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가 사람을 만들었네~

2020.11.16 09:34:32

 

“얘들아~ 이리 좀 와봐~”
“왜요?”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선생님이 좋은 거 보여 줄게, 여기 앞에 뭐가 보이니~”
“풀밭이잖아요”
“풀밭이지?”
“예”
“근데 얘들아, 이 풀밭 너희들이 한번 맡아볼래?”
“예?”
“우리들이 맡아보라고요?”
“그래~”
"이거 맡아서 뭐 하게요?”
“그건 너희들 맘이지, 무언가를 심어도 좋고, 무언가를 만들어도 좋고”
“그래요? 근데 그게 될까요? 풀밭인데…”

 

그렇게 아이들과의 사연이 시작되었다.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과거에 테니스장으로 쓰이던 좋은 땅이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 땅으로 변해있었다.
 
“너희들 다섯 명이면 해낼 수 있어~ 난 믿어!”
“예?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기대 반 의구심 반, 다음날 점심시간!
 종찬, 경훈, 태우 등 어제 그 녀석들 다섯 명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들어왔다.
“선생님~ 그런데 그 땅을 왜 우리보고 맡으라는 거에요?”
“응~ 너희들이 이뻐서 그러지~”
“에이~~~”
“하하. 솔직히 이쁘다기보다는 너희들하고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그래. 수업 시간에 공부는 좀 안 하고 학교생활이 좀 불성실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 가만히 보니까 뭔가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더라. 사람은 다 뭔가 한 가지씩은 능력을 갖고 있잖아”
“……”

 

약간 숙연한 분위기가 스쳤다.
“선생님, 그러면 그 땅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요? 우리들이 아무거나 심어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너희들 다섯 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같이 한번 상의해봐~”
 그렇게 해서 풀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우선 잡초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점심시간과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서 틈틈이 잡초를 제거해 나가니 머지않아 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싸늘한 공기에도 빨간 볼을 같이 만져주며 힘을 냈다. 얼굴에 흙과 먼지가 묻기도 하고 옷에 땀이 배기도 했지만, 서로 털어주기도 하고 닦아주기도 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조금씩 조금씩 진척되는 모습에 희망을 품은 것 같았다.
 

드디어 잡초를 다 제거했다. 흙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뿌듯해했다.
그런데 문제가 나타났다.
“선생님~, 땅이 너무 단단해요”
삽을 대보니 땅이 파이질 않았다. 삽을 대기엔 너무나 단단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이장님을 찾아뵈었다.
“이장님~, 학교에 잡초가 우거진 땅이 하나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잡초를 다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다 뭔가를 심어보려고 파려고 했더니 그 땅이 도저히 파이질 않네요.”
“아, 그거요? 옛날 테니스장이었어요. 어른도 파기 힘든데 아이들이 되겠어요? 트랙터로나 갈아야 될 거예요. 제가 내일 시간 내서 두어 번 갈아줄게요”
 

이장님의 호쾌한 대답과 선의에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잡초가 무성했던 그 황무지는 옥토가 되었다.
“얘들아~ 여기다 무엇을 심을까?”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얘들아~ 우리 여기에 전교생이 먹을 수 있는 것 한번 심어보면 어떨까?”
“전교생이 먹을 수 있는 것이요?”
“응 그래. 전교생이…”
‘그게 뭐지?’
“……”

 

다음 날 점심시간 다섯 명의 우리 아이들이 교무실로 왔다.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혹시 고구마 아닌가요?”
“고구마? 그래그래 고구마 좋지 좋아. 어떻게 생각해냈어? 기특하다 얘들아~ ”
 이렇게 해서 같이 이랑을 만들고 고랑을 쳐서 고구마를 심기 시작했다. 흙을 높이 긁어모으고 두둑한 고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고 모종을 정성껏 심었다. 허리가 무척 아프고 다리도 아팠다. 고구마를 심은 다음에는 또 풀들을 뽑아줘야 했다. 틈나는 대로 모여 이랑과 이랑 사이 풀들을 뽑아 주고, 모종 틈에서 올라오는 풀도 뽑아 주었다. 날이 가물면 물도 주었다. 더위에 땀도 흘리고 모기도 물렸다. 장마 때는 물이 안 빠져서 고랑을 파주기도 하고 옷도 많이 버리기도 했다. 짜증도 많이 났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잘 참아내며 정성스럽게 고구마를 키워 냈다.
 

가을이 오고 10월이 되어 2학기 1차 고사 마지막 날!
“전교생에게 알립니다. 오늘은 시험 마지막 날입니다. 시험이 끝나면 모두들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모이기 바랍니다~”
 53명의 전교생은 체육복을 입고 고구마밭으로 갔다. 한 줄로 죽 늘어서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빠알간 고구마가 살포시 모습을 드러내면 여기저기서 놀라움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산삼이라도 캔 듯 마냥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댔고, 장난도 치며 웃고 또 웃고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선생님들도 행복했고, 아이들도 행복했다.
 

며칠 후 뜨거운 찐 고구마가 교실마다 배달되었다. 고구마 파티가 벌어진 것이다. 고구마를 쪄서 전교생이 같은 먹게 된 순간!
“와~! 이렇게 맛있을 수가!”
반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 선생님들 모두 다섯 아이들을 칭찬했다.
 그리고는 또 며칠 후 오후 시간!
인성인권 부 선생님과 함께 다섯 아이들은 고구마를 깨끗이 씻고 있었다. 그리고 향한 곳은 학교 옆 노인 요양원!

고구마를 쪄서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님들께 드렸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참말로 맛있네~”
 “꼭 우리 손주 같구먼~”
우리 다섯 아이들의 얼굴에는 수줍은 웃음꽃이 피었고, 가슴 속에도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못했던 성취와 보람과 긍지가 가득 들어찼다.


4년이 흐른 어느 날!
진눈깨비가 살짝 흩날리는 어느 날 오후 건장한 대학생 두 명이 교무실에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선생님~ 저 종찬이에요~ ”
“선생님~ 저 경훈이요.”
“아니 이놈들…”
“선생님~ 저희 이번에 한국농수산대학교에 합격했어요!”
“뭐! 그게 사실이야? 아니 이놈들 이거 고구마가 사람을 만들었네~”
“하하하하하”

지금도 눈을 감고 생각하면 정겨운 순간이다. 교사의 보람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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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교단수기 공모 - 동상 수상 소감

노작은 훌륭한 진로교육

 

상을 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수상을 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적어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무엇이라도 성취감을 맛보게 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기대 이상의 좋은 결실을 맺은 것 같습니다.
 노작(勞作)교육은 육체적 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는 교육입니다. 학교에서의 노작교육은 자유롭고 내적인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아이들이 처음 노작 활동을 시작할 때는 교사인 저의 권유로 시작을 했지만, 곧 자발적으로 의지를 갖고 스스로 하게 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서로 상의하고 탐색하며 방향을 설정하였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작 활동은 놀이와 달리 힘든 고통이 따릅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다칠 수도 있으며, 벌레나 해충과도 싸워야 합니다. 또한 날씨나 기후의 제약도 극복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중학생들이 이러한 고통을 참아가면서 이겨내고, 심한 더위와 장마에도 꿋꿋이 해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며,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이 애써 키운 고구마가 학교에 행복을 가져왔고, 그 행복이 다시 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꿈과 희망을 갖기 시작한 이 아이들이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되어 영농후계자로 농촌을 성장시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너무나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정인덕 전북 남원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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