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실패의 2019 설 특선 영화들

2019.02.11 08:58:17

1. 골든 슬럼버

 

이번 설(2월 5일)에도 연휴 기간 많은 영화들이 전파를 탔다. ‘7번방의 선물’ㆍ‘명량’ㆍ‘겨울왕국’(이상 EBS)ㆍ‘신과 함께: 죄와 벌’(SBS)처럼 천만 넘는 관객의 대박영화가 있는가 하면 흥행 실패작들도 있다. 게중엔 ‘골든 슬럼버’(tvN)ㆍ‘궁합’(SBS) 같은 1년 전 실패작을 비롯 ‘허스토리’(KBS)ㆍ‘명당’(JTBC) 등 극장 개봉 6~7개월밖에 안된 영화들도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그만큼 선택폭이 커져 즐거운 비명이라도 질러야 할 설명절 특선 영화인 셈이다. 케이블의 전문채널 빼고 지상파 종편방송을 통틀어 SBS가 가장 많은 한국영화를 편성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극장을 가지 않고 집에서 거의 공짜로 영화 보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할만하다. 따로 돈을 들이지 않아도 생기는 쏠쏠한 재미라 할까.

 

‘골든 슬럼버’(감독 노동석)는 2018 설(2월 16일) 특선으로 같은 해 2월 14일 개봉했다. tvN이 개봉 1년도 안된 2월 1일 밤 방송했는데, 사실상 2019 설 연휴 첫 TV 특선영화다. OCN이 2일 낮 방송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두 방송사가 경쟁적으로 연달아 내보낼 정도의 영화인지는 의문이다. 손익분기점 절반 정도인 138만 남짓한 관객에 그친 흥행 실패 영화여서다.

 

‘골든 슬럼버’는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2010년 동명의 일본 영화가 국내 개봉하기도 했다. 강동원이 원작을 읽고 영화화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 큰 반향이 없었는데도 왜 다시 한국영화로 만들었는지 의아스럽다. 하긴 일본의 만화나 소설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꽤 있다.

 

그중 크게 성공한 영화는 ‘미녀는 괴로워’(2006)ㆍ‘럭키’(2016) 정도다. ‘올드보이’(2003)부터 ‘화차’(2012)ㆍ‘리틀 포레스트’ㆍ‘지금 만나러 갑니다’(이상 2018) 등도 일본 작품을 원작으로 성공한 영화지만, 좀 생각해볼 점이 있지 싶다. 관객들이야 영화 보기에서 국적을 가리지 않지만, 독도라든가 위안부 문제와 축구의 한일전이 떠올라서다.

 

특히 ‘파랑주의보’(2005)ㆍ‘백야행’(2009)ㆍ‘너는 펫’(2011)ㆍ‘용의자X’ㆍ‘하울링’ㆍ‘남쪽으로 튀어’(이상 2012) 등 흥행 실패 영화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이제 ‘골든 슬럼버’가 ‘인랑’(2018)과 함께 흥행 실패작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강동원ㆍ한효주가 출연해 눈길을 끈다.

 

‘골든 슬럼버’는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노래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일보(2018.2.8.)에 따르면 비틀스의 노래가 한국영화에 합법적으로 사용되기는 처음이다. 제작사는 ‘골든 슬럼버’ 음악 사용료로 2억 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비틀스의 노래는 사용 허가가 잘 나지 않을 뿐더러 음악 사용료가 높기로 유명하다”는데, 영화가 그 값어치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골든 슬럼버’는 택배기사 김건우(강동원)가 어느날 대통령선거 유력 후보 암살범이 되어 쫓기는 이야기다. 108분이란 러닝타임에 일종의 스릴러 전개인데, 전반적으로 좀 뜨악한 느낌을 준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거나 녹아들지 못한 낯섬이라 할까. 소시민의 대선후보 암살범 누명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이 고작 우정이라니, 좀 아니지 싶다.

 

“아이, 저 인간 중독성 있네”라는 민씨(김의성) 말처럼 착한 인간성의 김건우 캐릭터 구현이 나름 의미있어 보이긴 한다. “손해 보면서 살면 좀 어때요. 착하게 사는게 죄인가요?”라는 건우 반문을 통한 나쁜 세상 까발리기도 그렇다. 문제는 그것들이 좀체로 확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138만 넘는 관객이 과분할 정도의 ‘골든 슬럼버’라 할까.

