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준비하는 젊은이를 깎아내리지 말아야

2020.06.26 10:38:10

우리 사회가 만든 자화상, 기성세대의 성찰이 필요해

며느리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는 말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손녀가 오전에 어린이집에 간 틈에 공부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 손녀가 이제 세 살이 넘어 엄마만 찾던데,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어려운데 포기하지 않고 마냥 하면 어쩌나. 그때마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눈물을 흘리면, 그 모습도 가슴 아프게 다가올 듯하다.

 

며느리는 결혼 전에 여행잡지 기자로 일했다. 간혹 외국 출장을 가며, 글을 썼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직장을 나왔다.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직을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공무원의 길이었다.

 

공무원은 경쟁이 치열하다. 요즘 말로 피를 흘려야 하는 경쟁이기 때문에 레드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이 안정적이고, 노후에 도움이 된다지만, 경제적 대우는 많이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이렇게 공무원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기업은 공채를 줄이고, 중소기업은 근무 환경이 나쁘다. 회사에 들어가도 신분이 불안하고, 수직적인 문화로 스트레스받는 일이 허다하다. 좋은 일자리가 없는 가운데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험에 성공하지 못하면 단순 노무직으로 돌아다니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못 버리고 있다. 더욱 며느리처럼 결혼한 여성은 직장을 다니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공무원에 모든 것을 건다.

 

세계적 투자가는 우리나라 청년 대부분이 공무원을 꿈꾸는 사례에 대해 걱정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는다고 매력이 없다고 꾸짖었다. 국내 학자들도 노량진의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10대들이 스티브잡스를 꿈꾸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열변을 토한다.

 

청춘은 무조건 높은 이상을 꿈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멋지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는 사회에서는 이상론에 불가하다. 사회의 리더로 불리는 사람들이 국가의 미래와 연계해 젊은이들에게 거대한 길을 안내하는 것 같지만, 취업을 고민하는 청년에게는 공허하게 들린다. 그들이 책상에서 하는 말은 젊은이들에게 회의감을 확대하는 것 외에 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다.

 

타인의 목표가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좋다 나쁘다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은 편안함을 갈망하고, 요령을 부려서 사회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좁고 험난한 길에 뛰어든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땀을 흘리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멋진 인생에 몰입하고 있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꿈을 수놓는 일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다. 노력과 의지에 집중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 인생은 무엇을 이룩했냐는 것이 아니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달려가는 모습에 가치가 있다. 그 과정에서 보배로운 경험과 큰 힘을 얻었다면 그거야말로 성공의 문턱에 도달한 것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미래의 안정적인 직업보다 꿈을 펼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꿈이 이끄는 삶을 살아라. 참 멋진 조언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도 자주 하면, 지겹다. 이런 조언은 진로상담실에서 너무 들어서 이제 신선함도 없다.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은 당대 사회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꿈이 곧 직업 선택으로 되어 버렸다. 요즘 젊은이들이 꿈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 이데올로기가 변해야 한다. 공무원 시험 열풍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꼬집기 전에 꿈조차 갖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의 반성이 먼저다.

 

노량진 길목에서 컵밥을 먹어가며 고생하는 청춘들은 고소득을 바라고 혹은 크게 출세하려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공정한 경쟁의 페달을 밟고 있다. 무조건 그들의 발걸음을 가벼이 볼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조차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고민과 내면에 안고 있는 아픔의 크기를 봐줘야 한다. 지금 그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것은 시험에 대한 도전이다. 그 도전은 우리가 보기엔 그저 그렇지만, 그들에겐 절실함이 있다. 그 열정에 응원은 못하더라도 찬물을 끼얹지는 말아야 한다.

 

며느리가 막상 공무원의 길에 들어서고 나니 육아에 일에 힘에 부치기도 하나 보다. 자신의 삶을 오랫동안 탐색하고 결정을 한 것을 안다. 공무원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힘을 내고 있다. 직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권리이고, 아름다운 인생의 표현이다. 그 내면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에 며느리를 응원한다. 어려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룬 것처럼, 그 길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윤재열 수필가 tyoon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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