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학폭법, 필요한 것은 처벌보다 교육

2019.06.07 10:00:00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 교육의 중심에 교사가 있지만 교권은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교사 또한 전문가로서의 위상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인기 직종 1위라는 부동의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정작 교사들은 교단을 떠나려 한다. 교육현장의 분위기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 탓이다.

 

실제로 교권 추락으로 더 이상 교사로서의 자부심이나 긍지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학교폭력이나 안전사고 등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교사에게 전가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10년 학생인권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교권이 약화된 점도 한몫하고 있다.

 

급기야 정부와 정치권이 교권을 정책의 주요 아젠다로 삼고 교원지위법과 아동복지법, 학교폭력예방법 등 일명 교권 3법 개정에 착수, 교원지위법과 아동복지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학교장종결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학교폭력예방법도 국회 교육위원회 의결을 거친 상태다. 한국교총의 피나는 노력이 견인차가 됐음은 물론이다.

 

교권 3법 완성을 앞둔 지금, 교권침해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과 함께 교권보호의 안전하고 튼튼한 방어벽은 일단 설치된 셈이다. 이번 호에서는 교권 3법이 지닌 의미와 내용을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살펴본다. 아울러 이 법들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또 앞으로 교육현장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진단해 본다.

 

지난 3월 26일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 개정안(교육위원회 대안)이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비교적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서는 기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자치위’)에 회부하지 않고 전담기구 확인을 거쳐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존 학폭위에서 담당해 왔던 심의·선도 기능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교육지원청 소속, 이하 ‘학폭심의위’)에 이관하여 학교의 행정적·준사법적 부담 및 이로 인한 학부모와의 갈등·민원을 줄이고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일선 학교가 전문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마치 사법기관처럼 학생들의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하고 검사·판사에 준하는 심판을 의결하여 많은 학부모의 민원과 공격 대상이 돼 왔던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반영한 것이라 여겨진다.

 

학폭법, 대구 중학생 자살 이후 피해자 중심으로 개정

학폭법이 현재의 체제를 갖추고 일선학교에서 시행된 것은 2012년 3월부터였다. 2011년 말 대구 중학생 권모 군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는 일종의 ‘학교폭력 신드롬’에 빠져들었다. 일부 학교나 교원들이 어쩌다가 학교폭력 사안을 잘못 처리하여 TV 전파라도 타게 되면 국민들은 마치 자기 자녀가 폭력을 당한 것처럼 혀를 찼고, 또다시 권모 군의 안타까운 사연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목소리와 여론의 향배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집중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피해상황이 집중 부각됐다. 그리하여 현재의 학폭법과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 기재 정책이 여론의 힘을 받으면서 지난 7년여 세월을 끌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사소한 욕설이나 장난 섞인 투닥거림, 청소년 시기에 누구나가 저지를 법한 한 두 번의 주먹다짐 등 경미한 학교폭력마저 학폭자치위에서 학교폭력으로 단죄받고 이를 생기부에 기재하게 되면 ‘폭력성이 높은 아이’라는 낙인과 상처를 안게 되고, 이것은 상급학교 진학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매우 폭력적인 성향의 학생이나 남을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못된 인성의 학생을 선도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법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도 똑같은 처벌 절차를 밟도록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려하는 일부 학부모는 자기 자녀가 가해학생으로 의심받기 시작하면 아이가 학교폭력을 저질렀든 아니든, 혹은 심하든 가볍든 구별하지 않고 생기부에 기재되지 않도록 사생결단(?) 달려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재 일선학교 교장·생활부장·담임교사 등은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학교폭력과 연관되어 있다. 이로 인한 행정력 낭비·소모적인 논쟁·불필요한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학폭법은 전 국민이 ‘화가 난’ 상태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2012년 이후 지금까지 1년에 두 차례씩 전수조사 형태로 계속되어 온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이 법이 우리 사회에 엄중하게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2012년의 피해 응답률 12.3%에서 2018년은 1.3%로 엄청난 감소율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학교폭력 내용도 폭력·상해·집단폭행·금품갈취 등의 거칠고 난폭한 사안보다 언어폭력·사이버폭력 등 비교적 가벼운 폭력으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폭력의 정도에 따라 가치의 경중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심각한 수준의 폭력이 줄어든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학교폭력 발생 건수와 강력 사안이 모두 줄어들어 학교폭력의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크게 경감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교사는 학교폭력 어벤저스가 아니다

