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잎에 복사꽃, 협죽도 수난사

2020.07.06 11:00:00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

 

성석제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 열 번 이상 나오는 문장이다. 소설은 이 같은 문장들로 인해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결혼하자마자 6·25가 나서 학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70세 할머니 이야기다. 스무 살에 결혼했으니 50년째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학생 남편은 전쟁이 나자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병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시댁 식구와 함께 전쟁을 겪었다. 피난길에 시아버지는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여자는 ‘피가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행방불명이라는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렸다. 10년쯤 지났을 때 여자의 오빠가 찾아와 “개명천지에 이 무슨 썩어빠진 양반 놀음이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누이를 데려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50년을 기다린 여자가, 그의 칠순 잔치에 찾아온 친척들을 ‘가시리로 가는 길목’에서 배웅한 다음, 치자빛 저고리와 보랏빛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6·25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애잔하다. 소설은 ‘여자는 자기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라고 표현했다.

 

 

협죽도라는 꽃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가 사는 가시리는 남부지방 어느 곳이다. 협죽도는 노지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만 자라는 상록 관목이기 때문이다. ‘가시리’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실제로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에서 여자의 친정인 몽탄(전남 무안에 있는 면)에서 ‘백 리 길을 걸어’ 가시리에 도착했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에 실재하는 마을이 아닌, 상징적인 장소인 것 같다.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입은 새색시 같은 꽃, 협죽도

협죽도(夾竹桃)는 대나무잎 같이 생긴 잎, 복사꽃 같은 붉은 꽃을 가졌다고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잎이 버드나무잎 같다고 유도화(柳桃花)라고도 부른다. 꽃은 7~8월 한여름에 주로 붉은색으로 피고, 녹색 잎은 3개씩 돌려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이처럼 협죽도의 꽃과 잎은 신부들이 흔히 입는 한복, 녹의홍상(綠衣紅裳) 그대로다. 할머니는 잠시나마 남편과 함께한 신부 시절을 그리워하며 협죽도 그늘 아래 앉아 있는 것일까.

 

협죽도는 비교적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편이고 공해에도 매우 강하다. 꽃도 오래가기 때문에 제주도나 남부지방에서는 가로수로 쓸 만한 나무다. 베트남 등 아열대 지역이나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협죽도를 분에 기르는 경우를 보았다. 어쩌다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협죽도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협죽도가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난을 당했다. 이 나무에 청산가리의 6,000배에 달한다는 ‘라신’이라는 맹독 성분이 들어 있어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부산시는 2013년 부산시청 주변에 있는 200여 그루 등 협죽도 1,000여 그루를 제거했다. 제주도에서도 많이 베어내 눈에 띄게 줄었다. 협죽도의 맹독성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제주도에 수학여행 온 학생이 협죽도 가지를 꺾어 젓가락으로 썼다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다’는 내용이다. 2012년 KBS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협죽도를 독성이 강한 식물 1위로 소개하면서 협죽도는 제거해야 할 식물이라는 인식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협죽도에 유독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베어내야 할 정도로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협죽도 가지를 젓가락으로 사용하다 사망했다는 것도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신문 등을 검색해보았으나 원문을 찾을 수 없었다. 전부 그런 보도가 있더라는 전언이었다. 상당수 식물학자는 “독성 때문이라면 베어낼 나무가 한둘이 아니고, 일부러 먹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데 굳이 제거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치명적 맹독 성분 함유 …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

유독성 식물하면 떠오르는 것이 협죽도 다음으로 투구꽃이다. 꽃 모양이 로마 병정 투구를 닮은 투구꽃은 뿌리에 아코니틴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소량의 아코티닌은 진정 효과가 있지만, 과잉 섭취하면 입술 마비와 구토, 경련을 일으키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한 여성 무속인이 사망 보험금 28억 원을 타내려고 지인에게 협죽도와 투구꽃을 달인 물을 꾸준히 마시게 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무속인은 인터넷을 통해 협죽도와 투구꽃의 독성을 파악하고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투구꽃과 함께 진짜 사약의 원료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천남성(天南星)이다. 천남성에는 옥살산 칼슘 성분이 들어 있어서 얼굴과 기도, 복부에 부종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호흡장애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은 마치 뱀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독특하게 생긴 불염포 안에 있다. 생김새가 독특해서 한 번 보면 쉽게 잊기 어렵다. 가을에는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천남성은 상황에 따라 성(性)전환을 하는 식물이다. 꽃을 피울 무렵 뿌리에 남아있는 양분이 충분하면 암꽃, 그렇지 않으면 수꽃으로 피는 것이다.

 

 

팥꽃나무와 디기탈리스도 독성이 강한 식물이다. 팥꽃나무는 주로 남쪽과 서쪽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이른 봄 잎이 나기 전에 가지를 덮을 정도로 많은 꽃이 달린다. 팥과 비슷한 색깔의, 연한 보라색 꽃이 피는 데 향기도 좋다. 그러나 꽃에 호흡 억제와 경련을 일으키고 낙태를 유발하는 유독 성분이 들어 있다. 옛날에 임신한 여성들이 팥꽃나무꽃으로 낙태를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서 나라에서 이 나무를 베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슬픈 사연을 가진 나무이기도 하다.

 

여름에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종 디기탈리스는 꽃 모양이 손가락(라틴어로 digitus) 같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식물도 과다 복용하면 중추신경 마비로 사망할 수 있는 유독 식물이다.

 

이밖에 흰독말풀, 미치광이풀, 은방울꽃, 동의나물 등도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식물들이다. 그러나 이들 독성 식물들도 소량을 적절하게 쓰면 약용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인 것이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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