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다시 새 학기가 되었다. 첫 학기를 맞고 모든 걸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지둥 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두 번째 해를 맞이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마치 거짓말 같다. 학교 선생님은 한 분도 바뀌지 않았지만 교장 선생님이 바뀌어서 그런지, 학교도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PC를 켜고 작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던 교수 학습 자료들과 지난 평가 자료들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어떤 것들은 너무 말도 안 되어서, 어떤 것들은 이렇게 별 것 아닌 것들을 하면서 왜 그 때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서툴게 씨름했을까 하면서 부끄러움과 추억이 한 데 뒤섞여 복잡한 감정을 자아낸다.
교과서는 그저 교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작년 한 해는 새파란 신규교사였던 나의 교육 실험에 온통 쓰였다. 영어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팝송을 부르고, 웹툰을 보고, 영화를 보며 대사를 따라하게 했다. 음악에선 어울림 한마당 공연을 준비하며 교과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능을 함께 가르쳤고 그 과정에서 서로 끌어안고 울고 웃으며 성장했다. 도덕은 교과서를 아예 통째로 버리고 모든 단원의 주제와 핵심가치만을 추출해서 토론으로 재구성했다. 놀고먹지만은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러나 장교로 임관해 부대에서 군사적인 공부만 하다가 중간발령으로 학교에 온 후, 좌충우돌 아이들과 어울리고 학교 일정에 치이는 동안 교육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처럼 차분하게 교육학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교과 교육과정에 대해 진득하게 공부를 한 적은 없었다. 이제 교사가 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교사용 지도서를 제대로 정독하지 않고 교육과정도 제대로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재구성이라는 명목으로 혁신학교 과업에 맞춰 달려가느라 정신없이 지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산초의 아이들은 더 줄었다. 어쩌면 이제 진짜 복식학급으로 변하거나 아니면 학교 자체가 아이들이 줄어들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줄어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학교는 대한민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학교이고,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아직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이 학교를 지키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밝고 착하고 의젓한 아이들의 성격은 대부분 이 훌륭한 주민들이 길러낸 것이다.
아이들은 정말 길가에 뿌려놓은 풀처럼 잘 자란다. 미처 생각지 못하고 충분히 물과 영양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음에도 자신의 토양에 뿌리를 박고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어느새 나만큼 커져버린 아이들과, 아가 같이 작고 올망졸망했던 아이들이 더 커지고 의젓해진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자연의 신비 같은 것을 느낀다.
이제 다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이 곳에 온 임무였고,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이며, 10년 전 내가 교육대학교에 발을 들인 이유였을 것이다. 어느새 나도 나무처럼 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