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숭배 사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온갖 행위는 물질추구라는 일차적 목적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여기엔 경쟁적으로 부를 획득하려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고의 확산이 작동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떠한가? 세상의 인심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예컨대 같은 건물의 입주자끼리도, 같은 공간의 직장동료도, 한 조직의 구성원도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챙기는 삶으로 국한되어 살아간다. 이런 극단적 사고는 모든 시작과 끝이 경쟁을 통한 성취, 물질적 부의 추구와 그것이 주는 안락함에 정주하려는 삶의 철학으로 정착된 증거일까? 사람 사는 세상은 사람 중심 생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역사상 철학은 언제나 '인간'이 중요한 주제였다. 그 중에 서양 철학에서 특히 인간이 중심 문제로 부각된 것은 서양 근대철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칸트(1724~1804)의 철학에서다.
칸트철학에서는 왜 인간이 중심 주제인가? 이성론 철학과 근대 자연과학의 주제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영원한 본질을 지닌 실체들'이다. 물론 이들 학문이 모두 인간에 대해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핵심주제는 아니었다. 칸트는 전통철학의 영향에서 점점 벗어나 자신의 철학 이론을 확립해 가면서, 인간 존재를 중심으로 한 철학을 펼쳤다.
그렇다고 칸트철학이 인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해서 유아론적 독단론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그의 철학은 인간의 겸허한 자세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인간을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으로써 대우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우할 것을 주장했다.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인간중심 사상의 전개가 파도를 타듯이 넘나들며 반복되고 있다. 신과 자연 중심 세계관을 벗어나 인간중심 세계관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또 다시 인간이 아닌 물질숭배에 몰입하는 인간의 사상을 주목하게 된다. 여기엔 다시 사람 중심 사회를 지향해야만 하는 근저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은 신과 물질과 자연 사이를 존재하는 사상의 주인공으로 존재해 왔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를 거치면서 인공지능(AI)시대를 열었다. 이는 인간의 보조기능으로 작동하는 로봇이나 컴퓨터에 의한 일종의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역시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 사람 나고 로봇 났지 로봇 나고 사람이 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변할 수 없는 주인공이다. 더 나아가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탈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교육이 절대 필요한 이유이다.
요즘은 ‘꽃보다 사람’이라는 말이 울림을 주는 세상이다. ‘꽃보다 할배’라는 방송사의 프로그램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을 모두가 꿈꾼다. ‘사람이 먼저다’는 어느 시대의 철학이었지만 이를 공식화하여 한 국가의 정책기저로 삼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사람이 먼저임을 인식하고 모든 것을 ‘사람우선’으로 추진하는 사회다. 여기엔 로봇보다 그리고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사랑만이 유일한 자격을 부여한다.
사랑은 어려서부터 경쟁을 지양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기본이다. 가장 값진 가치관은 타인에 대한 봉사이다. 타인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다. 그러기위해 우리는 공감하고 봉사하는 교육으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은 인류의 생존을 이끌었던 사람 중심 사회였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