 

2. 궁합

 

‘궁합’(감독 홍창표)은 2018년 2월 28일 개봉했다. 설이 2월 16일이었으니 특선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설 대목 특수(特需)와 거리가 멀었다. 134만 명 남짓한 관객에 그치고 말았으니까. 순제작비 63억 원에 손익분기점이 230만 명쯤이니 흥행 실패작이다. 이를테면 SBS가 흥행 실패작 ‘궁합’을 개봉 1년도 안돼 2019 설 특선 영화로 방송한 셈이다.

 

‘궁합’은 ‘관상’(2013)ㆍ‘명당’(2018)과 함께 이른바 역학 3부작중 2번째 영화다. ‘관상’이 913만 5806명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트릴 때만 해도 후속작 ‘궁합’ㆍ‘명당’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기대가 컸다. 그런데 막상 두 영화가 다 개봉한 지금 그런 것들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명당’ 역시 흥행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남게 되어서다.

 

우선 생각해볼 것이 타이밍이다. ‘궁합’은 ‘관상’ 이후 관객과 만나는데 무려 5년이 걸렸다. ‘관상’의 흥행 열기를 잇겠다는 의도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의아한 대목이다. 거꾸로 ‘명당’은 ‘궁합’이 대박을 친 것도 아닌데, 불과 7개월 만인 2018년 9월 19일 개봉했다. 이런 개봉 역시 무슨 일인지 선뜻 이해 안 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명당’은 100억 원 넘는 돈을 들인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흥행 실패의 부담을 더 크고 깊게 떠안는 역학 3부작 종결편이 되고 말았다. 역학 3부작 제작사 주피터필름 대표가 흥행 순수익의 50%를 공익재단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협약한 것이 밝혀져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그래서인지 ‘궁합’ㆍ‘명당’ 실패가 더 씁쓰름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궁합’은 2015년 9월 촬영을 시작해 12월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후속작업을 감안하더라도 2018년 2월말은 완전 지각 개봉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신문(2018.2.27.)에 따르면 주연배우 이승기(서도윤 역)의 제대를 기다리느라 개봉이 늦어졌다. 일단 ‘관상’의 흥행 열기를 이어가지 못한 지각 개봉이 패인(敗因)의 하나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궁합’은 조선 영조 29년 송화옹주(심은경)의 혼인을 둘러싼 이야기다. 역술에 능한 사헌부 감찰 서도윤과 송화옹주의 사랑이 이야기 축이다. 경빈(박선영)의 사주를 받아 송화옹주와 정략 결혼하려는 서도윤 동료 윤시경(연우진)의 음모와 야망이 또 다른 이야기 축이다. 역학시리즈답게 송화옹주 혼인은 지독한 가뭄 해소의 기우제 성격의 정책으로 실시된다.

 

일개 옹주(후궁이 낳은 딸. 중전이 낳은 딸은 공주다.) 혼인에 그런 음모가 있다는 설정이 우선 놀랍다. 원자의 쇠한 기를 살리기 위해 옹주와 상극인 사주의 부마를 얻으려 하는데 일조한 서도윤이 마침내 양심선언을 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어디서 어리석게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이냐” 질책하던 임금(김상경)이 귀양가던 서도윤을 사면하고 송화옹주와 만나게 한 것.

 

신랑감을 직접 보고자 하는 송화옹주의 궁밖 출입은 이해되지만,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가령 “그래도 움직여야 변하지 않겠습니까?”라든가 “어디론가 멀리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라 말하는 송화옹주가 그렇다. 무슨 당대 관습의 혁파라든가 시대적 저항의 캐릭터와 거리가 먼 송화옹주가 맥락없이 꺼내든 말이어서다.

 

서두 가뭄 해소를 위한 혼인에 맞춰 비가 흠씬 내리는 결말 등 전체적 구성은 그럴 듯하지만, 뭔가 좀 헐거워 보이는 것도 아쉽다. 관객도 모르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같은게 없다. ‘깨끄시(깨끗이)’를 “깨끄치 비우셨습니다”라는 어느 궁녀라든가 이개시(조복래)의 ‘관상깜’ 따위 잘못 발음한 대사들도 그렇다.

 

배우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당시 갓 20살 심은경은 ‘수상한 그녀’(2014)에서 70대 노인 연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865만 명의 관객으로 대박을 일군 일등공신이라 해도 될, 영화에 완전 녹아든 연기였다. 그런데 ‘궁합’에선 그 ‘수상한 그녀’와 좀 다른 포스를 보여준다. 좀 헐겁거나 꽉 조이는 한복을 입은 듯한 모습이라 할까.

 

사극 분장이나 연기가 잘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이 있는데, 심은경외 아이돌 출신 배우들도 그래 보인다. 강휘 역의 강민혁(시엔블루)과 서도윤 동생 가윤 역 최민호(샤이니)가 그들이다. 그나마 최민호의 경우 멀쩡하게 눈 뜬 장님 캐릭터다. 그들이 맡은 단역조차 오디션을 통해 뽑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좀 아니지 싶다. 연기돌 스타들을 너무 함부로 소비하지 않았나 해서다.