학교의 행정력 낭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를 비롯한 학교의 구성원들은 사안조사 방법이나 절차에 대해 교육받은 바가 거의 전무하다. 때문에 거짓말과 모르쇠가 난무하는 오늘날의 학교 현장에서 사안 발생에 따른 정확한 사실 파악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법을 잘 모르며, 그동안 법 없이도 아이들을 잘 교육 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교사들에게 학폭법은 형사 역할, 검사 역할, 판사 역할, 변호사 역할, 심지어는 교정직의 역할까지 강요하고 있다.

 

교육학을 배운 교육전문가들에게 경찰이나 법률가가 해야 할 일을, 그것도 여러 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낼 것을 우격다짐하고 있다. 아이들과 교육을 위해 써야 할 학교 행정력이 학폭 사안 처리로, 혹은 소송에 휘말려 이에 대응하는데 다 써버리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동네 주민들끼리 주차 문제로 주먹다짐이 벌어져 양측 다 파출소에 불려갔을 때, 일선 경찰관들은, 백이면 백, “이웃끼리 이런 일 가지고 싸우시면 어떻게 합니까. 화해하셔야죠.”라고 하면서 화해를 종용한다. 기존 학폭법에 의하면 담임교사가 이와 같은 발언을 하면 학교폭력 은폐·축소에 해당된다. 이 경우 교육당국은 금품수수·성폭력 등 4대 비위와 같은 수준으로 징계하겠다고 교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또 일부 피해학생 측은 학교와 교사가 가해학생 편을 든다며 반발하고 나서면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EBS TV의 학교폭력 해결 프로그램을 보면 100% 학폭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폭력 사안을 발견·인지한 교사가 이를 학폭자치위에 회부하지 않고 담임교사 스스로 교육적으로 해결하여 이를 자랑스럽게(?)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다. 학폭법의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현장이 동네 파출소보다 훨씬 비교육적이라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세계 시민들에게도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소송 봇물, 변호사들 만 호황

아시다시피 학폭법은 검찰의 기소에 따른 사법부의 판결로 귀결되는 사법체계를 그대로 베껴 학교 내에 강제로 안착시킨 모양새다. 이렇게 기존 학폭법이 시행되면서 학교폭력과 관련된 교원들의 모든 교육 행위들은 관련 법규의 엄정한 테두리 내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규제당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른 여타의 모든 행위는 ‘교육’을 그 밑바탕으로 두고 ‘교육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반해, 유독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히 ‘법률’에 근거하여 ‘법적’으로만 처리되고 있다. 교사들은 그 낯섦에 당황하고 학생들도 어안이 벙벙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하여 학교폭력 사안 처리는 당연히 어설퍼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간파한 변호사들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많은 변호사는 학폭 관련 학교 대상 소송에서 80% 이상의 승률을 호언장담하며 의뢰인들을 끌어모으고 새로운 블루오션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면 학교와 교사는 학폭 관련 소송 때문에 본연의 교육 업무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학폭 관련 6개 법률안이 자동 폐기되었고,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11건의 개정안이 제출만 되고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교육위원회 통과는 무척 고무적이다. 이로써 학폭법을 개정하는 노정은 5부 능선을 넘은 듯 보인다. 한국교총·교사들·양심적인 시민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할 따름이다. 남아 있는 법사위에서의 논쟁도 그리 심각할 것 같지는 않다. 한두 번의 회의만으로도 해결책이 찾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학교는 교육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교사는 형사놀이·검사놀이·판사놀이를 집어치우고 학생들과 즐겁게 뛰어놀아야 한다. 학생들도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기고 인권의 소중함을 인식하며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체득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는 소송으로 서로의 진을 빼면서 소모적인 전쟁을 치러야 할 상대가 절대 아니다.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들을 올바로 이끌어야 할 최고의 동반자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우리 모두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하루빨리 국회 운영이 정상 궤도를 찾아 우리 교육이 제자리를 찾는 데 큰 힘이 되어 주기를 손 모아 바랄 뿐이다.

고광감 서울경신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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