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뉴스 속보가 끝나자 메신저 알림이 와요. 긴급이래요. 요즘은 무슨 회의만 하면 ‘긴급’이 붙어요. 긴급 부장회의, 긴급 동학년 회의. 긴급이 유행인가 봐요. 긴급을 붙여야 할 만큼 빠르게 많이 바뀌어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이 바뀌고 혼란스러우니까요.
학교는 아이들이 없으니까 주인이 바뀌었어요. 학생들이 주인이 되어야 할 학교는 공문이 주인이에요. 업무를 위한 계획도 일정이 틀어지면서 처음부터 다시. 학사일정도 기껏 정리하면 처음부터 다시. 뭐든지 다시 하는 분위기에요. 선생님들도 어수선하지만, 학부모님들도 어수선한 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학교로 문의 전화가 오기도 해요.
"왜 온라인 클래스도 승인을 안 해줘요?"
"아니, 뉴스에서 나왔는데, 왜 학교에서는 아무 얘기도 없어요?"
뉴스로만 접하는 정보로는 부족해요. 궁금한 마음에 학교에 문의하시는 학부모님들. 하지만 선생님들도 자세한 지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를 알려드리기는 역부족이에요. 이 부분에서 서로 오해가 생겨요. 학부모님들은 ‘선생님은 다 알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선생님들은 ‘나도 모르는데…’라는 마음을 가지시니까요. 서로 알고 있는 정보에 따라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마스크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학부모님들은 ‘학교에서 마스크도 안 나눠 주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교사들은 ‘마스크는 비축용인데, 나눠 주는 거 아닌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선생님과 학부모님들 사이에는 소통과 이해가 어려운 것처럼 보여요.
이 그림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오리? 아니면, 토끼? 잘 살펴보시면 보는 관점에 따라서 오리로 보이기도 하고, 토끼로 보이기도 해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그림 하나를 보고도 달리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언어 놀이를 한다고 했어요. 개인을 둘러싼 환경, 삶의 배경,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마치 외국어를 하는 것처럼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받아들인다고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공감해요. 우리가 타인을 100%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언어 놀이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학부모님들은 학부모님들의 언어로 말해요. 내 아이가 우선. 내 요구가 우선,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이지요. 교사는 교사의 언어로 말해요. 모두 똑같은 학생. 전체를 위한 조화.
요즘 같이 뭔가가 급격히 바뀌는 때에는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의 언어놀이가 더 심해져요. 선생님들은 시시때때로 바뀌는 상황에 정신이 없어요. 상황은 정신없고, 공문은 쏟아지고, 만들었던 교육과정은 다시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다시 처음부터 뭔가를 시작해야 해요. 교육과정도 업무도 학사일정도 뭐 하나 안정되게 정리되는 게 없어요.
학부모님들은 매일 뉴스에서는 뭐가 빵빵 터지는데, 학교에서는 말이 없어서 답답해요. 온라인 클래스를 하라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승인도 안 해주고, 사이트는 열리지도 않아요. ‘도대체 일을 하는 거야?’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교육부에서는 뉴스로 발표하는데 학교에서는 왜 아무 말도 없어?’하는 마음에 짜증이 날 수도 있어요.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안내 문자 하나 전화 한 통에 서로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지니까요. 학부모님들에게 변화하는 상황을 전화로 안내하니 많은 학부모님이 응원을 해주시더군요. "선생님도 힘드시겠어요. 힘내세요." "학교에서도 정신이 없으시겠어요." 응원의 한 마디에 기운이 나더군요. 교사와 학부모. 서로 입장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육을 위해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우리가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