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은 유난히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단지 연휴가 짧은 이유에서일까? 언젠가부터 어른들은 물론이고 어린이들마저 설빔 같은 한복 차림으로 길을 나서는 풍경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의 것’임에도 쏟아지는 새로운 것들에 점차 밀려나는 우리의 전통들. 다행히 공연계에서는 우리의 전통예술을 현대무용과 랩, 힙합까지 요즘 문화와 접목해 새롭게 발견하고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이번 달 소개할 두 편의 뮤지컬 <적벽>과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바로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판소리와 현대무용의 만남
뮤지컬 <적벽>
한나라 말, 위·한·오 삼국으로 나눠지고 서로 황금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난무한 상황. 유비와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로 형제의 의를 맺고 조조에 대항할 계략을 찾기 위해 제갈공명을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그를 모셔온다. 오나라의 주유 또한 조조를 멸하게 하기 위해 화공(火攻) 작전을 궁리 중이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전전긍긍하는데, 때마침 그를 찾아온 공명이 동남풍을 불어오게 만든다.
이로써 주유는 조조군에 맹공격을 퍼붓고, 조조는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적벽에서 크게 패한다. 이는 <삼국지>에서도 박진감 넘치는 전쟁신과 지략이 어우러져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이자, 우리나라에서는 판소리로도 만들어져 사랑받은 적벽대전 대목이다. 그러나 판소리 ‘적벽가’는 장중한 대목이 많아 표현하기에 어려운 소리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 까다로운 판소리 한마당을 새롭게 각색하고 현대무용을 더해 역동적이고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이 뮤지컬 <적벽>이다.
2017년 정동극장이 처음 선보인 뮤지컬 <적벽>은 등장과 동시에 국악과 전통공연 장르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흔히 ‘판소리’하면 떠올리는 정적인 분위기와 1명의 소리꾼, 텅 빈 무대 등과는 정반대의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판소리 합창’이라는 새로운 시도. 극의 전개를 창으로 해설하는 역할인 도창(導唱)과 21명의 배우들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판소리 합창에는 국악이나 전통음악에 거리감을 느꼈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웅장함이 있다.
볼거리 또한 남다르다. 전쟁신을 더욱 실감나고 긴장감을 더하게 만드는 요소는 부채. 전 출연진이 손에 쥐고 있는 부채를 접었다 펴면서, 무대 위에서 하나의 언어로서 활용한다. 흰색과 붉은색의 부채들은 전장 속 병사들의 창과 방패가 되고, 때로는 동남풍이 되었다가, 타오르는 불길로 표현되기도 하며 무대를 단숨에 삼국지의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이와 어우러지는 일사불란한 ‘칼군무’ 또한 놓치면 안 될 장면이다.
2020.2.14-4.5 | 정동극장 | 02-751-1500
시조와 랩의 만남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스웨그와 조선.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만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제목에 쏠리는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신선함을 가지고 있다. 우선 배경이 되는 곳부터 남다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 되는 ‘조선’은 우리가 아는 역사 속 조선과는 다르다. ‘시조(時調)’를 국가이념으로 하는 가상의 조선시대이기 때문.
이곳에 살고있는 백성들은 삶의 고됨과 역경을 시조를 짓고 노래하며 훌훌 털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역모로 인해 시조가 금지되면서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백성들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불평등한 세상을 향한 ‘디스’를 날릴 자유를 찾아 유쾌한 반란을 준비한다. 그 중심에 서는 것이 ‘비밀시조대 골빈당’ 청년들. 이들은 15년 만에 열린 조선시조자랑을 기회 삼아 탈 속에 정체를 감추고 조선에 다시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계획을 세운다.
작품의 음악과 가사에는 국악과 시조, 힙합과 랩의 요소가 재치 있게 뒤섞여있다. 안무에도 K-POP을 연상케 하는 세련된 군무와 더불어 우리 전통춤의 요소를 함께 녹여냈다. 2019년 6월 초연 당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뮤지컬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이유다. 작품의 주요 창작진인 극작가, 작곡가, 연출가, 안무가가 모두 이 작품을 통해 데뷔한 신인이라는 점 또한 작품에 신선한 시각을 담아내는 데 일조했다는 평이다. 폐막 6개월만에 앙코르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것 또한 이렇듯 기존 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들로 관객들을 매료시킨 덕분이다.
지난해 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앙상블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은 남다른 에너지를 자랑한다.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유명 배우가 아닌 신인들로 주역을 꾸린 것 또한 작품에 젊은 열정을 더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골빈당의 중심에서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유쾌한 리더 ‘단’ 역에 초연에 참여했던 세 명의 배우 이휘종, 양희준, 준이 무대에 오른다. 김은아 공연전문매거진 ‘시어터플러스’ 에디터
2020.2.14-2020.4.26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 1666-8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