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배우고 느끼고 놀다!

2019.01.14 10:56:56

 

전북 남원은 지리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춘향의 고장이다. 겨울의 한가운데를 건너고 있는 이즈음, 지리산은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처럼 흰눈 속에 파묻혀 있다. 겨울에 남원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지리산은 어딜 가나 하얀 눈을 만날 수 있지만 바래봉 일대는 나뭇가지마다 탐스럽게 얹힌 눈꽃이 동화처럼 아름답다. 

 

십승지(十勝地)에 꼽혔던 바래봉

 

바래봉(해발 1167m)은 지리산 서쪽 봉우리의 하나로 일찍이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혔다. 십승지는 정감록에 나오는 내용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 좋은 10군데 장소를 일컫는다. 바래봉은 동쪽으로는 팔랑치, 서쪽으로 여원치, 북쪽으로는 덕유산에 둘러싸여 있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와 용산리, 인월면 중군리, 산내면 내령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다. 산의 모습이 공양 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바래봉이다. 이곳 사람들은 산 모양새가 마치 삿갓처럼 보인다 하여 ‘삿갓봉’으로도 부른다.
 

 

바래봉은 이즈음 눈꽃이 환상적이다. 순백의 눈이 켜켜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설원을 만들어낸다. 적설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보니 해마다 눈꽃축제가 열린다.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2월 초순까지 바래봉 일원에서 화려한 겨울놀이가 펼쳐진다. 빙벽 타기, 눈썰매 타기, 얼음썰매 타기, 눈싸움 대회, 팽이치기, 눈사람 만들기, 연날리기, 눈조각 전시 등 방문객들을 한겨울의 낭만으로 안내한다. 눈꽃축제의 백미는 바래봉 정상에 오르는 것. 정상에 서면 동쪽의 천왕봉에서 서쪽의 노고단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월과 금계를 잇는 지리산 둘레길도 걸어볼만하다. 총 길이 19.3km로 약 3시간이 걸린다. 이 길은 오른쪽으로는 바래봉과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수정봉, 고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걷는다. 중간 중간 만나는 비전마을, 장항마을, 매동마을, 상황마을 등은 우리네 고향에 온 것처럼 정겹다. 또한 길 주변에는 황산대첩비, 송흥록 생가, 박초월 생가, 5일장, 흥부골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걷는 재미와 함께 역사의 향기에 빠져볼 수 있다. 
 

비전마을에서는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인 송흥록(1780~1860 추정) 선생의 생가에 잠시 들러본다. 지리산 정기가 내려오는 운봉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청담한 창법으로 판소리 가락을 완성했다. 거개의 사람들은 영화에 나온 서편제는 잘 알지만 동편제는 잘 모른다. 수식과 기교가 많아 여성적인 소리로 알려진 서편제와는 달리 동편제는 남성적이고 힘이 넘친다. 동편제는 송흥록 선생이 기초를 닦았는데 이후 그의 아우인 송광록과 그의 아들 송우룡으로 이어졌고 송우룡의 아들 송만갑으로 이어지는 송문일가(宋門一家)를 이뤘으니, 한집에서 5대를 이어 명창이 배출된 건 아주 드문 일이다. 비전마을은 명창 박초월(1913~1983) 선생이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소녀 명창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기능보유자로 여성 판소리계에 큰 울림을 줬다.
 

마을 초입에 있는 황산대첩비지에도 들러본다. 황산대첩은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군을 찾아 크게 무찌른 전투다. 그때의 승전을 기념해 비문을 세웠다. 기록에 의하면 몇 번의 밀고 밀리는 싸움으로 왜군의 시체가 언덕을 이뤘고 피가 냇물로 흘러들어 7일간이나 물빛에 핏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대첩비는 조선 선조 10년(1577) 왕명에 따라 건립됐으나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 후 다시 옛 모습대로 재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00년을 맞는 사랑의 무대

 

남원 하면 춘향이 떠오른다. 판소리, 영화, 연극, 설화, 소설 등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화 콘텐츠다. 성춘향(월매 딸)과 이몽룡(남원부사 아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이제 하나의 실화처럼 우리네 마음에 각인돼 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단순한 사랑이 아닌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기에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사랑의 현장(가상공간)이 바로 광한루원이다. 
 

광한루원의 정문인 ‘광한청허부’로 들어선다. 오른편으로 그네가 보이고 그 옆으로 춘향이가 자랐다는 ‘월매집’이 있다. 전통 한옥 양식에 장독대와 텃밭이 있는 초가는 춘향이와 이도령이 사랑을 속삭이고 백년가약을 맺은 곳으로 그 때의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린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부용당이 있고 뜨락엔 당시 쓰던 갖가지 생활용구들이 가지런하다.  
 

