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2] 쉬운 한글, 어려운 한국어, 필요한 국어사전

2020.10.06 10:30:00

교육학을 공부하는 필자로서는 학교현장과 교육행정의 살아있는 소식들이 필요하여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 현장 교직원들의 지식교육과 인성지도에 대한 생생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교육현장의 힘든 상황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눈물겨운 온라인수업 추진 노력을 실감하고 있다. 2019년 11월 29일 발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와 뒤이은 12월 4일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보면서 우리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걱정했었는데, 온라인강의로 촉발된 도·농간 교육여건 격차, 부모의 학습지원 여부에 따른 학력격차 문제를 다룬 보도들을 대하면서 안타까움과 걱정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지적’이라는 말의 의미

얼마 전 경인지역의 어느 여고 교장선생님의 SNS 글을 통해 지식교육 위기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학교 선생님께서 안경을 바꾸어 쓴 한 학생에게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너 참 이지적인 아이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던 여학생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고, 옆에서 함께 들었던 다른 학생들도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얼마 후 선생님은 그 여학생으로부터 불만의 이유에 대해 듣고서야 여러 학생이 당황했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저를 너무 경솔하고 쉬운 아이로 보셔서 상처받았어요”라고 하더란다.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지만 심상치 않은 이야기라고 판단하신 교장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밝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생활기록부 종합란에 ‘이지적’이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처음엔 정확한 뜻을 몰라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고 했다. 국어사전에서 의미를 확인한 후 그는 이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게 되었고, 자기 정체성으로까지 발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요즘 학생들의 어휘력 저하가 큰 문제라고 다들 인식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제발 엉뚱한 데에 삽질하지 말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기초·기본지식 확보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국어사전에는 ‘이지(理智) : 이성과 지혜를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지식과 윤리에 따라 사물을 분별하고 깨닫는 능력’, ‘이지적 : 용모나 언행에서 이지가 풍기는. 또는 그런 것’으로 나와 있다. 다른 사전에서는 ‘이지(理智, reasoning power, intelligence)’를 ‘이치 리’, ‘슬기 지’ 즉,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 이성(理性)과 지혜(智惠)로 나와 있다. 이러한 속뜻을 아는 학생이었다면 자기를 칭찬해 주신 선생님께 크게 고마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경험과 같이 외모에서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내면의 이지력을 키우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이지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당황했던 여고생은 아마 ‘지식의 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의미를 확인해 보았을 것이다. 최소한 두서너 사이트에서 의미를 확인한 후 선생님께 정색을 하면서 불만을 터뜨렸을 것이다. 필자도 인터넷 포럴사이트에서 ‘이지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이트에는 ‘이지적인 사람?’에 1만 회 이상, ‘이지적이다의 뜻이 뭐죠?’라는 질문에 13만 회 이상 조회한 것으로 나와 있다. 중학생 정도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기본적인 용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공개적인 답변은 어떤가? 앞에 제시한 국어사전의 풀이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요?’, ‘똑똑하게 생겼다는 것?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뜻? 쉽게 말하면, 똑똑하고 고지식한…. 그런 말이죠’라는 답변에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교장선생님의 글을 읽었던 순간 필자가 생각했던 답변도 나왔다. ‘easy 쉬운 사람 아닌가요?’라는 해석이다. 선생님의 칭찬을 반대 의미로 오해했던 그 여학생은 그럴듯한 답변을 확인했고, 결국 틀리게 이해한 것이라 여겨진다.

 

한글은 쉽지만 한국어는 어렵다

한글은 쉽게 배울 수 있다. 하루 이틀 만에, 길어도 1주일 정도 노력하여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만 외운다면 모든 한글로 된 책들을 읽을 수 있다. 574년 전에 한글을 창제하셨던 세종대왕께서 똑똑한 사람은 한나절에, 좀 아둔한 사람도 10일이면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쉽다고 말씀하셨듯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 과학적인 글자가 바로 한글이다. 쉬운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는 문맹국에서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고,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 외교관 양성과정에서 한국어는 아랍어·중국어·일본어와 함께 가장 어려운 언어로 분류되고 있다. 한글은 가장 쉬운 글자지만, 한국어는 가장 어려운 언어라는 의미다. 앞의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사실 한국어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어렵다. 이 때문에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국어교육 강화 대책으로 초등 1~2학년 동안 27차시를 배정했던 한글교육을 62차시로 두 배 확대했다. 특히 국어 어휘력 향상을 위해 국어사전 활용수업도 두 배로 확대했다. 이전의 2009 개정 교육과정 시기에는 초등 4학년 1학기 8단원 ‘국어사전과 함께’에서 9차시만 배웠던 것을 2018년부터는 3학년 1학기 7단원 ‘반갑다, 국어사전’에서 8차시, 그리고 4학년 1학기 7단원 ‘사전은 내 친구’에서 9차시로 2년간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강화되었다.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초등 3학년 시기부터 국어사전을 통해 어휘력 배양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려는 정부의 정책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국어사전 활용에 대한 관심과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 수업 중에나 혼자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초등학교에서 배운 대로 사전을 찾아 확인하고 이해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할 텐데 대부분 사전이 없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사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지식의 보고인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되는데 구태여 불편한 종이 국어사전을 찾아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디지털 기술 맹신에 기인한 현상이다.

 

지난 1학기 동안 코로나19로 인하여 학생들은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관심 있는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학습하면서 학력수준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많은 학부모가 자녀의 어휘력 수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대책으로 국어사전 활용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앞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학부모들은 ‘이지(理智)’와 같이 한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면 한글로 된 우리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자녀에게 국어사전을 통해 확인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력이 한창 활발한 초등학생 시기에 몇 번만 한글과 한자를 대입시키다 보면 한글 이해에 필수적인 기본적인 한자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국어사전 활용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6월과 7월 중 국내 유명서점의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국어사전 하나는 7위, 다른 하나는 22위, 또 다른 하나는 44위까지 동시에 올라간 것을 확인하면서 많이 놀랐다. 국어사전을 한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면 전국 1위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교육부에서 어휘력 문제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국어사전 수업을 두 배로까지 확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리라 여겨진다.

 

한글날을 앞두고 한자와 국어사전을 생각해 보았다. 한글과 한자는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대척관계는 서로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있어 상반되지만, 서로의 관점을 합치면 상호보완이 되는 관계라고 하는데 한글과 한자의 관계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생들이 국어사전을 활용하면서 우리글은 한글과 한자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국어사전을 자주 확인하면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한자를 익힐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승호 세한대 초빙교수, 前 전남 함평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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