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혁신학교 지정을 놓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대립하는 양상이 전국 곳곳에서 또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는 모양새다.
최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경기 등에서 혁신학교 지정과 관련해 학교와 학부모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경원중과 강동고의 ‘마을결합혁신학교’ 지정을 놓고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해당 학교장들은 지정 철회를 검토하거나 절차를 밟겠다고 공지하면서 성난 학부모들의 마음을 달래는 형국이다.
특히 경원중의 경우 7일 학생과 학부모 300여명이 오후 7시부터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마라톤 집회를 가질 정도로 대립이 심화됐다. 혁신학교 지정 여부와 관련해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서울시교육청 교육혁신과장 간 간담회가 열린 이날 학부모들은 이들에게 혁신학교 지정 철회 관련 합의문을 요구하기 위해 모였다.
이 과정에서 경원중 일부 교직원들은 집회가 끝날 때까지 퇴근하지 못했다는 주장과 함께 집회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흘러가자 해당 지역구의 윤희숙 국회의원(국민의힘)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개입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서울교육청 홈페이지에는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결사반대’ 제목의 시민청원이 교육감 답변 요건인 1개월 내 1만 명 이상을 충족했다. ‘강동고 지정 철회’ 관련 청원도 여러 건 눈에 띄고 있지만, 아직 답변 요건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강동고의 경우 지난달 말 학교장이 “혁신학교 지정 철회 및 반납을 추진하겠다”는 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한 상황이다.
서울 경원중과 강동고는 내년 3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이 도입하는 ‘마을결합혁신학교’의 지정 운영이 확정된 곳으로, 두 학교 학부모들 모두 ‘졸속 통과’를 거론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학교는 학부모 등의 절반 이상 동의를 통해 혁신학교 지정까지 확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등으로 대면활동이 어려운 가운데 학교 측이 학부모 전원에게 충분히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경원중 학부모 A씨는 “학생도 학부모도 모르고 있었다”며 “설문 진행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찬성 비율이 높았을 때 날치기로 학운위를 열어 통과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강동고 학부모 B씨는 “내가 우리 아이 초등학교 시절 머물렀던 경기 지역에서 겪었던 일과 유사하다. 학부모들의 동의가 있다고 했는데 정작 학부모들은 모르고 있었다. 설문 시스템을 보니 학부모 이외 외부인 투표 및 중복 투표가 가능해 부정의 소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교육청이 새롭게 도입한 마을결합혁신학교란 마을과 학교가 함께 협력한다는 형식의 혁신학교다. 그러나 이 지역의 학부모들은 이름만 조금 다를 뿐 타 혁신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학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 같은 갈등이 거의 매 학기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8년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 신설 학교 3곳을 모두 혁신학교로 직권 지정하려다 학부모 반발에 부딪혔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광진구와 강서구에서 각각 혁신학교와 예비혁신학교 지정 움직임이 보이자 학부모가 사전 차단에 나섰다. 올해는 8월 서울 송파구 문현초 학부모들의 반대로 혁신학교 공모 신청이 중단됐다.
경기에서는 시흥 목감학부모연대가 지난달 말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목감고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해달라고 촉구했다. 목감고는 지난 7월 설문에 참여한 학부모 136명 중 126명이 동의(92.6%)했다며 혁신학교를 신청해 지정 받았다. 그런데 신청서에 적힌 학부모 참여인원, 동의인원수, 동의율 등 수치와 혁신학교 신청 직전 열린 학운위에 제출된 수치가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 동의 인원 부풀리기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이에 대해 경기교육청은 법적 검토 뒤 지정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