광한루(보물 제281호)는 지배계층인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천민 신분의 기생 딸 성춘향을 만난 곳으로 광한루원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사랑의 전설이 얽힌 광한루는 올해로 600년을 맞는다. 이 세계적인 사랑의 무대가 세워진 건 1419년. 아득한 역사의 산물이다.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는 단아하고 미려하다. 연못 위에 세워진 다리는 반달 모양의 유려한 홍교다. 춘향과 몽룡이 신분의 벽을 뛰어 넘어 사랑을 키운 곳으로 이 다리를 1년에 한 번만 밟으면 부부간에 금슬이 좋아지고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다. 오작교를 건너 만나게 되는 광한루 앞 연못에는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 영주섬(산), 봉래섬(산), 방장섬(산) 등 3개의 작은 섬이 사다리형의 예쁜 다리로 연결돼 있다. 이들 작은 섬은 일명 ‘삼신산’이라 불린다. 가운데 올라앉은 방장섬은 푸른 대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광한루원 건너편의 춘향테마파크에 가면 춘향전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좀 더 세밀하게 접할 수 있다. 

 

 

남원 명창들이 거쳐 간 구룡계곡

 

남원시내에서 60번 지방도를 타고 주천면 소재지를 지나 지리산 북부권인 구룡계곡으로 간다. 지리산국립공원 구룡분소가 있는 주천면 호경리에서부터 구룡폭포가 있는 주천면 덕치리까지 펼쳐지는 심산유곡은 자연이 빚어놓은 걸작품이다. 구룡계곡에서 정령치를 넘으면 반선-성삼재-달궁-뱀사골로 갈 수 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는 체인 등 월동장비가 필수다. 구룡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육모정 앞 가파른 돌계단길을 올라가면 무슨 왕릉처럼 생긴 춘향 묘가 나타난다. 춘향전을 토대로 만든 가짜 묘지만 실제처럼 사실적이다. 
 

용소 위로 걸린 구름다리를 건너면 높은 암반 위로 육모정이 올려다 보인다. 산과 계곡을 낀 멋진 정자다. 거처를 볼 줄 아는 옛 사람들의 안목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용소(龍沼)는 용호구곡의 제2곡으로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석문처럼 갈라진 바위틈을 뚫고 하얀 물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육모정에서 계곡 방향 반석으로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이 굉음을 내며 소(沼)를 이룬 용소를 만난다. 용소 위,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입구에는 판소리 8명창 중의 한 분인 권삼득 선생의 유적비가 서 있다. 구룡계곡과 용소는 남원 출신의 명창들에게 득음을 깨우쳐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송흥록-송만갑-박초월로 이어지는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거쳐 갔다. 구룡계곡길이 ‘소리길’로 불리는 이유다.  
 

구룡계곡에서 정령치를 넘는다. 한국 선문의 발상지인 실상사(實相寺)로 가는 길. 절길로 접어들어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니 두 기의 장승이 반갑게 맞아준다. 실상사는 평지에 세워졌다. 일주문도 없고 절에는 으레 있을 법한 담장도 없다. 얼핏 보면 우리 살던 고향집같이 수더분하다. 천왕문을 지나면 탑들이 가지런한 사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담한 목조 건물 몇 개와 해우소도 보인다. 실상사가 여느 절과 다른 건 실천 불교 운동의 중심이라는 점이다. 공동체 활동과 환경살림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보기 드문 사찰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곳들

 

남원은 춘향만큼이나 흥부 출생지로도 유명하다. 고증에 따르면 흥부가 태어난 곳은 동면 성산리이고, 봉화산 자락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아영면 성리의 상성마을은 발복지(發福地,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살았던 곳)로 돼 있다. 이 두 마을은 10km쯤 떨어져 있다. 아무튼 흥부도 춘향처럼 허구의 인물이긴 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노라면 사실처럼 마음에 와 닿는다. 동면 성산리는 인월에서 함양으로 넘어가는 팔령재 아랫마을로, 들머리에 흥부마을 출생지라고 쓰인 표지석이 서 있다. 7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은 소박하고 조용하다. 
 

마을 주변에는 흥부(전)와 관련된 지명이 여럿 남아 있는데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먹을 것이 없자 굶어죽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던 산제바위, 놀부에게 곡식을 얻으러 갔다가 매만 맞고 돌아오는 길에 신세 한탄을 하면서 짚신을 털었다는 신털바위 등이 그것이다. 또한 흥부 발복지인 아영면 성리마을에도 ‘흰죽배미’ ‘화초장바위’ ‘장자골’ ‘노디막거리’ ‘허기재’ ‘임자골’ 따위의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들이 남아 있다. 입구에 서 있는 마주 앉아 박을 타고 있는 흥부 부부상은 이 마을의 상징물이다.    
 

작가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한 혼불문학관(063-620-5744)도 남원 여행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문학관이 들어선 노봉마을(소설에서는 매안마을로 나온다)은 혼불의 배경지가 된 마을로 수백 년을 이어온 매안이씨 종가를 비롯해 노봉서원, 청호저수지, 새암바위, 호성암, 달맞이동산, 서도역, 근심바위, 늦바위고개, 당골네집, 홍송 숲 등 소설 속 무대가 그대로 살아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초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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