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상담소] 문제 아이를 지도하다가 폭력을 당했습니다

2020.04.27 10:24:43

 

저는 교육경력이 17년 정도 된 교사입니다. 교직경력 15년이 넘어 학교를 옮기니 제법 경력이 많은 축에 속했고 선배 교사로서 아이들 생활지도에 있어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됐습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아이들을 지도하고 학부모와 상담을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듭니다. 지난해에는 문제 아이를 지도하다가 폭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등교시간에 한 여학생이 저를 보고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 다가가 보니 남학생이 여학생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학생은 평소 감정 기복이 심한 아이였고 그날도 많이 흥분한 상태라 떼어 놓자 남학생은 저에게 화를 내면서 운동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쥐고 제 팔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실내화 주머니로도 때렸습니다. 등교하던 아이들은 건물 앞에서 저희를 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교장 선생님이 남선생님을 불러 아이가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팔을 잡았지만 뿌리치고 와서 또 제 배를 때렸습니다. 저는 너무 아팠지만 그보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저학년 아이에게 맞는 모습을 보이고 남선생님이 제지하는 상황에서도 저에게 와서 배를 때렸다는 사실이요. 
 

1교시 수업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걱정할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교실로 올라왔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야 했습니다. 반 아이들도 봤기 때문에 제가 먼저 선생님 오늘 마음이 좀 힘드니까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 맞았잖아’라며 이야기했고 저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주기도 했습니다. 눈물이 났지만 참으며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2교시 후 남학생이 담임선생님과 와서 제게 사과했지만 솔직히 왜 때렸는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무섭습니다. 앞에서는 괜찮은 척 해야 하는 것이 더 힘듭니다. 솔직히 며칠 동안 하필 그 타이밍에 내가 왜 거기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점점 분노조절을 못하고 친구나 주변인에게 감정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더이상 담임을 못 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과연 언제까지 교직에 있을 수 있을까 불안감도 듭니다. (41세·여자)

 

 

원인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

 

교육 경력이 17년가량 되신 베테랑 선생님께서 교내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셨으니 얼마나 더 당혹스럽고 견디기가 힘드셨을지 충분히 가늠이 됩니다. ‘경력이 17년이나 됐는데…’, ‘이제와서 왜 이런 일이…’라는 생각들이 수십, 수백 번 떠오르면서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우셨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단에서 고민하고 계시는 선생님께 응원과 지지를 보내드립니다.
 

사회심리학의 귀인(attribution)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과 타인의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부귀인 혹은 외부귀인 한다고 합니다. 내부귀인(internal attribution)은 행동의 원인을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적인 특성으로 설명하려는 것이고, 외부귀인(external attribution)은 행동의 원인을 환경 혹은 상황으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가령, 출근길 버스에서 옆에 서 있던 승객이 자신의 발을 밟았다고 가정해봅시다. 발을 밟은 원인을 그 승객의 부주의한 특성으로 돌린다면 행동의 원인을 내부귀인 하는 것이 됩니다. 즉, 발을 밟은 행동의 원인을 승객의 부주의한 성향과 성격적인 특성으로 돌리는 것이지요. 이와 달리 버스의 급정거와 버스가 만원이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 행동의 원인을 환경과 상황에서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외부귀인이 됩니다.
 

다시 선생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생님이 폭력을 당한 원인이 과연 선생님의 성격과 성향 등 선생님의 어떠함 때문이었을까요? 즉, 선생님의 특성으로 학생에게 폭력을 당한 것이라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남학생은 분명 감정조절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때문에 교육보다는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 의한 집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선생님의 영역이 아닌 전문 치료사의 영역이며, 그마저도 매우 고된 과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건의 원인은 선생님의 어떠함이 아닌 남학생이 겪고 있는 심리, 정서적 문제로 귀인 하셔야 합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생각하면 당혹스럽고 가슴 아프지만, 그 일이 교사로서의 적절성에 대한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여학생을 도운 것으로 교사로서의 책임을 충분히 하신 점에 큰 힘을 실어 주십시오. 더 나아가 할 수 있다면, 그 남학생을 치료 전문가에게 인도하는 것만으로도 선생님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그날 여학생을 돕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누군가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교사

 

선생님이 겪은 사건들을 살펴보면 사건 속에 많은 대상이 존재합니다. 사건 당사자인 남학생과 여학생, 그리고 그 사건을 듣고 말했던 다른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생각 속에는 해당 남학생과 사건을 알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 그리고 동료 교사들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입니다. 추측해 보건데, 이들 모두 선생님 자신에 대해 ‘무능한(?) 교사’ 혹은 ‘권위 없는(?) 교사’라는 등 부정적인 시선으로 선생님을 볼 것이라 생각되는 대상들일 것입니다. 그런 염려와 불안 때문에 그 대상들만 떠올리면 스스로 위축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더이상 교직을 감당할 수 없겠다는 불안이 밀려와 가슴 답답한 나날들이 반복됐겠지요.

 

선생님은 지금 스스로 만들어낸 부정적인 시선들로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을 대면하고, 가상의 시선들을 스스로 부각시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내적 작용으로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편향된 시선에 집중하면 그 누구라도 불안과 수치심 등의 심리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편향된 시선에서 파생된 감정들은 응당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인 현실에 근거한 감정이 아닌 것입니다.
 

이제 시선을 옮겨 위급한 상황에서 선생님께 도움을 받은 여학생을 떠올려 보세요. 그 여학생은 과연 어떤 경험을 했을까요? 학생 입장에서 볼 때 선생님이 그 시간, 그 장소에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보호자가 돼주셨지요. 여학생에게는 둘도 없는 선생님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안도하고 편안함을 찾게 됐을 학생에게 시선을 옮긴다면 선생님이 과연 무능하고 권위가 실추된 교사일까요?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여학생이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거나 혹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은 교사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기꺼이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전 세계를 뒤흔든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히어로들도 찢기고 부서지면서 결국 선한 사람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선한 사람들이 되찾은 안위를 목격하며 다시 용기를 내지요. 흔한 히어로물의 마지막 장면은 곧 다가올 위기를 암시하고, 상하고 찢긴 히어로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또 닥칠 위기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자신의 도움으로 일상을 되찾은 선량한 시민들을 주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선생님도 그 여학생, 더 나아가 그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교사입니다. 모두의 히어로가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한 히어로가 돼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민녀 임상심리전문가·교권침해 교사상담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