인싸’와 ‘아싸’가 있다. ‘인싸’와 ‘아싸’라는 말은 각각 ‘insider’, ‘outsider’라는 영어에서 유래했다. TV, 인터넷, 동영상 공유서비스 등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어 그런지 이 단어를 쓰지 않는 학생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싸’와 ‘아싸’라는 단어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숨어있다. 바로 계급이다.
진화 거듭하는 그들의 언어
‘인싸’, ‘아싸’라는 말은 계급을 만들고자 하는 저열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 ‘인싸’ 학생들은 외향적이고 인기 있는, 옛말로 하면 잘 나가는 학생이다. 반대로 ‘아싸’는 다소 조용한 성향의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이 단어들을 단순한 수평적 차이의 의미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인싸’는 언젠가 ‘아싸’와 거리 두기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사실 학교에서 이러한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들은 빠르게 변해왔다. ‘인싸’와 ‘아싸’가 사용되기 불과 몇 년 전에는 ‘일진’과 ‘왕따’가 있었다. 그 이전에는 ‘짱(캡짱)’과 ‘찐따(찌질이)’라는 말들이 존재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생명체와 같은 언어의 속성일 것이다. 기존에 쓰이던 유행어들은 병들고 노화되기 마련이다.
교육계는 지난 십여 년 간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언론과 힘을 합쳐 ‘일진’, ‘왕따’, ‘짱’, ‘찌질이’ 같은 단어들에 부정적인 색을 덧칠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 단어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병을 얻게 된 셈이다. 그들이 건강했던 2008년에는 결코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진을 선망하는 학생들이 일으킨 사건들이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했다. 그러나 2019년 새해를 앞둔 지금 일진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은 찾아볼 수 없다. 요새 학생들에게 ‘너가 일진이냐?’고 묻는다면 학생이 먼저 손사래를 친다.
아직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인싸’와 ‘아싸’는 기존의 계급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청소년 범죄와 관련된 뉴스에서 학생들이 톡을 주고받으며 ‘누구누구가 아싸’니 ‘누구누구가 인싸니’, ‘아싸들이 왜 인싸처럼 행동하니’ 등 말을 주고받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인싸, 아싸’는 TV, 인터넷 등의 미디어마저 비평 없이 쓰일 정도로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계급 짓고 급을 나누며 열등한 ‘아싸’들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착각마저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들의 전투력은 기존의 단어들보다 훨씬 강력하다.
전투력 강한 부정적인 표현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학생은 과거 일진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하더라도, 아마 자신을 일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학생의 언어습관 속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은 ‘인싸’이지 ‘일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진’, ‘왕따’의 언어문화 속에서 자란 20대의 교사인 내 눈에 비친 그는 영락없는 일진이지만 사실 그 학생은 누구보다도 일진을 싫어하고 왕따 문화를 비판하는 학생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그녀)는 단지 ‘인싸’일 뿐이고 그(그녀)를 둘러싼 학교에 태초부터 존재한 유일한 오점이 있다면, 다른 학생들이 ‘아싸’인 것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