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은 마산초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식 전날은 내내 바빴다. 졸업식 때문에 바빴던 것은 아니었고 업무에 서툴렀던 나머지 학기말 정산을 말일까지도 처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학실 근처를 조금 기웃거리다 금세 나가버렸다.
어느새 빠른 겨울해가 져버리고 어학실에는 본인과 모니터 화면의 불빛만 남았다. 어둠만이 모든 공간을 덮었을 때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이들과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냈고 내 주변에는 하루가 끝난 적막만이 자리했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나는 여러 장면을 보지 못할 것이다. 분홍색 파카를 입고 아장아장 교실로 오르는 작은 여자아이의 손을 잡는 의젓한 오빠의 뒷모습, 유치원 아이들이 무사히 등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6학년 아이들, 까르르 웃으며 자기들끼리 뛰어다니던 몸만 청소년인 여자 아이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어학실 문을 기웃거리며 놀아달라고 하던 남자아이. 이 모든 장면들은 이제 내가 볼 수 없는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장면들 속에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과 그 시간마다 진하게 배어
있는 사무친 감정들이 있었다. 그 사무친 감정들 속에 내가 있었다.
학기말 성적처리가 끝나고 나는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파닉스 영어 수업을 했다. 곧 중학교에 들어가지만 쓰인 영어를 못 읽는 녀석들이 있었다. 수행평가의 기준안에 따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영어를 자유롭게 소리내어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두고, 나는 그대로 중학교로 올려 보내고 싶지 않았다.
쓰인 단어와 문장들을 읽을 정도만 되어도 언제든 다시 시작하고 노력해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나는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바쁘니까, 당연히 중학생이 이 정도쯤
하지 않을까 싶은 것들을 못하면 도와주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그런 것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극복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어쩌면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영어를 제대로 읽지 못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던 내가 선생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산초는 작지만 단단한 공동체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더 큰 책임감과 역할을 부여받았고 학교는 모두가 다 형제였다. 나보다 작은 것들을 보살폈고 큰 일은 선생님들과 다 함께
헤쳐 나갔으며, 자연으로부터 배웠고 전통으로부터 배웠다. 아이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행복했기
에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면 농땡이나 피우며 공부하지 않았지만 과잉 경쟁과 사교육으로 인성이 파괴되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선생님들의 프로젝트 수업은 아이들이 교과의 틀을 넘어 교과에 담긴 내용들을 더 자세히, 다양한 과목과의 융·복합을 거쳐 배우게 했다. 현장체험학습도 많이 다녔다. 그리고 그 옆엔 항상 공부하라 잔소리 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한 명 한 명과 모두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모두 각자의 교실로 흩어질 것이다. 모두가 형제였던 마산초는 추억으로 자리를 옮기고, 낯선 교복을 입고 각자 새로운 친구들 사이에서 군중 속의 하나가 되어 자신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우리가 함께 쌓아온 행복이 아이들을 온실 속에 가두어 작은 좌절 속에 스러지게 하기보다, 아이들이 세상의 모서리 여기저기에 상처 입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강인함을 만들어주었기를 바란다. 왜냐면, 너희들은 넘어져도 울지 않고 금세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뛰어 노는 마산초 어린이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졸업식을 맞는다. 우리는 또 이별을 맞이하고, 그 이별이 좋은 이별이기를 바라는 선생님은 결국 이별을 준비하는 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