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기 불편한 구조 만들어야 이익

2018.12.19 08:51:04

 

신용으로 쓰는 돈을 줄이고 저축을 통해 나중에 쓸 돈을 준비해두는 것은 돈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내 돈이지만 은행이나 카드사, 보험사에서 먼저 빼가서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돈 대신 써야하거나 쓰고 싶을 때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을 늘리는 것이 돈 관리의 핵심이자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쓰기에 불편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돈 관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돈의 흐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돈이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 먼저 쓰고 나중에 갚는 식으로 지출되는 돈은 얼마나 되는지, 목돈을 써야 할 일은 얼마나 남았는지, 생활비로 쓰는 돈은 얼마나 되는지와 같이 가정의 굵직한 돈의 흐름을 꿰고 있어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집 살림은 뻔하고 머릿속에 이미 돈의 흐름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항목별로 따져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 덕분에 실제로는 돈을 썼지만 머릿속에서는 금세 지워지는 지출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카드 결제금액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고 하는 이유는 이렇게 대부분의 지출이 머릿속에서 지워졌기 때문이다. 잘못 청구된 것 같아 명세서 내역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제야 썼던 것이 기억나곤 한다. 

 

거래내역 정렬해 고정지출 파악부터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관리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가계부다. 하지만 대부분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대신 요즘은 모든 거래의 흔적들이 온라인으로 남기 때문에 통장과 카드 거래내역들을 모아 정리해보면 흐름을 추적할 수 있다. 모든 통장의 거래내역을 엑셀로 다운로드해서 월별로 정렬하고 이를 다시 날짜별로 정렬해 비교해보면 매달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거래내역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거래들이 미리 쓰고 나중에 갚는 돈들이다. 흔히 고정지출이라고 부른다. 신용카드도 마찬가지로 정리해보면 통신비나 아파트 관리비, 학원비처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지출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지출을 따로 뽑아 고정지출(미리 쓴 돈)으로 묶고 항목, 금액, 날짜 등을 정리해둔다. 다음은 저축과 관련한 내역을 찾아 이체날짜와 금액, 저축만기일 등을 정리한다. 나머지가 흔히 생활비라고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생활비 중에도 일상적으로 쓰는 것과 어쩌다 한번 쓰는 돈들이 있다. 시력교정을 위해 렌즈를 맞추거나 명절 음식장만을 위해 장을 보거나 자동차보험을 3개월 할부로 나눠 내는 것들은 일상적인 지출이라기보다는 어쩌다 한번 쓰는 돈들이다. 하지만 이런 돈들도 매달 내용을 달리하며 꽤 많은 금액을 차지한다.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는 지출이어서 신용카드나 마이너스통장과 같이 빚으로 해결하기 쉽고 다음 달 고정지출을 높이는 원인이 되곤 한다. 이는 비정기 지출로 구분해서 정리해둔다. 이렇게 고정지출(미리 쓴 돈)과 저축, 비정기 지출을 뺀 나머지가 바로 생활비, 먹고 입고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지출이다. 현금으로 쓰는 것도 있기 때문에 현금인출 기록도 생활비로 반영한다. 
 

지출을 파악한 다음으로는 소득을 정리한다. 월급 등 정기소득과 상여금이나 인센티브, 각종 수당과 같은 비정기 소득으로 나눠 정리한다. 비정기 소득의 경우 매년 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대략적인 금액과 시기를 파악하면 된다. 이제 소득의 흐름에 맞춰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맞는지 살펴보자. 월 정기 소득 내에서 지출과 저축이 이뤄지고 있는지, 만약 적자가 나고 있다면 적자금액은 얼마이고 비정기 소득까지 감안하면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지 평가해본다. 만약 해소되지 않는다면 지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목돈 쓸 일 고려해 저축목표 정해야

 

