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매’와 ‘풍년화’ 엄동설한 1월에 피는 꽃들

2021.01.06 10:30:00

 

좀딱취라는 꽃이 있다. 일반인에겐 생소하겠지만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비교적 익숙한 꽃이다. 이 꽃은 야생화 중에서 가장 늦게 피는 편이라 흔히 “좀딱취를 보면 야생화 탐사 한 해가 다 간 것”이라고 말한다. 야생화동호회 모임인 ‘인디카’에서 펴낸 책 <오늘 무슨 꽃 보러 갈까?>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한 꽃도 좀딱취다. 좀딱취를 보고 나면 더 이상 피는 야생화는 없고, 겨우살이 등 열매 정도가 남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꽃, 좀딱취

좀딱취는 남부지방과 제주도 등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키 10~20cm 정도인 작은 식물인데 꽃 모양이 바람개비를 닮았다. 자세히 보면 꽃자루 하나에 꽃이 세 개씩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좀딱취는 잘 살펴보면 구석구석 정말 예쁘다. 이 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 딱 들어맞는 꽃이 아닌가 싶다.

 

좀딱취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꽃이라면 한 해를 시작하는 꽃은 무엇일까. 야생화동호회 모임 ‘야사모’에서 매년 제일 먼저 꽃소식을 올리는 사람은 제주도 산방(닉네임)님이다. 산방님은 새해 첫날 즈음 수선화 사진을 올려 회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새해 첫날 찾는 친정집 앞에서 만나는 수선화라고 했다.

 

제주 수선화는 1월에, 이르면 12월부터 피는 꽃이다. 눈 속에서도 피어나 강한 생명력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수선화다. 그래서 수선화는 겨울꽃인지 봄꽃인지 헷갈리는 꽃이다.

 

수선화는 원예종으로 개량한 것까지 포함해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에서 이른 봄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거문도 수선화와 제주도 수선화다. 거문도 수선화는 2월 중순쯤 꽃을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거리상 그리 멀지 않지만, 수선화꽃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거문도 수선화는 흰색 꽃잎에 컵 모양의 노란색 부화관(덧꽃부리)이 조화를 이룬 금잔옥대(金盞玉臺) 수선화지만, 제주 수선화는 부화관 없이 꽃 가운데에 꽃잎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형태다. 제주도에는 이 수선화가 널려 있어서 제주도에 유배 간 추사 김정희가 ‘(귀한 수선화를) 소와 말에게 먹이거나 보리밭에 나면 원수 보듯 파낸다’고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납매와 풍년화

제주 수선화는 엄연히 1월의 꽃이지만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아쉬움이 있다. 전국적으로 1월에 볼 수 있는, 진정한 1월의 꽃도 있을까. 1월이면 한겨울인데 육지에 무슨 꽃이 피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1월에 피는 꽃이 있다. 바로 납매와 풍년화다.

 

납매는 섣달을 뜻하는 한자 ‘랍(臘)’과 매화를 뜻하는 ‘매(梅)’가 합쳐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음력 12월, 양력으로는 1월쯤에 피는 매화라는 뜻인 것이다.

 

납매는 멀리서도 맑은 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에 근처에 꽃이 핀 것을 알 수 있는 나무다. 어느 해인가 1월 중순쯤 납매를 보러 천리포수목원에 간 적이 있다. 납매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진하게 풍겨오는 향기를 따라가 납매를 찾을 수 있었다. 중국이 원산지로, 잎이 나오기 전 빠르면 1월부터 향기를 내뿜으며 꽃을 피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나무다. 달콤하면서도 맑은 향기가 참 좋다. 화피가 여러 조각인데 바깥쪽은 노란색이고 안쪽은 적갈색이다.

 

천리포수목원에 가면 납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풍년화도 만날 수 있다. 납매와 풍년화는 전국 어느 수목원이든 그 수목원에서 가장 먼저 꽃소식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 홍릉수목원에 가면 풍년화 푯말에 ‘홍릉숲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나무꽃”이라고 써놓았다.

 

풍년화는 일본이 원산지다. 풍년화는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는 꽃이다. 전국에서 공원수나 조경수로 심는다. 우리나라에는 1931년 관상용으로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리포수목원에 가면 노란색·빨간색 등 다양한 품종의 풍년화를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꽃잎이 2㎝ 내외의 선형(線形)인데, 마치 종이를 오려놓은 것 같다. ‘1월에 꽃이라니’라는 시기적인 이질감과 함께 풍년화 꽃잎이 종이처럼 생겨 비현실적인 느낌도 주는 꽃이다.

 

풍년화꽃에서도 좋은 향기가 난다. 겨울꽃들이 강한 향기를 발산하는 것은 수정과 관련이 있다. 겨울이다 보니 근처에 수정을 시켜줄 매개체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멀리까지 자신이 있음을, 꽃이 피었음을 알리려고 강한 향기를 발산해야 하는 것이다.

 

납매와 풍년화는 빠르면 1월부터 피기 때문에 꽃쟁이들에게 새해 처음으로 보는 꽃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둘 다 자생종이 아니기 때문에 한해의 첫 꽃으로 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한 해의 첫 꽃, 새해를 대표하는 야생화 ‘변산바람꽃’

길마가지나무도 빠르면 1월에 꽃이 피는 나무다. 어느 해 1월에 전주수목원에 간 적이 있는데, 납매와 풍년화와 함께 길마가지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다. 대개 2~4월에 잎겨드랑이에 1㎝ 정도의 꽃줄기에 흰색 또는 연한 홍색의 꽃이 2개씩 달린다. 꽃 색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길마가지꽃에서도 역시 달콤한 향기가 난다. 길마가지라는 이름은 황해도 방언이라는데 정확한 유래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 나무 열매 두 개가 달린 모양이 소와 말의 등 위에 얹는 ‘길마’와 비슷하게 생겨 나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길마가지나무꽃도 새해를 대표하는 꽃으로 보기에는 꽃 자체가 좀 작고 개체수도 많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그럼 많은 꽃쟁이가 진짜 한 해를 시작하는 야생화로 보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변산바람꽃이다. 해마다 2월 중순쯤 전남 여수 향일암 근처엔 야생화 동호회 회원들이 몰린다. 연두색 암술·연한 보라색 수술에다 초록색 깔때기처럼 생긴 기관이 꽃술 주변을 빙 둘러싼 변산바람꽃을 ‘알현’하기 위해서다.

 

이곳은 육지에선 가장 먼저 변산바람꽃이 피는 곳이다. 새해 꽃다운 꽃과는 첫 만남이라 감격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필자도 변산바람꽃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여수 향일암까지 몇 번을 갔는지 모를 정도다.

 

변산바람꽃 등 바람꽃 종류는 대개 이른 봄에 꽃을 피워 번식을 마치고 주변 나무들 잎이 나기 전에 광합성을 해서 덩이뿌리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하는 생활사를 가졌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부지런한 식물인 것이다.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노루귀·복수초·너도바람꽃 등이 피기 시작해 본격적인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린다. 이들이 진짜 봄의 전령사들인 셈이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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