 

그 정도 배역과 연기로 아이돌 스타가 달고 다니는 소녀팬들을 얼마나 극장으로 유인했을지도 의문이다. 주ㆍ조연은 물론 단역까지의 출연이 연기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해 그들 아이돌 배우들은 출연하지 않음만 못했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어쨌든 왜 ‘궁합’이 실패한 영화가 되었는지 대략은 논의해본 셈이다.

 

3. 허스토리

 

KBS 1TV가 설날 밤에 방송한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2018년 6월 27일 개봉한 영화다. 그러니까 극장 개봉 7개월밖에 안된 최신작을 KBS가 2019 설 특선영화로 방송한 것이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ㆍ‘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ㆍ‘주토피아’ㆍ‘덕구’ㆍ‘비정규직 특수요원’ 등 KBS가 설 연휴 방송한 어떤 영화보다 의미있어 보이는 ‘허스토리’다.

 

다 아다시피 설 연휴 직전 이른바 위안부 피해자로 TV나 신문 뉴스에도 자주 나오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떴다. 이로써 정부가 위안부 피해 생존자 등록을 받기 시작한 1993년 이후 명단에 오른 240명중 이제 23명 할머니만 남게 되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없는데도 일본의 아베정권은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요지부동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소재 내지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계속 나오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서라고 해야 맞다. ‘소리굽쇠’(2014)ㆍ‘귀향’(2016)ㆍ‘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7)ㆍ‘아이 캔 스피크’(2017)ㆍ‘허스토리’(2018) 등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다. KBS가 2015년 3ㆍ1절 특집으로 방송한 드라마 ‘눈길’도 있다.

 

그중 300만 넘는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대박난 영화는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다. ‘소리굽쇠’는 아예 그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대중의 관심 밖이었다.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도 전편 ‘귀향’ 흥행이 무색할 정도로 독립영화 수준의 관객에 머물렀다. ‘허스토리’의 경우 극장 관객은 33만 명 남짓에 그쳤다. 25억 원의 비교적 적은 제작비라지만, 흥행 실패다.

 

다행은 한국일보(2018.7.19.)가 전한 팬덤 소식이다. 기사에 따르면 “‘허스토리’ 상영관을 찾아 헤매던 관객들이 팬덤으로 결집해” 극장 대관 상영회 등 관람 열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KBS의 ‘허스토리’ 설 특선영화 방송이 의미있는 일로 다가오는 이유다. 방송시간이 겹친 tvN의 ‘탐정: 리턴즈’를 포기하고 ‘허스토리’를 애써 본 이유이기도 하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에 걸쳐 진행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관부재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대한여행사 문정숙(김희애) 대표가 나서길 주저하던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설득해 재판에 나선다. 실제론 10명이지만 영화는 배정길(김해숙)ㆍ박순녀(예수정)ㆍ서귀순(문숙)ㆍ이옥주(이용녀)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23번이나 오간 재판 결과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각 300만 원의 배상금 지불 판결이 그것이다.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해당되지 않고, 공식 사과도 없는 판결이다. 그래서 일부 승소 판결인데, 지금까지 나몰라라 하는 일본의 태도에 비춰볼 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은 “젊어서는 원해서 몸 팔아놓고… 박정희때 한번 뜯어갔으면 됐지” 따위 일본의 인식이다. 양심적 일본인들도 많이 있지만, 현재 아베정권의 기본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그렇다. “해방된지가 언제인데, 이제와서” 운운하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폄하를 서슴지 않는 한국인 택시기사로 대변되는 국내 여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화 전체적으로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처럼 뭔가 쿵하며 와닿진 않는다. 비극적 내용과 딴판으로 너무 밋밋하거나 건조한 느낌이라 할까. 배우들의 피해 할머니들 고통에 감정이입한 열연과 상관없이 좀 재미있게 영화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연히 여기서 ‘재미있게’는 무슨 코미디를 통한 박장대소 따위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관객들이 자신도 모르게 영화에 몰입하게 되고 어느새 그 고통과 동화되지 않는 것과 별도로 아쉬움이 또 있다. 먼저 유기성이 결여된 장면 전환 등매끄럽지 못한 편집이다. 별도 자막없이 구사되는 부산 사투리로 인한 알아듣기 힘든 대사들도 그렇다. 숫제 남의 일로 치부해대던 정숙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편에 서는 계기 역시 박진감이 미흡해 보여 아쉽다.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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