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하늘과 책과 사람의 이야기

2019.11.21 09:45:58

책그림책

나는 물의 시인이다. 나는 젊은 시절 북해 바다의 도도한 슬픔을 노래했으며, 여름날 조용히 흐르는 실개천의 마력을 노래했다. 나는 내 고향의 꿈처럼 고요한 호수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남쪽 하늘 아래서 조약돌들의 나직하게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두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이제 나는 내 집을 팔았고, 나의 유년 시절을 뒤로 하고 떠났으며, 나의 책들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수집했던 돌들과 조개 껍질들을 바다가 다시 가져가도록 해변에다 뿌렸다. 그릇은 깨어졌다. 종이의 목마름도 고갈되었다. 이제 나는 나의 마지막 시를 쓴다. 내 앞은 흐릿하고 부드러우며, 내 주위에는 한때 나였던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다. 내 등 쪽에서는 또 다른 바다가 자연으로부터 걸어나오며, 솟아 오른다.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이 등장하는 『책그림책』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무척 행복하게 하는 책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를 연상시키는 그의 아름답고 진지하며 독특하고 철학적인 그림이 책의 중심에 있다. 보통 책이라고 하면 그림은 글을 장식하는 부수적인 요소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짙어가는 가을 즈음에 읽은 이 책은 다분히 명상적인 느낌이 강하였다.

 

그의 그림에서 배경을 이루는 것은 넓게 펼치진 하늘이다. 책이라는 메시지는 아름답게 절제되었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다.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46명의 쟁쟁한 작가들이 크빈트의 그림에 대한 짤막한 감상문, 수필, 현대인이 삶에 대한 진단 등의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다소 난해하기는 하지만 그림엽서 한 장을 받은 듯 즐겁다. 가을이 깊어져 있다. 그림이 있는 전시회를 다녀오는 기분으로 읽기에 적당한 책 한 권을 추천한다.

 

강마을에 살얼음이 얼어 햇빛에 반짝인다. 그 사이로 서리맞은 나뭇잎은 더 붉다. 가을은 더 깊어져서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 겨울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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