먼저 현재의 저축이 적정한지 평가해보자. 목돈 쓸 일에 맞춰 나눠 저축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나중에 써야 할 돈은 예측해서 저축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사용 시기와 내용을 감안하지 않고 무턱대고 큰 금액을 저축하는 것은 오히려 현금흐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현실적인 저축여력을 초과하는 무리한 저축으로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거나 일시적으로 유동성(현금)이 부족해 빚이 늘 수 있다. 따라서 목돈 쓸 일과 함께 소득과 지출을 함께 고려해 저축목표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1~2년 이내에 사용할 단기 저축은 만기되는 시점에 유동성을 높여주고 목표했던 지출을 빚 없이 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내 집 마련이나 자녀교육비와 같은 장기 저축보다 가족여행이나 자녀의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 등과 같이 조만간 목돈 쓸 일을 꼼꼼히 챙겨 6개월~2년 정기적금으로 만들면저축하는 재미와 돈 쓰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저축금액을 현실화해도 적자가 계속 되거나 보다 짜임새 있게 돈을 쓰고 싶다면 고정 지출과 생활비를 평가해보고 불필요하거나 너무 방만하게 쓰이는 돈을 관리하면 좋다. 이때 생활비보다는 고정지출을 조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단순히 아껴서 쓰자 마음먹는 것은 결심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뿐 아니라 효과도 일시적이다. 하지만 중복된 보험을 해약하고 사용도가 떨어지는 렌탈 제품을 해지하거나 좀 더 저렴한 통신요금제로 바꾸는 것은 고정지출을 줄여 절약 효과를 오래 지속할 수 있다. 고정 지출은 한번 선택하면 그 이후로는 지출에 대한 통제력을 갖기 어렵다. 자동이체나 신용카드 결제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출을 선택하는 시점에 신중하게 결정하고 자동이체나 카드결제를 통해 정해진 날짜에 지출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연체로 인한 불이익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는 것은 생활비다. 생활비야 말로 실제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렇다고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는 식으로 쓸 수는 없다. 식비나 의료비처럼 쓰지 않을 수 없는 필수적인 비용도 있기 때문이다. 돈 쓰기에 불편하게 만들수록 이익이 되는 지출이 바로 이 생활비이다. 신용카드처럼 편리한 수단으로 생활비를 사용하면 충동적으로 낭비되기 쉽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아이들이 원하는 소소한 물건을 사는 것처럼 비교적 소액을 수시로 쓰기 때문에 경각심이 낮아지고 사용 총액을 인식하기 어렵다. 때문에 생활비는 소액을 지출하더라도 얼마큼 쓸 수 있는지, 써도 되는지 점검하고 써야 한다. 빠르고 쉽게 지출하는 대신, 따져보고 신중하게 지출하는 불편함을 가져야만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용해도 되는 금액을 미리 정해 금액 내에서 쓰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에 일주일 생활비를 생활비통장에 이체해 체크카드로 잔액을 확인해가며 사용하거나 현금으로 찾아 하루치 생활비만 지갑에 넣고 다니며 쓰는 식으로 관리 기간을 짧게 나눠 쓰다보면 자연스레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들을 줄여나가게 된다. 

 

주 단위로 생활비 정하고 체크카드 활용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인 사례자의 경우 아내의 월급은 고스란히 고정지출로 나가고 있다. 자녀들이 초등 고학년이 될 무렵에는 좀 더 넓은 집을 마련하고 싶어 저축에 집중하고 있다. 저축금액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최대한 저축해야한다는 생각에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저축은 유지하고 싶다. 고정지출과 저축을 제외하면 매월 평균 40~50만 원 가량 부족하다. 
 

이 가정의 경우 정기소득만으로는 적자가 나지만 비정기 소득까지 감안하면 적자를 메꾸고 추가적인 저축도 가능하다. 하지만 급할 때 쓸 수 있는 비상금이 없는 만큼 비정기 소득을 모아 CMA통장에 넣어두고 비상금과 비정기 지출을 충당하도록 한다. 증권사나 종금사를 통해 개설할 수 있는 CMA통장은 은행의 보통예금통장처럼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면서도 잔액에 대해서는 보통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비교적 높은 잔액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언제든지 찾아 써야하는 비상금이나 비정기지출을 위한 용도로 적당하다. 
 

사례자의 경우 다음과 같이 통장시스템을 구성하도록 한다. 먼저 아내의 급여통장은 고정지출용으로 정해두고 자동이체와 신용카드 대금결제를 연결해둔다. 전세대출과 연계돼 있어 해지하기 어려운 신용카드는 가지고 다니지 않고, 대신 통신비나 관리비결제 등과 연결해 사용실적을 맞추도록 한다. 저축은 남편의 급여 통장에서 자동이체 되도록 설정해두고 매주 일주일 생활비 25만 원씩은 생활비통장으로 이체해 체크카드로 사용한다. 경조사나 치과치료 등 비정기적인 생활비가 추가로 발생할 경우 CMA통장에서 필요한 금액만큼 이체 받아 사용한다. 남편과 아내 용돈은 각자 현금이나 체크카드로 사용하면 된다. 
 

매년 연말에는 일 년 동안 사용하고 남은 CMA통장의 잔액을 1년짜리 정기예금으로 묶어 저축하면 저축 이외에 추가적인 여유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예산을 세울 때 지출의 우선순위는 ①미리 쓴 돈인 고정지출 ②나중에 쓸 돈을 모으는 저축 ③비상금 저축 ④명절이나 세금과 같은 비정기지출 ⑤생활비 순이다. 번호가 빠를수록 지출이 먼저 일어나지만 통제하기는 어렵다. 사용하고 남은 비상금이나 비정기 지출, 생활비 잔액은 따로 모았다가 연말이나 연초에 정기예금으로 묶으면 ⑥비정기 저축까지 할 수 있다.

이선정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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